▲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정치권에서는 이번 안 전 후보와 문 후보 간 회동을 놓고 양측의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이뤄진 결과물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또한 11월 23일 후보직을 내던지고 두문불출했던 안 전 후보가 향후 정치적 행보를 위한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막판 대선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안철수-문재인 회동’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속살을 들춰봤다.
“문(文)이 닫히고 박(朴)이 터진다.”
최근 여의도 주변에선 이러한 얘기가 심심찮게 들렸다. 대선 투표일(19일)을 3주일 정도 남겨둔 상황에서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5~8%가량 앞서 있어 박 후보의 승리가 점쳐졌던 것이다. 심지어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박 후보와 문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두 자릿수 이상으로 나온 결과도 있었다. 상당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지금 이 추세면 문 후보가 따라잡기 버거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안 전 후보와 문 후보가 만나기 직전인 5일 <서울신문>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문 후보(39.1%)는 박 후보(47.2%)에게 8.1%포인트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과거 대선 때도 그러했듯이 ‘변수’는 남아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메가톤급 변수였다. 바로 후보직을 내려놓은 안 전 후보의 행보였다. 안 전 후보 지지층이 누구를 지원하느냐가 이번 대선의 승패를 좌우할 요소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민주통합당은 안 전 후보 지지층을 그대로 흡수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부동층으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문 후보 측이 안 전 후보를 향해 ‘삼고초려’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 문재인 캠프는 다양한 채널을 가동해 안 전 후보에게 지원 유세, 문 후보와의 단독 회동 등을 요청했지만 사실상 거절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 안철수 전 후보의 선거캠프 해단식. 이후 3일 만인 지난 6일 문재인 후보를 적극지지할 것을 약속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다만, 안철수 캠프 내부적으로 지원 시기와 방법 등 ‘각론’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와 별도로 독자적인 노선을 가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안 전 후보 역시 “우리가 급할 건 없지 않느냐”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문 후보 지원에 따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정치를 계속하기로 마음먹은 안 전 후보가 대선 후를 대비할 수 있는 ‘신의 한수’를 고민했다는 것이다.
특히 안 전 후보는 문 후보 측에서 먼저 ‘명분’을 마련해주기를 기다렸던 것으로 알려진다. 문재인 캠프 쪽에서는 “이미 백의종군을 선언한 이상 뭐가 더 필요하냐”며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지만 안 전 후보 측은 “우리를 믿고 따라준 지지자들에게 할 말이 있어야 한다. 안 전 후보가 그들을 설득할 명분을 보여 달라”며 오히려 문 후보의 ‘결단’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 후보 측이 안 전 후보가 내세운 새로운 정치의 상징격인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발표한 직후에 회동이 전격적으로 성사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안 전 후보는 문 후보가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포함해 “정치혁신과 민주당 쇄신을 이루겠다”는 약속을 듣고 난 뒤 바로 전화를 걸어 만남을 제안했다고 한다.
안철수 캠프에서 자문 역할을 했던 한 교수는 “사전에 조율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 후보가 일방적으로 왔다가 만나지 못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나왔다. 이는 안 전 후보를 끌어내기 위한 언론플레이 아니겠느냐”면서 “단일화 논의 때도 이러한 문 후보 태도를 안 전 후보가 못마땅해 했었는데 또 반복되니 기분 좋을 리 없다”며 문 후보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안 전 후보 측은 사적인 감정의 골을 정치적인 스탠스와 연관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에게 섭섭한 점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는 유세 강도와 시기 등을 정하는 데 있어서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안철수 캠프 핵심 관계자는 “안 전 후보가 사소한 감정 문제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질 사람이냐”고 되물으면서 “사업을 할 때도 원래 생각을 오래하는 편이었다. 장고를 하되 한 번 결정하면 신속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안 전 후보가 사퇴 이후 문 후보를 직접 만나기까진 2주일이 필요했지만, 6일 문 후보에게 전화를 건 뒤 기자들 앞에 나타나기까진 채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문 후보에 대한 지원으로 안 전 후보가 ‘명분’뿐 아니라 ‘실리’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안 전 후보의 타임 테이블은 이미 대선 이후로 맞춰져 있다. 문 후보 지원 전략도 그 연장선상에서 짜여지고 있다. 이와 관련, 정치권 관계자들은 안 전 후보와 문 후보 회동 직후 발표된 성명서에서 대선 후가 언급됐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두 사람은 대선 기간에 힘을 합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 위기 극복과 새 정치를 위해 대선 이후에도 긴밀하게 협의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안철수 캠프 관계자들은 안 전 후보의 향후 정치적인 활로 마련에 성공했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문 후보의 대선 승리 여부를 떠나 안 전 후보가 새로운 정치 세력을 주도할 동력을 구축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문 후보 지지율이 하락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을 때 안 전 후보가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타이밍’을 중시하는 안 전 후보 특유의 감각이 발휘됐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더 이상 결정을 늦추면 새로운 정치 실현이라는 명분은 물론 ‘정치인 안철수’가 확보해야 할 실리까지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발동했다는 것이다.
또한 안 전 후보는 박근혜 후보 쪽으로 기울고 있는 대권 레이스에서 단 한 번의 등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물론, 안 전 후보 지원 효과가 먹혀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안 전 후보로서는 잃을 게 없는 장사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안 전 후보는 점수를 지키려는 소방수가 아니라 역전시키기 위해 나온 ‘필승카드’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면 안 전 후보는 그 영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또 지금 상황에서 이기면 안 전 후보의 정치적 가치는 지금보단 몇 배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조용경의 반란…풍랑 예고
‘반대파’들은 문 후보에 대한 소극 지지 혹은 독자 노선 등을 주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문 후보의 안 전 후보 자택 방문 무산도 이들 사이의 신경전 때문에 발생한 ‘해프닝’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결국 안 전 후보가 6일 문 후보를 직접 만나 적극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이러한 내분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포스코 상임고문인 조용경 전 안철수 캠프 국민소통자문단장이 문 후보 지원을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안 전 후보 측근들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조 전 단장은 안 전 후보 정치 입문 후 핵심 멘토 역할을 해왔으며, 문 후보와의 단일화도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철수 캠프 관계자는 “조 단장은 문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주도했던 인사”라고 귀띔했다.
조 단장은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용솟음치던 ‘안철수 현상’이 물거품처럼 스러져가는 모습을 보며 지난 2개월간 고락을 함께했던 안 전 후보가 선택한 이른바 ‘문-안 연대’에 동참할 수 없다. 아픈 마음으로 안 전 후보가 선택한 정치적인 길에 함께할 수 없음을 거듭 밝힌다”고 말했다.
특히 조 단장은 안 전 후보가 사퇴 열흘 전까지 단일화를 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고도 밝혀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그 시점이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와의 단일화 원칙에 합의한 11월 6일 이후이기 때문이다. 조 전 단장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안 전 후보의 신뢰성이 도마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