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는 지난 1일 수원 시민이 참여하는 106주년 3·1절 기념식을 열고 그날의 함성을 재현했다. 독립 열사들을 위한 묵념과 학생대표의 독립선언문 낭독, 만세삼창 등 공식 기념식에 더해 김세환 서거 80주기 헌화소를 운영해 의미를 더했다.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인 김세환 선생은 수원의 독립운동과 민족운동, 교육과 체육 발전에 헌신한 인물이다. 그는 1963년 대한민국 독립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국가보훈부는 2020년 3월 김세환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며 그의 공로를 높이 인정했다.
김세환은 1889년 11월 18일 수원군 수원면 남수리 242번지에서 태어났다. 팔달문 북쪽에 자리 잡은 지금의 팔달로2가 그의 고향이다. 어릴 적부터 기독교를 통해 신앙과 교육, 그리고 구국 활동에 대한 꿈을 키웠다. 이후 서울에 있는 관립 외국어학교로 진학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중앙대학에서 신학문을 배웠다.
수원으로 돌아온 김세환은 1910년부터 수원상업강습소(현 수원중·고교 전신)에서 직조 감독관으로 일하며 수원의 대표적인 민족 운동가들을 길러냈다. 1913년부터는 삼일여학교(현 매향중학교 전신)로 자리를 옮겨 학감으로 일하며 독립운동가들을 길러냈다.
수원군 3·1 운동은 김세환 선생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기미년 수원군에서는 3~4월 21차례의 만세운동이 국지적으로 이어졌다. 들불처럼 번진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들이 김세환 선생의 제자 또는 후배였다.
저녁 횃불시위는 수원지역 3·1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1919년 3월1일 저녁, 김세환 선생의 지시에 따라 수원군 수원면 방화수류정 부근에서 김노적, 박선태 등 교사와 학생들, 천도교와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인 등 수백여 명이 횃불을 들고 모여들었다.
만세 시위대의 횃불은 동쪽의 창룡문의 봉수대, 서쪽 팔달산 서장대 등 성곽 일대의 봉화로 이어졌다.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날 저녁 시작된 횃불시위는 수원군 전역으로 퍼진 격렬한 만세운동의 시작점이었다.

화성학원과 삼일학교 및 종로교회를 근거로 활동하며 후학양성과 수원지역 교육계를 위해 헌신하던 그는 1945년 광복 42일 만인 9월 26일 수원읍 남부정 201번지(현 매교동)에서 운명했다.
이재준 수원시장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친 수원의 독립운동가와 민중의 이야기를 시민과 우리 후손들이 기억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함께 새로운 희망을 품고 행복으로 가는 길일 것"이라며 "수원의 독립운동가와 민중을 시민 여러분과 함께 기억하며 존경하겠다"고 말했다.
손시권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