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 시 '풀꽃'으로 잘 알려진 나태주 시인(80)은 언제나 사랑을 강조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는 문학계 원로다. 1964년부터 40년여 동안은 초등학교 교단에 섰다. 엄혹한 사회 분위기에도 동심 가득한 교실에서 늘 희망을 내다봐왔다.
분필을 내려놓고도 시로써 사회에 '꿈과 행복'을 선물한 지도 수십 년째. 그러나 공교롭게도 '청년 나태주'의 초임교사 시절 선포됐던 비상계엄 사태가 재현했고 사회는 분열, 대립, 증오가 만연해졌다. 그는 이 같은 현 시대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이마저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러울까. 우리에겐 어떤 말을 남겨주고 싶을까.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아름다움에 이름 붙여진 '봉황산'과 그리 멀지 않고, 공놀이하는 학생들의 요란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공주사대부고 바로 옆에 자리한 나태주풀꽃문학관은 1930년대 지어진 일본식 적산가옥을 개조해 만든 곳이다.
소싯적엔 공주에서 꽤 규모를 자랑하는 동네였단다. 번화한 그 시절 상이 아직 남아 있어 대강 보면 썩 적막하진 않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바라보면 몹시 아름답고 고즈넉한 공간이다. 특히 완연한 봄이 되면 문학관 작은 뜰 곳곳에 할미꽃과 복수초, 금낭화 등 사랑스러운 꽃들이 수를 놓는다고 한다.
이날 약속한 인터뷰 시간은 오후 2시였지만 약 10분 늦어졌다. 문학관을 찾아온 손님들이 많았다. 나태주 시인이 방문객을 일일이 맞이하고, 주변을 소개하며,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는 데에 여념 없었다. 문학관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은 누구나 들를 수 있는데 아주 가끔 운이 좋으면 나태주 시인과 직접 마주해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눌 수도 있다고.

"네, 제가 올해 꼭 여든입니다. 저보다 딱 절반만큼 살아온 이들에 해주고픈 말들을 항목별로 적은 책이에요. 제가 볼 때 마흔의 삶은 참 힘들어요. 위로는 부모를 모셔야 하고, 아래로는 자식들을 돌봐야 하는 샌드위치. 더구나 나 자신도 변화하고 나아가야 할 때지요. '삶이 힘들지라도, 좀 더 견뎌봐라' 메시지를 담아봤어요. 멈춤 없이 한 발씩 내딛다 보면, 발길이 가벼워질 때도, 여유가 생길 때도 있다고요."
ㅡ요즘 정치 상황이 무척 각박합니다. 비상계엄에다 대통령 탄핵 기로입니다.
"대통령의 성숙과 발달이 다소 부족했기 때문이겠죠. 다만 사태가 이에 이르기까지, 여야가 이성 대신 감정으로 서로를 들들 볶아온 배경도 있을 거예요. 그 과정에서 오간 자극과 분노의 보따리가 터져버린 것 같아 그저 씁쓸합니다."
ㅡ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요.
"세상엔 통치, 법치, 정치, 협치란 게 있어요. 통치는 위에서 찍어 누르는 겁니다. 북한에서 하는 거죠. 법치는 그저 법대로 한단 거고요. 정치란 나쁘게 말하면 '거래', 좋게 말하면 '조율'이에요. 그리고 협치는 소통을 토대로 한 양보죠. 우리는 정치인들이 협치 수준은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은 법치를 강조했단 말이에요. 예컨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소통을 거부했죠. 피의자란 이유로. 이는 법치 관점이에요. 대통령은 정치가입니다. 정치가라면 만났어야죠. 반대로, 이재명 대표도 최근 공론장인 의회가 아니라 천막에 나가 윤 대통령 위법을 꼬집었습니다. 이 역시 여러모로 되새겨볼 지점입니다."
ㅡ지금 정치인들은 무엇을 유념해야 합니까.
"제 아내가 제게 이런 말을 자주 해요. '왜 당신은 어떤 날엔 빨간색, 어떤 땐 파란색이냐'고요. 사실 저는 빨강도 파랑도 아니에요. 저는 저예요. 우리 사회엔 산토끼도, 집토끼도 있지만, 들토끼 역시 살고 있답니다. 이들을 '중도'로 부릅니다. 정치인들은 이 들토끼들의 존재를 분명 깨달아야 합니다. 산으로도, 집으로도 못 가는 들토끼. 산토끼든 집토끼든 그들끼리만 어울리려 하면 안 돼요. 들토끼들을 잡기 위한 노력에 게을러선 안 될 겁니다. 또 저는 사회 공동체에 들토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ㅡ들토끼(중도)가 많아졌으면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사회에 진보와 보수가 각각 너무 많습니다. 게다가 둘이 워낙 팽팽하게 굳어지기까지 했어요. 강성이죠. 그래서인지 저는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에서 '선거민주주의'로 하향한 게 아닐까 생각마저 듭니다. 무슨 뜻이냐면, 진보와 보수 서로가 너무 엄격히 '패를 가르는' 민주주의가 됐단 뜻이에요. 서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주 큰일이에요. 굉장히 아픈 얘기입니다."
ㅡ복잡한 정치 상황에 시민들 피로감과 스트레스도 너무 심해졌죠.
"그렇죠. 사실 이런 때 가장 편한 방법이 있어요. 스스로 집토끼든 산토끼든 하나가 되길 선택하면 됩니다. 그러면 나는 옳고, 저들은 틀린 게 되니까 편하죠. 하지만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내가 물을 마셨으니, 너는 마시지 마' 할 수 있습니까. 싸울 때 싸우더라도 서로 먹여는 놓고 싸워야죠. 최근 경찰이 탄핵 선고일 당일 갑호비상 발령 방침을 세웠다지요? 헌재 등 시설경호 차원도 있지만, 사람이 죽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신호예요. 이미 몇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커다란 불행이에요."
ㅡ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건 철학자들이 풀어야 할 문제일 텐데…. 단, 저로서는 우리 공동체가 대체로 '7 대 3', 혹은 '6 대 4' 정도로만 나뉘었어도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소수 쪽에서 일단은 억울해도 양보할 틈은 생기니까요.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대개 '5 대 5'예요. 지난 대통령 선거 득표율도 거의 그 정도였죠. 그때부터 참 불안했어요. 뭣보다, 동아시아 역사를 살펴보면, 일부 식민지에서 전쟁엔 나섰을지언정 독립운동은 우리만 했거든요. 자기 자신을 부숴가며 해방운동에 나선 겁니다. 물론 이는 당연히 크게 존경받아야 할 일이죠. 그렇지만 요즘 시대를 보면, 각 진영에 속한 시민들이 마치 독립운동하듯 자기를 부숴가며 정치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게 과연 바람직한 걸까요? 이런 때일수록 사회 지도층인 정치인들이 먼저 나서 화합 도모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죠."
ㅡ사회 지도층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윤석열 대통령부터, 적어도 이토록 세상을 시끄럽게 한 데 대해선 사과를 해야지요.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든 승복하겠다는 약속도요. 이 밖에 민주당을 향해서도 과도한 탄핵소추안 통과 등 여러 지적이 있습니다. 민주당도 분명 성찰이 필요합니다."

"같이 죽는 겁니다. 앞서 말했듯 정치란, 일정 부분 양보하며 주고받는 거예요. 내가 전부를 가지려 하면, 상대 쪽도 독식을 탐하게 마련이니까요. 상대를 죽이려다간, 내가 죽음 위기에 직면할 수 있고요. 모든 건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돼 있습니다. 고로 '너를 살리는 게 나를 살리는 길'이란 사실을 잊어선 안 될 텐데, 과연 가능할지…. 정말 큰일이고, 저 역시 걱정입니다."
ㅡ정치인들도 오래 자세히 보면 예쁘고 사랑스럽습니까.
"원래가 안 예쁘고, 사랑스럽지 않은 거예요. 그렇더라도 예쁘게, 사랑스럽게 보려는 노력이 중요한 거죠. 뭐가 사랑스럽겠어요. 징그럽지. 누차 말하지만,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이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풀꽃' 시의 완성은 '너도 그렇다'예요. 상대방인 '너'가 핵심이죠. 정치도 마찬가지. 당연히 협치가 가장 중요하지 않겠어요?"
ㅡ또 걱정이신 게 있습니까.
"정보의 과잉 시대입니다. 이는 지식과는 달라요. 요즘 보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헌법을 너무 잘 알고 말이죠. 자신을 들여다보든 꼭 필요한 공부를 하는 대신 그런 정보를 갖고 종일 소리 지르고 떠듭니다. 하지만 그건 강물 같은 정보예요. 강물은 마실 수가 없죠. 사람에게 필요한 건 마실 수 있는 샘물입니다. 요즘은 떠내려가는 강물이 너무 넘쳐흘러 문제입니다."
ㅡ혼란한 시대에 국민들은 어디서 위안을 얻어야 할까요.
"소위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개인 관점에선 폐문독서, 즉 문 닫고 공부하는 게 낫습니다. 또 '난세엔 등에 뿔난 사람이 산다'고도 합니다. 지게를 진 사람이 살아남는단 뜻이죠. 세상이 어떻든, 저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우선이란 겁니다. 정치적 의사 표시도 좋은데, 책과 지게마저 내팽개친 채 거리로 나가 상대를 제압하거나 죽이려 해선 안 됩니다. '연대'는 중요한 가치지만, 그 전에 '나'를 찾는 일이 필수예요. '내 편'을 내세우기 전에 '나'부터 돌봐야 한단 거예요. 요즘 정치 상황은 흡사 '나'는 버리고, '내 편'을 우선하는 듯합니다. 모두 흥분을 가라앉히고요, 헌재 판단은 조금 침착하게 지켜보심이 나을 듯합니다."
ㅡ우리 정치인들, 사회지도층들이 읽었으면 하는 시 한 편 있으십니까.
서시"풀꽃도 읽으면 좋겠네요. '나'만 생각할 게 아니라, '너'도 있단 사실을 깨닫는 차원에서요."
_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풀꽃ㅡ시민들에 건네줄 시도 한 편 있을까요.
_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러시아 시인데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긴 할 거예요. 자기에 맞게끔 잘 찾아보시길 추천합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_알렉산드로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