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10월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수사팀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정갑윤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조직을 사랑하느냐”면서 “사람에 충성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윤 전 대통령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검사 윤석열’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박근혜 정부 아킬레스건을 집요하게 공략했던 윤 전 대통령은 2014년 대구고검 검사로 발령됐다. 당시 법조계에서 고검 검사는 ‘퇴직 코스’로 인식됐다. 대검 중수부 1과장, 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요직을 거친 윤 전 대통령이 좌천된 것을 두고 ‘박근혜 정부에 단단히 찍혔다’는 분석이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문재인 정부 초기 윤석열 전 대통령은 승승장구했다. 그는 2017년 5월 19일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열흘 만에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됐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법농단 수사, 버닝썬 게이트 수사 등 굵직한 사건들을 이끌었다.
2019년 6월 문재인 정부는 윤 전 대통령을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로 임명했다. 인사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을 놓고 거친 공방을 벌였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적격 의견을 냈다.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됐지만, 문재인 정부는 윤 전 대통령 임명을 강행했다. 그는 검찰총장이 됐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검찰은 ‘청와대의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청와대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 등 문재인 정부 심장부와 관련 있는 범죄 혐의를 집중 겨냥했다. 윤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서 ‘적폐’로 불리기 시작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 전 대통령 간 갈등도 격화했다. 법무부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직무배제 및 정직 처분을 내렸고, 윤 전 대통령은 행정소송 2심에서 징계 처분 취소 결정을 받기도 했다.
그러자 국회에서 윤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시선도 백팔십도 달라졌다.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했던 정당들의 후신인 미래통합당과 국민의당은 윤 전 대통령을 ‘칼잡이’라며 추켜세웠다. 민주당은 윤 전 대통령을 집중 공격했다. ‘윤석열 대망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21년 1월 1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 발언이다. ‘별의 순간’ 발언은 윤석열 대망론에 불을 붙였다.
2021년 3월 4일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 사퇴를 선언했다. 그는 “그토록 어렵게 지켜왔던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다”면서 “검찰 권한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정의와 상식,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사실상 정계 진출을 선언한 시점이다.
윤 전 대통령에게 정계 진출은 곧 대권 도전이었다. 2021년 6월 29일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윤 전 대통령이 어떤 간판을 달고 대선에 나설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는 7월 30일 국민의힘 당사에 방문해 입당했다. 당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방 일정을 나간 사이 기습 입당을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승리한 윤 전 대통령은 제1 야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 윤 전 대통령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함께 대선 캠프를 꾸렸다. 그러나 ‘삼두체제’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21년 12월 21일 이 전 대표가 상임선대위원장 직을 사퇴했다. 총괄선대위원장 직을 맡고 있던 김 전 위원장은 2022년 1월 3일 선대위 해체를 발표했다.
윤석열 대선 캠프는 ‘실무형 선대본부’로 개편됐다. 그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위원장은 결별 수순을 밟았다. 윤 전 대통령은 선대본부 개편 이후 이준석 전 대표와의 갈등을 봉합하고, 대선 직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단일화를 성사하며 교통정리를 마쳤다.

2022년 9월 미국 순방 중 ‘바이든 날리면’ 논란이 터졌다. 윤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난 뒤 행사장을 빠져나가며 비속어를 사용했다는 의혹이었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문제들도 끊이지 않았다.
2023년엔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를 둘러싼 외교참사 논란이 불거졌다. 2030 엑스포 유치전에서 부산은 1차 투표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게 119 대 29 스코어로 참패했다. 2차 투표는 해보지도 못한 채 엑스포 개최가 물 건너갔다.
2024년 상반기는 윤석열 정부 승부처였다. 민주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국회 구조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임기 내 마지막 기회’인 제22대 총선이 열리는 시기였던 까닭이다. 총선을 앞두고 윤 전 대통령은 ‘의대 증원 카드’를 꺼냈다. 2024년 2월 보건복지부가 의대 증원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의사들의 집단 반발이 이어졌고, 이에 따른 의료 공백은 윤 전 대통령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쳤다.

정부와 여당의 관계도 삐걱거렸다. 총선 과정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긴급 투입됐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선거 과정부터 선거 이후 당권을 잡은 뒤까지 정부와 불협화음을 냈다. 검사 시절부터 동고동락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사이 묘한 힘겨루기가 지속됐다. 여당 내부 주류인 친윤계를 중심으로 한동훈 지도부에 대한 비토기류가 심화했다.
그 사이 야권은 특검법과 탄핵안, 예산 감액 등으로 윤석열 정부를 강하게 옥죄었다. 총선 이후 윤석열 정부가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이는 현실이 됐다.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윤석열 전 대통령은 긴급 브리핑을 통해 계엄을 선포했다.

제6공화국 최초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군과 경찰이 국회 장악을 시도했다. 그 가운데 2024년 12월 4일 오전 1시 1분 국회에서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이 가결됐다. 오전 5시 3분께 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가 의결되며 계엄령은 해제됐다.
갑작스러웠던 비상계엄 정국은 탄핵정국으로 이어졌다. 12월 7일 1차 탄핵소추 의결이 부결됐지만, 12월 14일엔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여당에서 이탈표 12표가 발생했다. 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다.
지난 1월 14일부터 2월 25일까지 11차례에 걸친 변론기일이 진행됐다. 비상계엄과 관련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를 받던 윤 전 대통령은 1월 19일 오전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구속됐다. 구속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해 증인들을 직접 신문하는 등 적극적 행보를 보였다.
윤 전 대통령 구속을 전후로 지지층이 결집했다. 탄핵 반대 세력이 거리로 나서 집회에 돌입했다. 탄핵 찬성 세력도 거리로 나섰다. 탄핵 찬반 세력이 광장에서 여론전을 펼쳤다. 여권 내부에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지층 결집도가 가장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계엄의 늪은 깊었다.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선고했다. 8 대 0 전원일치로 탄핵을 인용했다. 헌법재판소는 비상계엄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오전 11시 22분부로 윤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 됐다.
윤 전 대통령은 헌재 탄핵심판 선고 이후 입장문을 통해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면서 “많이 부족한 저를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하다”면서 “사랑하는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을 위해 늘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 입문 이후 1년 만에 대권을 잡은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를 3년도 채우지 못하고 파면됐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검찰총장 직을 던지고 대권을 잡기까지 속도도 굉장히 빨랐고, 대통령 파면까지 속도도 가장 빨랐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전광판을 보지 않고 뛰겠다던 윤 전 대통령의 각오가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라면서 “만성적으로 낮았던 대통령 지지율이 비상계엄과 탄핵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공정과 상식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며 출발한 윤석열 정부는 결과적으로 여야 협치에 실패하고, 총선에서도 패배했다”면서 “무리한 계엄선포로 탄핵이라는 결말을 맞았다”고 평가했다. 채 교수는 “국민들 시각에서 봤을 때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