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당의 구심점이자 원톱은 대통령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국민의힘은 최전방 공격수를 잃었다. 이에 따라 조기 대선은 불리한 구도 하에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권은 계엄과 탄핵으로 인한 부정적 여론, 당 소속 대통령이 두 차례 연속 파면됐다는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됐다. 야당은 잔디 위에서, 여당은 맨땅 위에서 악전고투하게 된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파면 직후 열린 2017년 5월 9일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41% 득표율에도 불구, 청와대로 향했다. 탄핵은 중도층뿐 아니라 보수 지지층 이탈로 이어졌다. 당시 보수 정당은 대선 기간 내내 제대로 힘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정권을 내줬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를 떠올려보면 파면 이후 이뤄지는 수사와 재판은 그 전과는 강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파면의 여파가 대선 기간 내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박 전 대통령 때처럼 이번 조기 대선에서도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재판 상황이 언론을 타고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는 선거에서 분명한 악재다.
탄핵 국면 속에 치러진 지난 4·2 재보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것만 봐도 이런 중도 민심 이탈 정황을 읽을 수 있다. 국민의힘은 기초단체장 5곳 중 1곳만 겨우 건졌다. 국민의힘은 텃밭인 경북 김천만 차지했고, 부산에서 교육감을 내줬다. 현역 국회의원이 있는 경남 거제도 국민의힘이 터줏대감이지만 이번에는 시장 자리를 민주당에 빼앗겼다.
영남 민심을 잘 아는 국민의힘 당대표 출신 김기현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거제시장과 아산시장 선거의 패배는 직전 단체장이 모두 우리 당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정말 뼈아픈 패배”라며 “민심의 죽비를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중도표 이탈에 대한 경계심을 발신한 부분이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이 현실화하자 여당의 대선 잠룡들 셈법이 복잡해진 것도 이런 배경에서 풀이된다. 주류를 이루는 반탄파나, 소수파인 찬탄파 모두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가장 앞서가는 것으로 나오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한동훈 전 대표가 일단 ‘빅4’로 불린다.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도 대권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점쳐진다. 2024년 7·23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했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나경원 윤상현 의원의 출마설도 오르내린다.
이 밖에 김태흠 충남지사, 이철우 경북지사, 박형준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이장우 대전시장 등 당 소속 광역단체장들도 일부는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분명하게 대권 주자로 거론된다. 이재명 대표 외에 뚜렷한 후보군이 떠오르지 않고 있는 민주당에 비해 수적으로는 많은 상황이다.

언뜻 보기엔 적극적으로 탄핵에 찬성했던 한동훈 전 대표나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그리고 다소 소극적이었지만 어쨌든 탄핵 찬성 쪽에 가까웠던 오세훈 시장 등 찬탄파가 유리해진 것으로 보인다. 중도 여론에 가까이 갈 수 있어 확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들이 대선 경선에서 우위를 점할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붙는다.
보수 지지층, 그리고 당 주류인 친윤계 사이에선 탄핵 반대 여론이 여전히 공고한 것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탄핵 국면에서 당 지도부와 주류에 속하는 의원들은 ‘1호 당원’인 윤 전 대통령과 강하게 밀착해왔다. 몇몇 의원들은 탄핵 반대 집회까지 참석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월 “(윤 대통령과) 인위적 거리두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공식화한 바도 있다.
탄핵이 인용됐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 윤 전 대통령과의 거리두기 목소리가 나올지에 대해선 회의적 관측이 주를 이룬다. 윤 전 대통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도한 ‘윤석열 정부 국정 훼손’ 시도와 싸우다 불가항력으로 탄핵 파면됐다는 여당 지지층의 정서가 여전히 강하게 작용 중이기 때문이다.
찬탄파 후보들의 경우 1차 관문인 경선조차 통과하기 어려울 수 있다. 대선까지 시일이 촉박해 기존 경선 후보 선출을 위한 규정이 바뀌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원 50%·일반 국민 50%’ 비율로 경선이 치러지면 당심을 장악하지 않고는 예선 통과가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 국민의힘 대권주자 후보군이 넘치고 있어 ‘컷오프’를 거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때 역시 당심을 최우선적으로 붙들어 놔야 한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홍준표 대구시장이 경선에서 맞붙었던 직전 우리 당 대선 경선에서도 일찌감치 국회의원들의 마음을 잡아놓은 윤 전 대통령이 일반여론조사에서 앞선 홍 시장에게 당심을 무기로 승리했다”며 “이번에도 똑같은 형국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과는 달리 이번 조기 대선에서는 윤 전 대통령과의 동조화 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거대 야당에 맞선 윤 전 대통령의 저항 바통을 이어갈 후보가 과연 누구인가’라는 의제가 여당의 구호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를 종합하면 적어도 당내 경선에서만큼은 ‘반탄’ 후보들이 유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선고 직후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도 이러한 기류가 읽혔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4월 4일 의총에서 “피와 땀과 눈물로 지키고 가꿔온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험천만한 이재명 세력에게 맡길 수 없다”며 “승리를 위해 우리부터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했다. 찬탄파 진영이 주장하고 있는 ‘친윤 책임론’ 대신 단일대오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취지였다.
여권 일각에선 보수 대연합을 이룰 수 있다면 이재명 대표와 겨뤄볼 만하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2017년 대선 때와 달리 여당의 분열과 지지층 이탈이 미미하다는 이유에서다. 정치권에선 여당의 대선 변수 중 하나로 대권 출마 의사를 밝힌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과의 단일화 여부를 꼽는다. 이미 물밑에선 몇몇 잠룡들이 이 의원을 향한 구애에 나선 모습도 포착된다.
이 의원은 “끝까지 간다”며 단일화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 의원이 3지대 후보로 몸집을 키운 뒤, 여당과의 단일화로 정치적 지분을 얻으려 할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찮게 흘러나온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젊은층에 호소력을 갖고 있는 이 의원과의 단일화가 중도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2022년 대선에서 윤 전 대통령은 대선 투표일 직전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해 초박빙 승리를 일궈냈다. 이 사례 말고도 정치사에서 후보 단일화는 승리의 열쇠였다. 1997년(김대중·김종필) 2002년(노무현·정몽준), 단일화를 통해 각각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했다. 1987년 대선의 경우 단일화 무산(김영삼·김대중 독자 출마)이 대선 패배로 직결됐다.
국민의힘 대선 잠룡으로 거론되는 한 인사의 측근은 “12·3 비상계엄 이후 탄핵소추가 이뤄지면서 정치 경험이 많은 대선 잠룡들은 꽤 오랜 기간 정치 변화를 예의주시해왔고 사정은 어찌됐든 그 기회가 열렸다”며 “밖으로는 야당과 겨룰 수 있고 안으로는 여권 전체의 몸집을 불릴 수 있는 준비를 제대로 해놓은 후보만이 국민의힘 최종 주자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