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개척 교회의 담임 목사에서 ‘신의 계시를 행하는 신실한 종’이 된 민찬은 자신의 모든 행위의 정당성에 ‘신의 뜻’을 끼워 맞춘다. 여자 아이를 쫓아 교회로 들어온 성폭행범 권양래(신민재 분)를 마주치게 된 것도, 그가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신의 계시’에 따른 필연이라고 믿는다. 이미 한 번 범죄를 저지른 권양래가 제 아들을 유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신의 계시를 이루는 우연과 환각에 섞여 들어가면서 민찬의 안에서 콘크리트 같은 진실이 되기까지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민찬이 ‘계시’를 느끼는 신마다 그 바탕에는 여러 겹의 레이어가 깔려있어요. 사람들이 이 계시의 명확성을 다 다르게 받아들이길 바랐거든요. 어떤 분은 바위에서 보이는 얼굴이 진짜 신의 계시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목사의 방을 보고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죠. 민찬이 계시를 받았다고 생각할 때 주변의 냄새를 맡는 장면이 있는데, 이렇게 냄새를 레이어로 깔아놓고 그 지점마다 계시를 꺼내는 식으로 디자인됐어요. 처음엔 계시를 받기 전의 전조증상으로 냄새를 느끼고, 그 후엔 냄새를 맡은 뒤에 바로 계시를 보게 되고, 종국엔 아예 냄새를 찾아다니는 식으로 바뀌죠.”

“아무래도 모태신앙이다 보니 그동안 교회와 밀접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개척부터 대형까지 여러 교회와 관련한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고요. 극 중에서 민찬이 교회 기도 신을 준비할 땐 저와 가깝게 지내는 목사님께 기도문 작성을 부탁드렸어요. 또 실제 대형 교회 목사님들이 기도하시는 걸 녹음 받아서 듣기도 했고요. 보통은 기도할 때 목사님들이 눈을 감는데, 민찬의 기도회 장면을 보면 눈을 뜨고 기도하고 있는 걸 보실 수 있어요. 그게 오히려 더 파워풀하게 전달되면서 동시에 이상한 느낌을 주는 것 같더라고요. 우린 눈 뜨고 기도하는 목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웃음).”
‘계시록’에서 기도회 신과 함께 류준열의 연기 중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큰 호평을 들었던 것은 차 안에서 불륜을 저지른 자신의 아내를 ‘회개’시키는 신이었다. 류준열 역시 이 작품을 준비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긴 신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신의 뜻을 빌리지 않고 인간이 인간에게 죄를 고할 것을 명하는 이 광기 어린 신을 준비하기 위해 류준열은 아내 역의 배우 문주연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고 했다.

‘계시록’ 속 민찬을 연기하며 더없이 만족스러웠다는 류준열은 작품의 메시지, ‘인간의 믿음’에 대해 한 번 더 강조했다. 비단 종교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며 선택하는 쉽거나 험한 길, 그리고 그 결과 역시 인간의 믿음에 달려있다는 게 류준열의 이야기다. 자신 또한 믿음과 고집, 그리고 그에 따른 선택의 연속으로 이 길을 달려온 만큼, 배우 데뷔 딱 10주년을 맞이한 현재 시점에 마주한 작품으로 제격이기도 했다.
“20대의 저도 때론 맹목적인 믿음으로, 고집으로 밀어붙였던 게 있었어요. 그러다 10년 차를 맞이하니 아무래도 고민이 크죠. 여기까지 오면서 제 생각 이상으로 믿음과 고집이 주는 힘이 있었는데, 다음 10년도 똑같이 그것들을 가지고 가자니 생각만큼 속 시원하지가 않아요. 그렇다고 버리자니 그동안 나를 지탱해온 힘을 잃는 게 아닌가 하는 딜레마도 있고요. 아직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겠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조언을 들으려 하고, 계속해서 선을 생각하며 좋은 걸 선택하려고 해요.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난만 준다잖아요? 내가 이제까지 견뎌온 걸 보면 앞으로 더 견딜 수 있겠구나, 그런 믿음으로 좋게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