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한 권한대행은 오는 4월 18일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영역을 스스로 축소 규정하며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했던 한 권한대행이 이번엔 정반대 태도로 후보자 지명에 전격적으로 나서자 더불어민주당 등 정치권에서 거센 반발이 터져 나왔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피의자로서 경찰과 공수처의 수사를 받고 있는 이완규 법제처장을 신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을 두고 ‘인사쿠데타’ ‘제2의 내란’이란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헌법이 규정한 국민 기본권 수호를 위해 세워진 헌법재판소 재판부는 총 9명의 헌법재판관으로 구성된다. 헌법 제111조 3항에 따라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대통령이 임명한다. 남은 3인은 대통령에게 지명·임명권이 있다.
이번 혼란은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을 한 권한대행이 지명하면서 시작됐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헌재 결원 사태가 반복돼 헌재 결정이 지연될 경우 대선 관리·필수추경 준비·통상현안 대응 등에 심대한 차질이 불가피하고 국론 분열도 다시 격화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며 이 처장과 함 부장판사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다고 밝혔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대표 권한대행은 기자회견을 열어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랬더니 내란 행위만 대행하고 있다”며 “이러다가 대통령 권한대행임을 내세워 계엄이라도 선언할 판”이라고 질타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명 다음 날(9일) 입장문을 내 “(한 권한대행) 자신의 권한을 벗어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함으로써 국회를 무시하고 정국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소속 한 의원은 통화에서 “헌법은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작동하는데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처럼 국민이 직접 선출한 인물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건 월권으로 볼 수 있다”며 “헌법 해석의 원칙을 넘어선 사례”라고 꼬집었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지명한 두 후보자는 여러 논란에 휩싸인 인물들이다. 이완규 처장은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79학번)와 사법연수원 동기(23기)로, 12·3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 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등 핵심 각료들과 함께 회동한 인물이다. 그는 안가 회동 후 휴대전화를 교체해 증거를 인멸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월 이 처장을 내란 임무 종사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지난 9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이 처장에 대해 “고발·진정 사건이 제기돼 수사 대상”이라고 밝혔다. 함 부장판사는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민사1부에 있던 2017년 승차요금 24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것을 두고 타당성 논란이 일었다. 그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드루킹 사건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이력이 있다.
일각에선 한 권한대행의 갑작스런 후보자 지명이 자의가 아닌 외부의 압박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보수계열 논객인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은 지난 9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완규를 임명(지명)한 것은 전적으로 파면당한 윤석열의 지시요, 부탁”이라며 “한 권한대행이 이완규를 임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한 권한대행의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이며 마지막인 충성”이라고 적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기자와 통화에서 “한 권한대행을 향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압박이 있었을 것”이라며 이 같은 해석에 무게를 더했다.
국무조정실 출신의 한 인사는 “이번 사안은 한 권한대행의 자체 결정보다는 용산 등 외부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용산에서 결정하면 한 권한대행은 방어하거나 감싸는 데 급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귀띔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한 권한대행이 차기 정권을 민주당이 잡을 확률이 높아 헌법재판관 지명을 민주당 몫으로 주고 싶지 않아 지명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9일 이 처장과 함 부장판사 지명 과정을 밝히라며 공개질의한 데 이어 한 권한대행에 대한 직권 남용 고발장을 경찰과 공수처에 제출했다. 민주당 출신 한 다선 의원은 “고의로 보수성향 재판관을 넣은 것 같은데 지명 자체로 권한대행의 역할을 넘어섰다”며 “(권한대행이) 국가를 더 시끄럽게 만든 셈”이라며 꼬집었다.
헌법 제71조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권한대행의 범위에 대해선 법조계와 판례에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적 없지만, 국정 공백 방지와 현상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권한만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통령 몫이었던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후임 재판관을 지명하지 않았다.

헌법학계에선 한덕수 권한대행이 헌재 내 공백 상황을 과도한 수준으로 해석했다고 지적한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헌재 결원 사태’를 언급하며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하면 헌재는 7명 체제가 되는데 바로 후임자를 채우지 않더라도 사건 심리가 가능하다. 헌법재판소법 제23조에는 ‘재판부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명기돼 있다.
조재현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헌법학회장)는 “(윤 대통령 파면 후) 60일 내 차기 대통령이 선출될 상황에서 굳이 권한대행이 나서서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급박한 사정이 없다”며 “헌법재판소는 9명 중 7명 이상이 있으면 정상 운영이 가능해 2명의 공석이 즉각적인 헌법적 위기를 초래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짚었다. 이어 “지명이라고 해도 대통령 몫의 지명은 곧 임명을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한덕수 권한대행의 이번 지명에 민주적 정당성이 크게 결여됐다는 지적이 빗발친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은 국민 선출직이고, 총리(한 권한대행)는 국민 선출직이 아니다”라며 “총리가 권한대행 자격으로 헌법재판관을 지명해도 이는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되는 것이고, 이렇게 지명된 헌법재판관의 권한도 정당성이 없다. 원천무효다”라고 강조했다.
10일 국회입법조사처는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권한대행이 임명하는 것에 대한 유권해석 보고서를 국회의장실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는 “위헌·위법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라는 조사 결과가 담겼다. 이에 따라 국회는 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구서를 받는 즉시 한 권한대행을 상대로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한덕수 권한대행의 이번 지명이 최종적으로 효력을 인정받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국회 보좌진 출신의 한 변호사는 “가처분신청이 각하 내지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며 “국회의 권한이나 이익을 직접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번 두 후보자 지명이 대선 후 정치권에 의해 정략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에 우려가 제기된다. 김선택 고려대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진보 진영 인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보수 진영 정당이 헌재를 통해 차기 정권을 좌지우지하려 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즉시 한 권한대행을 탄핵소추시켜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