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하루 동안 이동한 거리다. 6·3 지방선거 지원 유세에 나선 정 대표의 강행군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단순 선거 지원을 넘어 차기 전당대회를 겨냥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민석 국무총리와 송영길 후보 등 차기 대표 후보들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민주당 시계가 8월 전당대회를 향하는 분위기다.

5월 26일 정청래 대표는 서울, 경기 여주·이천, 충북 제천, 경북 안동 등 약 320km를 순회하며 후보 지원에 나섰다. 정 대표는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년도 안 돼 대한민국 주식을 두세 배 올렸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 경제 성과를 홍보하며 ‘당정 일체’를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정 대표의 살인적인 일정이 차기 전당대회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쏟아진다. 지난 2월 민주당은 정 대표 주도로 권리당원과 대의원 표 가치를 같게 하는 ‘1인 1표제’를 도입했다. 의원들의 조직표 못지않게 당심도 중요해진 셈이다. 정 대표가 당심을 염두에 두고 전국을 누비고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당심’의 효과를 톡톡히 본 바 있다. 지난해 8월 2일 2차 임시전당대회 때 권리당원 투표 득표율 66.48%를 기록하며 33.52%를 얻은 박찬대 의원을 압도했다. 정 대표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1인 1표제를 밀어 붙였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정 대표의 강행군 전략은 지방선거와 당대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선택으로 풀이된다. 지방선거 성적은 정 대표 연임과 직결된다.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 고공 행진, 과반이 넘는 정권 안정 여론, ‘절윤(윤석열 단절)’을 두고 자중지란에 빠진 국민의힘 등 여러 호재에도 성적을 내지 못하면 정 대표는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다. 반대로 영남 등 험지 공략에 성공할 경우 정 대표 연임론은 탄력 받을 전망이다.
지원 유세를 명분으로 정 대표는 당원들과의 접촉면을 넓힐 수 있다. 21대 대선 당시 정 대표는 ‘골목골목 선대위 광주·전남 위원장’을 맡아 유권자들과 만났다. 대선 직후에도 3박 4일 일정으로 광주·전남을 순회하며 호남 당심 잡기에 주력했다. 광주·전남은 민주당 전체 권리당원 5명 중 1명에 해당하는 약 31만 명이 있는 텃밭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기초 단위에서 지도부급이 온다면 ‘당 차원에서 지지해 주는구나’ 이런 느낌이 있다. 확실히 주민들이 관심을 많이 가진다. 도움이 많이 된다”며 “대표 입장에서도 선거 끝나면 전대다. 어쨌든 지금 후보들이 다 본인이 (공천) 한 거다. 결과가 잘 나와야 전대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청래의 딜레마
정 대표에게 마냥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정청래 지도부 출범 이후 ‘당정 엇박자’ 논란이 커지면서 정 대표 리더십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APEC 정상회의 때 ‘국정안정법(재판중지법)’ 추진, 이 대통령 순방 기간 ‘1인 1표제’ 추진, 코스피 5000 목표 달성일에 민주당-조국혁신당 기습 합당 추진 발표 등의 논란으로 정 대표는 이재명 정부 지원보다 ‘자기 정치’에 몰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 지지층은 합당 찬성파인 ‘올드 민주당’ 대 반대파인 ‘뉴이재명’으로 분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뉴이재명’ 지지층은 정 대표가 ‘친문계(친문재인계)’ 부활을 꾀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혁신당 합당→탈당했던 친문계 복귀→친청 세력 확보’라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5월 28일 합당을 지지했던 친여 스피커 김어준 씨의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김용남 우리 후보가 제기되는 의혹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본인이 잘 헤쳐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후보 지원 유세를 하던 모습과 상반된 발언이었다. 자신의 지지층인 ‘올드 민주당’과 평택을 승리 성적표 사이에서 정 대표가 딜레마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북에서는 ‘민주당 대 무소속’이 아닌 ‘친청 대 반청’ 구도가 만들어졌다. 앞서 민주당은 ‘돈봉투 영상’이 나오자 김관영 후보를 제명했다. 이후 ‘이원택 식사비 대납 사건’ 관련 이중잣대 논란, 안호영 단식 부적절한 대응 등의 사건이 잇따라 터지며 ‘반청’계가 반발했다. 전북에서 ‘반청’ 정서가 확산되면서 김관영 돌풍의 동력이 되는 분위기다. 호남이 민주당에 가지는 상징성을 감안하면 ‘반청’ 정서 확산은 정 대표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관련기사 ‘반청’ 바람 심상찮네…정청래 연임 걸림돌 떠오른 전북).
민주당 다른 관계자는 “(이원택 관련 대응으로) 지도부 기준이 흔들렸다. 호남에서 김관영이 억울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것이 (전북의) ‘반청’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누가 추동한다고 해서 그런 세력이 생길 수 없다”며 “(친청 대 반청 진영의) 사실상 제2의 경선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청래 대항마는?
친명 진영에선 임기 초반부터 당정 관계를 둘러싼 잡음이 반복된 만큼, 정 대표가 연임에 성공할 경우 이 대통령과 긴밀한 협력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정 대표의 대항마로 거론되는 배경이다. 친명계는 김 총리가 정 대표와 달리 ‘당정 일체’를 이룰 수 있다는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김 총리가 여당 의원들과의 접촉을 늘리고 있는 부분에도 주목한다. 5월 1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12일엔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과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에는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신임 원내지도부와 만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국정과제를 뒷받침할 필수 법안 신속 처리 등 이재명 정부 성공을 위해 당과 정부가 한 팀으로 노력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김 총리는 선거 이후 총리직에서 사퇴할 것이 유력하다.
인천 연수갑에 출마한 송영길 후보도 당권주자로 거론된다. 송 후보는 인천 계양을을 이 대통령에게 넘겨줬다. 이번 재보궐 선거 공천에서는 계양을 대신 연수갑을 선택하며 선당후사 이미지를 부각했다. 송 후보가 이번에 당선되면 대표 이력이 있는 6선 의원이 된다. 친명계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중량감 있는 인물이라는 평이다.
송 후보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내란심판’ 전략을 비판하며 정 대표와 각을 세우고 있다. 5월 5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선거 지원은 후보자를 띄워주기 위한 것인데 지도부가 주인공이 돼선 안 된다”며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을 때 가는 게 맞지, 자기 방식대로 돕는 것은 오히려 부담될 수 있다”고 했다. 정 대표의 광폭 행보를 꼬집은 것으로 읽힌다.
5월 14일 한겨레 인터뷰에서도 “이재명 정부를 앞세워서 일 잘하는 지방정부를 선택해달라며 싸워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 정 대표가 이런 것을 강조하기보다 계속해서 국민의힘은 위헌 정당이라며 내란심판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이렇게 접근하면 영남권 선거에 과연 유리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전대 출마에 대해서는 “당원의 분명한 소환 요구가 있는지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