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인 1975년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우리 민속춤을 도안으로 한 10종의 시리즈 우표를 발행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우표를 통해 우리나라의 독특한 민속 무용을 해외에 널리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이 민속예능 우표 시리즈에서 제일 처음으로 다뤄진 것은 다름 아닌 살풀이(춤)와 무당춤이었다. 이 가운데 살풀이춤은 1990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무대 위에 올라 많은 관객을 매료시키고 있다.
무속음악의 살풀이 가락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추는 살풀이춤은 예인들에 의해 교방춤으로 발전되어 왔다. 사진=국가유산청 제공살풀이란 재난을 소멸시키고 행복을 맞이하고자 하는 종교적 바람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무속신앙에서 살풀이는 굿판에서 무당이 그해의 나쁜 기운 즉 살을 풀기 위해 추는 춤을 뜻한다. 이러한 무속음악의 살풀이 가락에 맞추어 추는 즉흥적인 춤이 바로 살풀이춤이다. 경기 지방에서는 ‘도살풀이춤’이라 불리기도 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추는 흐트러진 춤이라는 의미에서 ‘허튼춤’이라고도 한다.
살풀이춤은 무속이 음성적인 신앙으로 치부되던 조선시대에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된 무격(무당과 박수)이 예인 집단에 합류하면서 대중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이 굿판이 아닌 공연 무대에 오르면서 살풀이의 종교적 의례성과 주술적 성격이 사라지게 되고, 광대나 교방의 기녀 등 예인이 자유롭게 추는 예술적인 춤으로 다듬어지고 발전해 온 셈이다.
고 김숙자 선생의 도살풀이 춤사위. 사진=국가유산청 제공무속의 제례에서 무당이 죽은 이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또는 부정 낀 사람의 액을 씻어주기 위해 옷가지나 지전 등을 들고 춤을 췄다면, 예인들은 옷가지 대신 명주 수건을 손에 쥐고 즉흥적으로 멋을 부리며 춤사위를 펼쳤다. 이런 연유로 살풀이춤은 한동안 ‘수건춤’, ‘즉흥무’라고 불렸으나 전설적인 춤꾼 한성준이 1936년 극장 공연에서 ‘살풀이춤’이란 용어를 쓰면서부터 지금의 이름이 자리 잡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때 굿이 금지되자 무속인들 중 일부가 집단을 만들어 살풀이춤을 다듬으면서 점차 예술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그 맥이 이어져 오늘날 대표적인 한국춤으로 정착하였다는 시각도 있다.
살풀이춤은 살풀이 가락에 맞춰 슬픔과 한을 환희와 자유로 승화시키는 인간의 내면을 아름다운 춤사위로 표현하는 춤이다. 살풀이 가락은 8/12의 규칙적인 리듬(3박, 4박)으로 이루어진다. 반주에는 가야금을 비롯해 피리, 아쟁, 대금, 해금, 장고 등 삼현육각이 주로 쓰이며, 때에 따라 장고 가락에 애간장을 저미는 듯한 구음(입소리)으로 된 음악이 쓰이기도 한다.
살풀이 가락은 처음에는 느린 가락으로 고요하고 슬프게 연주되다가 중간에 굿거리장단으로 옮겨졌다 빠른 가락으로 변하고, 다시 느려진 가락으로 끝을 맺는다. 따라서 춤사위도 처음에는 느릿하고 고운 춤으로 시작되어 점차 빨라지면서 무수한 곡선을 그리며, 마지막에는 다시 고요하고 고운 춤으로 표출된다. 살풀이춤을 원과 선율의 춤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 이매방 선생이 살풀이춤을 추며 명주수건을 허공에 흩뿌리는 모습. 사진=국가유산청 제공예인들이 펼쳐 내는 살풀이춤은 일정한 격식 가운데서도 자유롭게 표출되는 예술적 창조성이 돋보인다. 고운 쪽머리에 비녀를 꽂고 백색의 치마저고리를 입은 춤꾼이 무대에 선 모습을 떠올려 보자. 춤꾼은 하얀 수건을 손에 들고 살풀이 가락에 맞추어 허공에 흩뿌린다. 몸을 움츠리고 서서히 움직이며 마치 세속적인 속박을 털어 버리듯 맺고 어르고 푸는 동작을 되풀이하는 춤꾼. 너울거리는 춤사위는 보는 이들을 신비와 환상의 세계로 이끌고 마침내 우리 춤 특유의 멋과 흥을 자아낸다.
살풀이춤의 특징 중 하나는 정중동(靜中動) 즉, 고요한 가운데 움직이는 아름다움이다. 제자리형의 ‘멈추는 사위’를 바탕으로 하여 ‘어르는 사위’와 ‘뿌리는 사위’로 전개된다. 살풀이춤이야말로 천지인(天地人)의 원리에 따라 우리 민족의 심성이 춤으로 형상화된 예술이라는 평가도 있다. 즉 춤에서 팔사위는 천(天), 발사위는 지(地), 호흡은 인(人)이라 볼 수 있는데, 살풀이춤의 춤사위는 팔과 발과 호흡, 이 세 가지가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형상을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살풀이춤은 경기도 당굿의 도살풀이 장단을 비롯해 호남 지역 등 지방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장단과 춤사위를 보인다. 이러한 춤 중에서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경기형 김숙자류의 도살풀이춤과 호남형 이매방류의 살풀이춤이다. 김숙자, 이매방 선생은 초대 살풀이춤 예능보유자이기도 했다. 현재는 김숙자류를 이어받은 양길순, 김운선 살풀이춤 보유자와 이매방류를 이은 김정녀 명예보유자를 중심으로 살풀이춤 전승 및 공연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