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자는 천국에서 젊은 시절의 남편을 다시 만나 제2의 부부 생활을 시작하는 주인공 해숙 역을 맡았다. 남편 낙준은 손석구가 맡았다. 김혜자와 손석구는 실제로는 마흔세 살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연기할 때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손석구는 ‘김혜자 선생님의 남편 역할’이라는 제안에 그 자리에서 출연을 결정했다.
#김혜자는 왜 “마지막 작품”이라고 말했나
김혜자는 2022년 제주도를 배경으로 저마다 아픈 사연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이병헌의 엄마이자 자식을 위해 묵묵히 살아가는 인물을 연기해 저력을 과시했다. 이번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그로부터 3년 만에 내놓는 새 주연 드라마다.

‘눈이 부시게’는 노년에 이르러 젊은 시절의 찬란한 기억을 잃은 주인공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뭉클하게 그린 판타지 드라마로 김혜자를 중심으로 한지민과 이정은 남주혁 등이 주연한 히트작이다. 감독과 작가는 또 한 번 ‘김혜자의 드라마’를 목표로 기획에 돌입해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완성했다. 제작진이 이 드라마를 ‘김혜자 프로젝트’라고 부르는 이유다.
김석윤 감독은 “김혜자 선생님을 기획 단계부터 정해두고 드라마를 시작했는데 특히 이남규 작가와 공동 집필가인 김수진 작가는 본인들이 쓰던 대본까지 중단하고 이번 김혜자 프로젝트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제작진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부분은 “어떻게 하면 김혜자라는 배우가 모든 걸 쏟아내는 판을 만들 수 있을까”였다.
김혜자는 이 같은 제작진의 의도를 접하고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김석윤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 결정적이었지만 동시에 “인간 사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자 “남편 낙준과의 인연은 현실에 없을 것 같은 아름다움이라 마음에 와닿았다”고도 했다.
드라마의 무대인 천국은 삶의 연장선이자, 생전 못 다한 일들을 해결하거나 인연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일단 천국에 도착한 사람들은 몇 살로 살지 정해야 한다. 대다수 사람이 젊은 나이를 택하지만, 해숙은 생전 ‘젊을 때도 예뻤지만 나이든 지금이 가장 예쁘다’는 남편의 말을 기억하고 천국의 나이로 80세를 택했다. 하지만 정작 천국에 먼저 도착해 있던 남편 낙준은 30대의 젊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에 배신감을 느낀 해숙과 그런 해숙이 여전히 사랑스러운 낙준의 2번째 인생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다.
김혜자는 드라마의 기획안을 접하고 남편 낙준을 연기할 배우로 ‘손석구가 어떠냐’는 제안을 먼저 했다. 김석윤 감독이 ‘눈이 부시게’ 다음으로 연출한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를 보던 김혜자가 ‘구 씨’ 역할로 개성 강한 연기를 선보인 손석구를 눈여겨봤던 터였다. 이 같은 뜻을 접한 손석구 역시 망설임 없이 출연을 수락했다.

#한지민과 이정은 “우리가 김혜자 선생님 지켜야 한다”
김혜자와 김석윤 감독이 다시 만나 드라마를 한다는 사실을 접한 배우 한지민과 이정은은 먼저 ‘출연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감독에 따르면 두 배우는 김혜자와 함께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고 이에 제작진은 기존에 없었던 배역을 새롭게 만들어 이들을 캐스팅했다. 한지민과 이정은은 김혜자와 ‘눈이 부시게’를 함께했던 관계다.
요즘 업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배우들의 자발적인 참여까지 가능케 한 건 김혜자을 향한 존경심 덕분이다. 김석윤 감독은 “한지민과 이정은 씨는 본인들이 김혜자 선생님을 지켜야한다고 말했다”며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두 배우의 참여로 이야기가 풍성해졌다. 우발적으로 탄생한 캐릭터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 있는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만족을 표했다.
김혜자는 지난 1년 동안 ‘천국보다 아름다운’ 촬영에 집중했다. “아주 즐거운 과정이었다”고 돌이킨 그는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도 밝혔다. 말은 이렇게 해도 그는 여전히 연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이번 드라마를 내놓으면서도 “하고 싶은 것도, 관심도 연기밖에 없다”고 말한 김혜자는 “다른 것들을 하라고 하면 아마도 빵점을 받을 것 같지만 연기는 제일 좋고 행복하다”고 아이처럼 웃었다. 다만 이제 나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원하는 대로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날들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주변에서는 ‘다음에 또 하라’는 말들을 건네지만 정작 김혜자는 “다음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답하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