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곽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면 아름다운 정자 '방화수류정'이 나타나는데 수원의 만세운동의 발화점이다. 1919년 3월 1일 수원 출신 독립운동가 김세환의 지시 아래 청년 지식인들이 '방화수류정' 부근에 모여 횃불을 밝혔다. 당시 수원상업강습소 교사였던 김노적은 주도자로 검거돼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방화수류정'에서 화홍문 방향으로 수원천을 따라 가면 '수원동신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1900년 8월 수원에 설립한 성서강론소부터 120년 역사를 이어온 곳이다. 일본 개신교 역사상 최초의 해외 선교사이자 수원에 이주한 최초의 일본인이던 노리마츠 마사야스가 성 안에 초가 한 채를 마련해 시작했다.
조금 더 가면 매향중학교와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가 나온다. 1902년 수원 최초의 여성 근대교육기관으로 설립돼 독립 영웅들을 배출해 낸 삼일여학교가 뿌리인 학교들이다. 바로 옆 삼일중학교 교정에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아담스기념관'이 있다. 미국 노스 아담스(North Adams) 교회의 후원으로 건립되었는데, 수원 출신 독립운동가 임면수가 만주에서 돌아온 뒤 신축 공사 감독을 맡은 건물이다. 교문 앞 수원천을 건너는 다리 '매향1교'는 삼일여학교 학감이던 독립운동가 김세환이 비가 오면 수원천 범람으로 등교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다리를 놓은 게 시초다.
'매향1교'를 건너 큰 길 방향으로 가면 '북수동성당'이 나타난다. 1897년 알릭스 신부가 '팔 부잣집' 중 한 채를 구입해 예비자들을 받으며 시작된 성당이다. 1931년 뽈리 신부가 부임해 이듬해 어머니가 주신 돈으로 수원시 최초의 고딕성당을 건립했다. 그는 일제의 압박에도 굴복하지 않고 한글로 된 교리서로 신자들을 가르치며 1948년까지 북수동성당을 지켰다.
현재 '북수동성당' 구역 일부는 원래 수원지역 천도교당의 본거지이자 3·1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천도교 수원대교구'가 있었다. 수원지역 최대 규모의 만세운동이었던 1919년 4월 3일 항거를 주도한 세력에는 천도교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길을 건너 '화성행궁' 김향화를 비롯한 수원기생 30여 명이 만세운동을 펼쳤던 곳이다. 576칸의 규모를 자랑하는 화성행궁은 평상시엔 관아 건물로, 임금이 행차했을 때는 임시 별궁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일제는 화성행궁을 헐어 병원으로 사용했고, 만세운동이 번져가던 1919년 3월 29일 자혜의원(봉수당)으로 위생검사를 받으러 간 기생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수원화성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서장대'도 연무대와 함께 3월 16일 수원 장날에 만세운동이 일었던 곳이다. 서장대에서 팔달문 쪽으로 가면 수원의 독립의지를 기리는 3·1독립운동기념탑과 대한민국독립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대한독립의 길을 걷다'의 마지막은 김세환 집터다.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인 김세환은 수원과 충청지역 만세운동을 이끌고, 삼일여학교와 수원상업학교 등 교육자로서 민족의식을 고취한 수원의 대표적인 독립지사다. 그가 살던 생가터에 세워진 건물에서 운영되는 카페를 통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다.
손시권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