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가 오랜 동맹관계인 우리나라에 앞으로 높은 수준의 방위비 분담을 요구할 것이란 관측이 나와 적절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을 거치며 사실상 외교 공백 상태였던 것을 새 정부가 서둘러 정비해 정교한 전략 수립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요신문i’는 지난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터뷰(전화)를 통해 차기 정부의 외교 정책 과제를 짚어봤다.

—지난 12·3 비상계엄 후 ‘한미동맹의 신뢰가 훼손됐다’는 평가가 많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외교·안보 공약 발표문을 통해 ‘불법계엄으로 훼손된 (한미)동맹 신뢰를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어떤 부분에서 신뢰가 가장 깨졌다고 생각하는가. 또 신뢰 회복을 위해 당장 필요한 과제를 꼽는다면.
“많은 부분에서 (신뢰가) 깨졌다고 본다. 군을 동원하는 계엄은 본질적으로 군사 작전과 관련된 사안이다. 한미동맹은 군사적 신뢰를 바탕으로 성립되는데 이번 계엄 시도는 동맹관계 전제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우방국도 당황스러울 사안인데 동맹국인 미국 입장에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이었고, 이는 동맹국 신뢰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사태가 한국 사회에 구조적으로 축적된 결과였다면 신뢰 회복이 어렵겠지만 특정 지도자의 독단적 판단에서 비롯된 예외적 상황으로 판단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탄핵과 같은 정치적 전환,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은 곧 신뢰 회복의 토대가 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 외교의 가장 큰 리스크는 뭔가.
“윤석열 정부 당시 ‘가치 외교’라는 이름 아래 외교를 지나치게 이념화시켰다. 이는 외교를 진영 대결 구도로 몰아가면서 국익 중심의 유연한 외교를 어렵게 만들었다. 지금은 과거 냉전시대처럼 양극 체제로 나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세계는 다극화된 국제정치 체제 안에 있으며 미국 중심 혹은 중국 중심의 양자 구도가 아닌 복잡한 외교 구조를 띠고 있다. 국제 질서의 다극화 현상 속에서 우리 외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념이 아니라 국익 중심의 전략이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국 고율 관세를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한미동맹과 중국과의 경제 협력 사이에서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하나.
“미국이 중국과 전략적 경쟁 구도를 강화할 때 한국 같은 동맹국들에 분명한 입장을 요구할 수 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만 보면 동맹국보다 자국 위주로 나서고 있다. 이처럼 재조정되는 국제질서 속에서 미국이 규정한 세계 현상을 그대로 수용하는 ‘수용외교’가 아닌 이재명 후보가 주장한 ‘국익중심 균형외교’를 해야 한다. 현상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판단을 바탕으로 자율적 외교 노선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역시 중국과 관계를 교정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 의존했던 중국은 자국 내 기술 축적을 이루며 우리나라와 경쟁 관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국가에 종속된 외교가 아닌 우리의 국익을 기준으로 한 독자적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 중심 외교 스타일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협상 자체가 정교해야 한다. 일단 국가적 규모의 준비가 필요하다. 방위비 협상, 통상, 안보, 과학기술 등 각각의 사안을 분리해 다룰 수 없다. 관련 모든 부처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전 국가적 대응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다’는 식의 협상은 현재로선 어렵다.”

“민감국가 지정 후 미국 상원의원들과 소통했을 때 (민감국가 지정은) 핵무장에 대한 우려라고 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직 인수위에 이 사실을 전했고, 트럼프 행정부도 이에 동의했다고 전해졌다. 보수 정치권이나 윤 전 대통령의 (핵무장 관련) 발언으로 기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흔들릴지, 첨단 과학기술(핵기술) 관련 한미 협력이 가능할지에 대해 미국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민감국가 지정 해제를 위해선 미국과 신뢰 회복이 핵심이다. 우리 정부가 더욱 솔직하고 투명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 단순한 통상 이슈가 아니라 안보 신뢰의 문제로 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와도 관세 협상을 벌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 협상이 진행된다면 한미 간 외교·안보 사안이 관세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나.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통상만이 아닌 외교·안보까지도 관세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협상의 뚜껑’을 누가 먼저 여느냐다. 누가 어떤 사안을 먼저 꺼내고, 어떻게 주도하느냐에 따라 판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이슈부터 협상 테이블을 구성할지에 따라 우리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우리도 ‘우리만의 협상 판’에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대선이 얼마 안 남았다.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과제로 가장 필수적인 것은 뭔가.
“북핵이 고도화되면서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고, 북핵을 사실상 인정하는 트럼프 정부의 발언을 보면 한반도 비핵화가 묘연해지는 형국이다. 이건 자연스럽게 한반도 긴장 고조로 연결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대북 유화 정책을 펼친다고 해도 여기에 기대는 것이 아닌 우리의 별도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북미 관계 개선에 발맞춰야 하지만 미국의 정책 변화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과거 6자 회담이나 4자 회담처럼 국제사회가 관여하는 다자 안보체제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외교 리더십을 갖고 다자주의 복원을 견인해야 한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