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선거에서 3번 졌던 국민의힘은 2번씩이나 패장을 당대표로 재등용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2017년 5·9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패했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였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 열린 대선인지라 ‘기울어진 운동장’을 빌미로 자신의 패전 책임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때문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대선 패배 직후부터 당권 도전 의지를 가시화했다.
그는 대선 패배 직후 미국으로 출국했다. 홍 전 시장은 미국에서 아들 부부를 만나는 등 휴식을 취하는 듯했지만 이내 그의 복귀설이 표면화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바로 다음날인 5월 10일부터 19일까지 열흘 동안 모두 17건, 하루 평균 1.7건의 페이스북 글을 올리면서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 비판과 당 혁신을 주제로 목소리를 높였다. 당대표를 염두에 둔 의도된 행동으로 읽혔다.
패장 홍준표의 등판에 대한 당내 불만은 의외로 거의 없었다. 대안부재론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무주공산임을 확인한 홍 전 시장은 출국한 지 한 달도 안 된 그해 6월 4일 귀국했다. 그리고는 7월 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옛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65.7%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경쟁자였던 신상진 원유철 후보를 가볍게 누르고 당권을 거머쥐었다. 대선 패배 불과 두 달 만에 당의 간판으로 복귀했다.
대선 패배 책임론이 있기는 했지만 홍 전 시장 복귀는 선행사례가 있었기에 큰 장애물이 없었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패했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앞선 모델이었다.
이 전 총재는 DJP연대로 대세론이 꺾였고, 불과 1.6%포인트 차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분패했다. 그 역시 홍준표 전 시장처럼 대안부재론이 재등판으로 이끌었다. 이 전 총재에게는 계속해서 역할론이 따라붙었다. 서울시장 출마설, 서울 종로 보궐선거 출마설에다 결국에는 총재 경선 출마설이 나오는 등 다양한 복귀 시나리오가 내내 떠돌았다.
2017년 대선 패배 직후 홍 전 시장이 페이스북 글을 연이어 쓴 것처럼 이 전 총재 역시 계파정치 탈피와 당 쇄신작업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흘리며 재등판 명분을 차곡차곡 쌓았다. 당권을 향해 계속적으로 여론몰이를 하면서 부정적 여론을 잠재웠다.
결국 그는 다시 전면에 나섰다. 당내에서 존재감을 유지하던 이 전 총재는 대선 다음해인 1998년 8월 전당대회에서 55.7%의 과반 득표를 얻으며 총재로 선출됐다. 이회창 대세론을 의심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고, 이를 발판으로 그는 2002년까지 당권을 지키며 차기 대선에 재도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수 정당에서 나왔던 2번의 재등판 사례는 모두 희극이 아니라 비극으로 끝났다. 홍 전 시장은 당대표가 된 지 1년 만인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역대급으로 지적되는 대참패를 당한 뒤 스스로 물러났다.
이 전 총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맞붙어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나중에 허위로 밝혀졌지만 두 아들을 둘러싼 병역 면제 논란은 그의 발목을 붙들었다. 1997년 이 전 총재에게 치명타를 안겨준 DJP연대에 이어 이번에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승리21 후보가 단일화를 했다. 57만여 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이 전 총재는 다시 석패의 쓰라림을 맛봐야했다.
대세론 바람몰이로 두 번이나 대권에 도전했던 이 전 총재는 대선 직후인 2002년 12월 20일 기자회견을 갖고 “깨끗이 물러나겠다”면서 정계은퇴 선언을 했다. 대선 때마다 대세론을 형성했던 이 전 총재였지만 국민의힘이 악몽으로 기억하는 ‘잃어버린 10년’을 만든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이 전 총재와 홍 전 시장이라는 과거 실패 사례를 단순 대입해본다면 패장 김문수 후보의 재등판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더군다나 앞서의 홍 전 시장이나 이 전 총재에 비해 김 후보의 당내 입지는 그리 탄탄한 게 아니라는 평이다. 그러나 ‘대안부재론’은 여전히 국민의힘의 숙제다. 김 후보 역시 향후 역할에 대한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패배로 만신창이가 된 당을 추스르고 차기 주자를 키워내는 징검다리형 관리 역할 당대표가 탄생한 것은 2002년 12월 대선 이후였다. 그때 이회창 전 총재는 재수 끝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이 전 총재는 떠났고 한나라당은 노동부 장관·서울시장 출신의 최병렬 대표를 새 선장으로 뽑았다. 2003년 6월 26일 전당대회에서였다.
“차기 주자를 키우는 역할을 하겠다”면서 ‘인큐베이터론’을 내세웠던 최 전 대표는 정당 대표선거 사상 가장 큰 규모인 전국 23만여 명의 선거인단에 의해 뽑혔다는 점에서 강한 권위를 확보했다. 그때 나이가 65세로 차기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것이 그에 대한 호평을 만들어냈다. 대권욕이 없음을 확약했고, 정치 신인을 키우는 밀알이 되겠다는 의지를 최 전 대표는 드러냈다.
그러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보수 재건을 외쳤던 최 전 대표는 해결사다운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불법 대선 자금 의혹이 터졌는데 책임을 이 전 총재에게 돌리면서 이회창 지지세력으로부터 고립을 초래했고 리더십이 흔들렸다.
보수의 반성과 참회를 내세웠지만 개혁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대대적 물갈이를 통한 공천 혁명을 언급하며 당내 고령 중진들에 대해 희생을 압박했지만 정작 자신에 대한 불출마 요구는 외면했다. 그의 리더십은 무너져 내렸고 대표 취임 8개월도 안된 2004년 2월 22일 사퇴 의사를 밝혔고, 3월 23일 임시전당대회를 통해 물러났다.
‘능력 부재’라는 비판에 시달린 끝에 사실상 강제 퇴진의 모습을 보인 그의 퇴장은 가뜩이나 힘이 떨어진 보수 정당을 더욱 나락으로 이끌었다. 취임 8개월 단명도 문제였지만 총선이 한 달도 채 안 남은 시점에서 야당 대표가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었다. 이후 ‘선거의 여왕’으로 불린 박근혜 체제가 등장하면서 재집권의 기반을 만들어냈지만 ‘징검다리형 대표’는 보수 정당에 아찔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대선에서 패해 당이 침체돼 있고, 사분오열돼 있는 상황에서 관리형 대표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모든 계파가 주도권을 잡으려 다툼을 벌이는데 제대로 통제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당 구성원 모두가 납득할 수 있고, 또 뚝심 있게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는 인물을 모셔 와야 한다”고 했다.

과거 대선 패배 직후 보수 재건, 그리고 차기 집권 준비라는 임무를 받고 들어왔던 당대표들은 모두 실패했다. 이로 인해 국민의힘 내부에선 이번만큼은 과거와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패장의 재등판도, 징검다리형 당대표도 실패했던 만큼 제3의 길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일찌감치 차기 주자를 등판시켜 키우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1 야당을 이끌면서 체급을 키웠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더군다나 국민의힘은 그동안 이른바 ‘용병정치’로 인해 큰 상처를 입은 터라 이번만큼은 외부 영입이 아닌 당내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거목으로 키워야한다는 말도 곳곳에서 쏟아진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통령, 문재인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두 치열한 경쟁을 거쳐 당의 간판으로 올라섰고 끝내 대통령이 됐다.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내부에도 인재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함정에 빠져 내부를 들여다보는 노력이 소홀했을 뿐 찾아보면 좋은 인재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나갔던 이들부터 차기 당권주자로 떠오른다. 패장 김문수 후보를 제외하면 4강에 올랐던 인물은 한동훈 전 대표와 안철수 의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다.
정계 은퇴를 밝혔고 이번 대선에서 어떤 기여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홍 전 시장은 일단 당권 후보군에서 탈락이 유력하다. 그렇다면 마지막 양자 대결까지 갔던 한동훈 전 대표·안철수 의원이 일단 당권 획득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것으로 거론된다.
‘조선제일검’이라는 그의 별칭이 보여주듯 말싸움에 능한 한 전 대표 경우, 무엇보다 야당 대표로서 전투력이 돋보인다는 평이다. 차기 대선도 중요하지만 5년 동안 이재명 정권과 겨루는 제1 야당의 힘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당원들이 검투사를 선택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러나 한 전 대표는 원내세력을 아우르기 어려운 원외 당대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핸디캡이 있다. 친윤계의 비토 기류가 여전히 높다는 점도 한 전 대표의 고민이다. 전당대회가 열린다면 원내 세력 표를 모으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특히 이번 대선과정에서 김문수 후보를 돕기는 했지만 초반부터 합류를 하지 않는 등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 것도 약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 의원이 차기 당권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이유다. 4강 후보 중 유일하게 지난 대선에서 공동선대위장단에 합류한 안 의원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가를 이번 대선 과정에서 받았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고 김문수 후보 대선 유세에도 열심을 쏟으면서 ‘달라진 안철수’를 공인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 의원이 당권을 염두에 두고 이런 행보를 보였다는 말도 뒤를 잇는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징검다리형 관리 대표 체제는 과거 사례나 당이 비상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없다”며 “개혁 이미지가 강한 김문수 후보의 재등판이 현재로서는 유력시되고 차기 주자를 조기 등판시킬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일찍부터 매를 맞아야 해 차기 주자 보호가 어려우므로 또다시 용병 영입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