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고등법원 민사3-1부(견종철·최현종·배용준 판사)는 세무사 18명이 산인공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산인공 등이 원고 측 세무사들에 3700만 원씩 지급하라"고 지난 4월 9일 선고했다.
이번 소송은 2021년 5월 치러진 제58회 세무사 2차 시험이 발단이 됐다. 당시 20년 이상 근속한 공무원 출신은 면제받는 '세법학1부' 과목 특정 문항에서 절반 넘는 수험생들이 0점을 받았다. 결국 이 과목에서만 과락률(40점 미만)이 82%를 넘기며 일반 청년 수험생들은 대거 탈락하고 말았다.
실제 수험생들이 탈락한 자리 대부분은 20년 이상 공무원 출신들이 채웠다. 통상 2.53%였던 공무원 합격률이 그해 21.39%로 약 10배 올랐다. 공무원 합격률을 의도적으로 높였다는 의혹이 일었다.
당시 논란은 정치권까지 번졌다. 결국 고용노동부가 이듬해인 2022년 감사에 나섰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그해 감사원에 감사도 청구했다. 두 기관 감사에서 모두 '일관되지 않은 채점기준'과 '출제·채점 적정성 검토 미흡' 등이 적발됐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는 2024년 7월 법무사·세무사·노무사 시험 등에서 공무원 출신에 일부 과목을 면제해주는 특례제도 폐지를 권고하기도 했다.
이번 소송에서 1심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는 2024년 10월 11일 판결에서 "채점 과정에서 재량권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었더라도,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만큼 객관적 정당성을 잃은 위법한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원고 측 주장을 기각했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같은 답안에 다른 점수를 부여하는 등 산인공 부실채점으로 원고들이 시험에 불합격함으로써 재산상 손해 및 정신적 손해를 입은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며 "원고들이 제때 합격 처리됐다면 더 일찍 세무사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번 재판 원고인 세무사들은 산인공이 감사 이후 실시한 재채점 덕분에 시험을 치른 지 1년 3개월 만인 2022년 8월에야 구제된 이들이다. 통상 세무사 수습기간이 6개월인 점을 고려하면 현재 대부분이 3년 차 이하 2030세대 청년 세무사들이다.
하지만 산인공이 판결에 불복하며 사건은 대법원으로 향하게 됐다. 특히 산인공은 최근 김앤장 소속 변호사 7명을 선임해 법률대리인단을 새로 꾸렸다.
소송에 참여한 청년 세무사들 사이에선 비판이 거세다. 한 세무사는 일요신문에 "산인공은 감사로 각종 부실이 적발되기 전까지 오랜 기간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었다"며 "이번 소송은 손해배상 자체보다는 당시 수험생들의 고통과 상처 및 그에 따른 책임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아직 사회 초년생들을 상대로 대형 로펌을 선임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에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산인공은 공공기관이므로 소송비용도 혈세를 쓸 수밖에 없다. 이에 원고 세무사들에 줘야 할 손해배상액과 로펌 선임비용이 얼마나 차이 날지도 의문이다.
산인공 측은 "상고를 제기하며 법무법인 3곳과 법무심의위원회를 통한 제안서 평가를 했고, 그 결과 김앤장과 소속 변호사를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하게 됐다"며 "법률대리인 선임비용은 계약내용이라 공개할 수 없으나, 2심 손해배상액이 약 6억 6000만 원이란 점을 고려했을 때 법률대리인 선임비용이 이와 대등한 금액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희 공단은 세무사 시험 때와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기존 1인 채점 방식을 2인 채점으로 변경했다"며 "채점 전 사전교육 강화, 채점 진행 중 특이사항 발생 시 재검토를 실시하는 등 엄정하고 공정한 시험이 시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단 점을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이 채용시험 부실로 개인에 수천만 원 단위를 배상한 경우는 흔치 않다. 2024년 수학능력시험 수험생 43명이 "1교시 시험 종료 벨이 1분 30초 일찍 울렸다"며 1인당 2000만 원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는 "국가가 수험생 2명에 각 100만 원, 나머지에 각 300만 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이 3월 나온 바 있다.
그에 앞서 2022년에는 교원 임용시험 수험생 44명이 "코로나19 집단 확진으로 시험 응시를 제한받았다"며 1인당 1500만 원씩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1·2심 재판부 모두 국가에 1인당 1000만 원씩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례가 있다.
산인공은 2021년 세무사시험 외에도 '2023년 정기 기사·산업기사 시험' '2023년 제60회 변리사 1차 시험' 등에서도 부실 문제가 드러나 논란을 일으켰다. 반복되는 사고로 2023년 6월 어수봉 당시 산인공 이사장이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임기만료를 8개월 앞두고 사임하기도 했다(관련기사 '또 재채점' 거듭된 시험 부실관리 산업인력공단 왜 이러나).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