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 경협은 1988년 노태우 정부의 7·7선언을 계기로 본격적인 기반이 마련됐다. 7·7선언은 남북 주민 간 상호 교류를 허용하고 남북 간 교역을 ‘민족 내부 교역’으로 간주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1998년 금강산 관광 시작에 이어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과 4대 경협 합의서 체결 등을 통해 정부 주도의 경협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대표적으로 개성공업단지(개성공단) 사업이 있다. 남북 도로·철도 연결 사업도 이 시기 주요 경협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이명박 정부의 5·24 대북제재 조치로 남북 경협은 중단됐다. 2016년 2월엔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이유로 개성공단 운영 중단을 결정하고 남측 근로자들을 모두 철수시켰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 경협 활성화를 통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겠다고 밝혔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남북 경협은 진전을 보지 못했다. 2020년 6월 북한이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남북 간 소통 창구가 완전 차단됐다.
윤석열 정부에서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70년 동안 전체주의 체제와 억압 통치를 이어온 북한은 최악의 가난과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북한 체제에 대한 적대적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해 1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당 전원회의에서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선언했다. 지난해에는 우리 측이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전면 정지시키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해 남북 간 긴장이 더욱 고조됐다.

이재명 정부는 우선 군사적 긴장을 낮추는 방법으로 대북 유화 정책에 들어갔다. 군 당국은 지난 11일 전방 전 구역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고, 통일부는 지난 9일 민간단체를 상대로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요구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취임 선서에서 “북핵과 군사도발에 대비하되 북한과의 소통 창구를 열고 대화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외적 변수에서 넘기 어려운 벽이 많다. 먼저 2016년 9월 북한의 제5차 핵실험을 계기로 대폭 강화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꼽힌다.
유엔 헌장에 따르면 유엔 안보리 결의는 유엔 회원국에 법적 의무로 부과된다. 회원국인 우리나라는 5·24 조치 등 독자 제재는 해제할 수 있어도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에 반하는 경협은 추진하기 어렵다.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에 나서지 않는 한 기존 대북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요구가 거세 우리 정부 입장에선 운신의 폭이 좁다.
남성욱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숙명여대 석좌교수)은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입장을 바꾸긴 쉽지 않은 데다 핵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 결의도 완화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악화된 남북관계에서 경협 추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관세 전쟁 등으로 달아오른 미·중 갈등 구도도 장애 요인이다. 북·중·러, 한·미·일로 나눠진 진영 대립이 굳어질 경우 남북 경협 추진에 대한 주변국의 이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 5월 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압박 중단을 촉구했다. 이는 미국에 대항하는 북·중·러 연대 의지를 다진 것으로 풀이됐다.

당장 우리 정부의 가능한 역할은 북·미 정상의 소통, 이어 남·북 정상 소통을 이끌어내기 위한 ‘중재자’ 로 좁혀진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전후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소통 재개 의지를 밝힌 뒤 최근 친서 전달 등으로 실제 소통 시도에 나선 상태여서 우리 정부도 이러한 분위기를 최대한 이용할 여지는 있다. 김현욱 세종연구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 등을 통해 대북제재 완화를 먼저 언급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북한은 북·중·러 연대를 등에 업고 단순한 제재 완화를 넘어 더 큰 것을 요구하려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정권 교체로 대북 정책 방향이 크게 전환된 만큼 여야, 보수-진보 간 벌어진 대북 정책 기조를 다시 좁혀 공감대를 쌓는 노력도 수반돼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박근혜 정부 때 개성공단 철수 사례처럼 국내 정치권 문제나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수십 년 쌓은 남북 경협 사업이 중단되는 일이 다시 반복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