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패배 직후만 하더라도 국민의힘 주류 친윤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12·3 비상계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파면, 대선 참패로 이어진 지난 몇 달 동안 친윤계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대항력을 갖추지 못했다. 차기 당권주자 물색은커녕 전당대회를 해야 할지, 비대위 체제를 지속해야 할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6월 16일 원내대표 선거를 기점으로 주류가 조금씩 정신을 차리는 기색이 보인다. 전당대회 등 당내 진로를 정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붙은 인상이 역력하다. 주도적으로 정통성 있는 후보를 선출해보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원내대표 선거 승리 후 이틀 동안 당내 선수별 간담회를 마친 송언석 원내대표는 18일 기자들과 만나 “많은 의원이 조기 전대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해줬다”며 “실무적으로 최대한 빨리 할 수 있는 날짜가 언제가 되는지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마땅한 당권주자를 구하지 못했던 친윤 상당수는 비상대책위 체제 연장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송 원내대표의 발언을 살펴보면 전당대회 결과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 것으로 읽힌다.
국회 상황도 친윤의 태도 변화를 몰고 왔다. 더불어민주당이 8월 2일 전대를 개최하면서 여당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는 판에 국민의힘이 넋 놓고 있을 수 없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9월부터 예산과 국감 등이 펼쳐지는 정기국회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무리 늦어도 8월 중순에는 전당대회가 열릴 전망이다.
친윤은 오랫동안 각을 세워왔던 한동훈 전 대표는 물론, 김문수 전 대선후보에 대해서도 마뜩치 않은 감정을 가져왔기에 ‘적통’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구인난에 시달리다 보니 최근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권성동 의원을 당대표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안철수 의원 동선에 시선이 모아진다. ‘민심투어’ 간판을 내걸고 6월 18일부터 전국 방문에 나서자 “안철수의 당권 도전이 시작됐고 정서적 동일체로 변모한 친윤이 협업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고개를 들었다. 특히 안 의원은 민심투어 첫 행선지로 국민의힘 열혈 지지층과 당원들이 밀집해 있는 대구를 선택했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마다하지 않았다. 안 의원은 대구에 이어 부산, 대전 등을 차례로 방문한다.
더욱이 안 의원은 친윤과의 주파수를 일치시키는 발언을 민심투어 첫날부터 쏟아냈다. 그는 6월 18일 매일신문 인터뷰에서 국민의힘 혁신위원회 구성을 놓고 송언석 원내대표와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의 의견이 엇갈리는 것을 두고 “송 원내대표의 제안대로 혁신위에서 맡아서 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했다. 대선 패배 이후 당 쇄신과 관련, 혁신위 구성을 제안하는 송 원내대표와 여론조사를 통해 자신의 개혁안을 평가하자는 김 비대위원장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송 원내대표의 손을 들었다.
안 의원은 당대표 출마 표명을 하지는 않았다. 모호성 전술을 통해 초반부터 쏟아질지 모르는 매를 피하는 작전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매일신문 인터뷰에서 “(당대표 출마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아직 전당대회 일정이나 룰이 정해지지 않은 시점이기에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친윤계가 안 의원을 낙점했다면,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국민의힘 내에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을 쇄신하기 위해선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공감대가 퍼져 있다.
윤 전 대통령 비상계엄을 반대하고, 탄핵에 대해서는 찬성했던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윤석열 정부와 완전히 인연이 없다면 정통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만큼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장 출신 안 의원이 여러모로 안성맞춤이라는 판단이 당 주류 내부에서 섰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완전히 분화되었기에 친윤이라는 이름을 이제는 붙이기조차 어렵지만 정치적 동질성이나 일체감을 가진 세력은 맞고, 실제 그렇게 뭉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100점짜리 당권주자를 당장에는 구할 수 없는지라 고육지책을 쓸 수밖에 없다. 수도권 확장성이나 젊은층에 대한 소구력 등을 따져볼 때 안철수 의원은 향후 확장성이 좋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전대 출마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다. 1987년 이후 보수정당이 대선에서 3번 패했을 때 패장이 다시 당권을 거머쥔 사례가 2번이나 있었기에 이번에도 선례를 따를 수 있다는 분석이 줄을 이었다. 탄핵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41%의 득표율을 올린 사실을 소환하며 ‘졌지만 잘 싸웠다’ 분위기도 만만치 않았다.
김 전 장관 역시 당권 도전 의지가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대위 해단식에서 “당내 민주주의가 무너졌다”고 작심 비판했던 김 전 장관은 최근 비공식적으로 정치권 인사들과 두루 만나며 당 개혁 방안에 대해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개 행보에도 열심이다. 김 전 장관은 6월 14일 자신의 SNS에 서울 북한산 정상 등반 사진을 올렸다. 사진 해시태그로는 ‘파파미(파도파도 미담만)’ ‘문수형’ 등을 내걸었다. 자신의 긍정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모습이었다. 정치권에선 이를 당권 출마 행보로 읽었다.
김 전 장관이 대선 후보이던 시절 비서실장을 맡았던 김재원 전 최고위원은 6월 17일 SBS 라디오에 나와 김 전 후보의 전대 출마에 대한 질문에 사견을 전제로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이어 그는 “야당으로서 정체성을 제대로 깨달아야 하고 야당이 무엇인지 스스로 역할을 인식해야 하는데 지금 당내 지도자들이 과연 그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라며 “당이 어떻게 가야 할 것이라는 데 대한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친윤 세력에 대한 구애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같은 방송에서 “김 전 장관이 후보교체 당무감사에 부정적 입장을 갖고 있다”는 취지로 발언, 친윤계 의원들의 입장에 김 전 장관이 동조하고 있다는 뜻을 나타냈다.
김 전 장관은 여론조사에서도 한발 앞선 양상을 보인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6월14~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차기 당대표 적임자를 조사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김 전 장관 20.3%, 한동훈 전 대표 16.3%가 나왔다. 안철수 의원 9.6%,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 6.1%, 나경원 의원 5.3% 순이었다.
국민의힘에서 3선 의원을 지낸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국민의힘 새 당대표는 김문수 전 장관 말고는 대안이 없다”며 “보수정당의 정통성과 혁신 이미지를 동시에 가져올 수 있는 정치인이 지금 김문수 말고 도대체 누가 있느냐”고 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을 바라보는 친윤계의 시선은 불안과 우려가 교차한다. 이번에 선출되는 당대표는 내년 지방선거를 지휘하게 되는데 혁신을 내세워 좌충우돌할 걱정이 크다는 걱정을 상당수 의원들이 내놓고 있다. 김 전 장관이 당대표에 출마할 경우, 친윤 진영과 다시 갈등을 빚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출사표도 임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전 대표는 일찌감치 당원 가입 운동을 펼치고 현안 관련 메시지를 아끼지 않는 등 전대 출마를 준비해왔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을 살리고, 이재명 정부와 싸울 수 있는 ‘해결사 이미지’를 앞세울 것으로 점쳐진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6월 19일 채널A 라디오에 나와 한 전 대표가 다가올 전당대회에 출마,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 의원은 이날 “한 전 대표에 대해서는 우리가 많이 보지 않았나.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나가는 분이다. 주변에서 말리는지 솔직히 모르겠고, 말린다고 하겠지만 본인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친한계 내부에서는 한 전 대표의 전대 출마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성국 의원은 6월 18일 YTN 라디오에 나와 “만약 출마한다면 (당선) 가능성은 충분히 제일 높다”면서도 “지금 주변에서는 부정적 여론을 더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 전 대표의 출마에 대한 만류 기류가 나오는 것은 정치적 계산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당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원외인 한 전 대표로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고 책임론에 빠져들 경우, 정치적 재기가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6월 16일 BBS라디오 ‘금태섭의 아침저널’에 나와 한 전 대표 출마설과 관련 “지금 당대표가 돼서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성과를 못 내면 물러나는 경우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훈은 물론, 김문수까지 아우르는 동반 불가론도 제기됐다. 6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혁신 토론회에서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김문수 전 대선후보와 한동훈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한다면 혁신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중진 의원은 “국민의힘은 무언가 전환점이 필요한데 그 계기가 이번 전당대회”라며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비판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하고 새로움을 던질 수 있는 당의 새 얼굴이 나와야 내년 지방선거에서 재기가 가능한데 이 이미지를 구현하는 전략을 내세워야 당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