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흰색 모자를 눌러 쓴 남성이 지하철 4호 칸 중간에 서 있다. 이 남성은 백팩에서 페트병 하나를 꺼낸 뒤 백팩을 다리 사이에 내려놨다. 그리곤 페트병 뚜껑을 열고 승객들 사이로 아랑곳없이 노란색 액체를 지하철 바닥에 뿌렸다. 노란색 액체는 바로 휘발유였다. 두 번에 걸쳐 페트병 안에 든 휘발유를 모두 지하철 바닥에 뿌려 쏟았고 휘발유는 세로 약 6.8m, 가로 약 1.8m의 범위로 퍼졌다.

지하철 객실 내부가 혼란스러워졌지만 휘발유를 뿌린 남성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천천히 몇 걸음 뒤로 걸어가더니 쭈그리고 앉아 바닥에 뿌린 휘발유에 불을 붙였다. 불은 휘발유를 타고 순식간에 번졌고 검은 연기가 4호 칸을 가득 메웠다. 불과 20여 초 만에 벌어진 일이다. 만약 넘어진 임산부가 2~3초만 늦게 도망쳤더라면 넘어지면서 옷과 몸에 묻은 휘발유 때문에 온몸에 불이 붙었을 수 있다.
화재가 난 4호 칸 승객들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모습에 놀라 옆 칸에 있던 승객들도 함께 또 그 옆 칸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불길이 옆 칸까지 번지지 않았지만 검은 연기가 몇 초 만에 확산돼 CCTV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가득 찼다.

당시 5호선 열차에는 승객 481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들은 갑작스런 방화로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 내몰렸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지하철 내장재를 불연성 소재로 교체해 다행히 불길이 내장재와 차체로 옮겨 붙지 않았지만 CCTV에서 보듯 검은 연기는 빠르게 확산됐다. 검찰은 “화재 재연 실험 결과 급격하게 화염이 확산하는 휘발유 연소 특성상 승객 대피가 늦었다면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고 설명했다.

일부 승객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4번 칸에 뛰어 들어가 객실 내 비치된 소화기로 불을 껐다. 위험하고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몸이 불편한 노약자 승객들의 대피를 도운 승객들도 있었다. 아찔한 위기 상황에서 더욱 돋보인 성숙한 시민 의식이었다.
질식해 쓰러진 것으로 보이는 승객을 시민 4명이 들것으로 여의나루역까지 수백 미터 운반했는데, 놀랍게도 그가 바로 방화범이었다. 그는 현행범으로 검거됐다. 이들 시민 4명은 모두 현직 경찰이었는데 출근 중이던 서울경찰청 기동본부 8기동단 84기동대대 정성환 순경과 신동석 순경, 종로경찰서 통합수사 3팀장인 정재도 경감 그리고 퇴근 중이던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관 이주용 경위다. 정 경감과 이 경위는 지하철 객차에서 노약자들이 하차하는 것을 돕기도 했다.

치밀한 계획 범행이라는 점도 드러났다. 원 씨는 범행 열흘 전인 5월 21일 주유소에서 휘발유 3.6ℓ를 구입하고 토치형 라이터를 준비했다. 휘발유를 구입할 땐 오토바이 헬멧을 착용해 오토바이 운전자로 가장했고 계산도 현금으로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5월 22~27일에는 정기예탁금과 보험 공제계약을 해지하고 펀드를 환매하는 등 전 재산을 정리해 친족에게 송금했다.
범행 전날인 5월 30일에는 오전 8시 58분부터 오후 5시 43분까지 8시간가량 휘발유를 백팩에 휴대한 채 1, 2, 4호선 지하철을 타고 영등포역, 서초역, 신림역, 강남역 등 10여 개 서울 주요 지하철역으로 이동하며 범행 장소와 시간을 물색했다.
전동선 프리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