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맞는 청와대. 조직과 시설 면에서 상당한 변화가 예고된다. |
이제 곧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게 될 청와대는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박근혜 당선인은 역대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으로 청와대에 입성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배우자나 가족 없이 혈혈단신으로 청와대 생활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청와대 안팎에서는 상당한 변화도 예고되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여성이라도 배우자가 있었다면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이지만 ‘싱글 대통령’이라 골머리를 앓는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퍼스트레이디(영부인)’의 역할을 어떻게 할지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배우자는 물론이고 직계가족 중에서도 영부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부인이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 본관 1층에는 영부인 집무실이 따로 마련돼 있는데 그곳에서 각종 업무와 청와대의 안살림을 처리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소외계층을 돌보고 여성이나 어린이와 관련된 행사를 챙기는 등 영부인을 찾는 곳도 꽤 상당하다.
외교적으로도 영부인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정상회담과 같은 주요 회의나 큰 행사에 참가한 해외 각국의 지도자 및 영부인에게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관광을 주최하는 것도 영부인의 몫이다. 또한 굳이 영부인이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해외 행사도 많으나 국제 관례상 꼭 부부가 동반해야 하는 자리도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다양한 방법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우선 국내에서의 영부인의 역할은 대폭 축소될 예정이다. 영부인이 주최했던 행사들은 국무총리실이나 기타 비서실에서 도맡아 처리하는 방향으로 밑그림이 그려졌으며 나머지 형식상 영부인이 참여했던 부분은 아예 폐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해외 행사도 영부인의 역할이 비교적 적은 곳에는 박 당선인 홀로 참석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상태다. 하지만 영부인의 공석이 결례가 되는 자리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이때는 사회적 시선과 효율성을 따져 국무총리나 외교부 장관의 부인을 대동하는 방법 또는 주재 외교관이나 그의 부인과 동반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는 경호팀과 보좌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우선 박 당선인에게는 배우자나 자녀가 없기에 이들을 경호하거나 보좌하는 인력은 축소된다. 대신 성별 비율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현 정권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의 경호원과 보좌진의 절대 다수는 남성이었다. 여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겨우 한두 명 끼어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박 당선인의 청와대 입성으로 여성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더욱이 보좌진의 경우 성별에 따라 현실적인 제약을 받는 부분이 적으나 경호원은 그렇지 않아 변화의 폭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경호원은 국내외 외부 일정을 수행할 때 한시도 대통령 곁을 떠나선 안 된다. 그러나 경호원이 남성일 경우 박 당선인이 화장실이나 여성 전용 공간을 이용할 땐 서로가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이런 사소한 이유에서부터 밀착 경호에는 여성이 더욱 적합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 당선인 역시 여성 경호원을 선호하는데 여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선후보 시절 박 당선인은 유난히 여성 경호원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 당선인보다 덩치가 큰 남성 경호원을 대동하면 유권자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성향은 당선인 신분에서도 바뀌지 않고 있다.
경호업체의 관계자는 “현재 박 당선인은 국가원수 급 경호를 받고 있다. 외부활동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 가장 가까이 있는 경호원은 여성이다. 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보다 부드러운 이미지를 전할 수 있다”며 “현재 청와대에도 공채를 통해 뽑힌 여성 경호인들이 상당수 있어 우선적으로 그들이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활용하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조만간 여성 경호 인력을 보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 대통령을 맞이해 청와대 구조도 일부 개조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만 여성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기에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보좌진과 경호원을 비롯해 박 당선인과 함께 들어올 여성인원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여자화장실 증설 문제서부터 휴게실 마련, 집무실 및 거처도 불편함이 없게 손을 봐야 한다”고 전했다.
다만 불필요한 낭비를 막기 위해 최소한의 범위에서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앞서의 관계자는 “영부인이 없기에 비용이 절감되는 부분도 있다. 또한 영부인 집무실 등 공간적인 여유도 확보되는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해결할 것이다. 일단은 박 당선인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린 뒤 세부적인 내용을 결정해나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구조뿐 아니라 청와대 부서 개편에 대한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존속이나 폐지냐를 놓고 갈등하고 있는 곳은 제2부속실. 이곳은 영부인의 보좌를 담당하는 곳이었으나 이제는 존재의 이유가 없어졌다. 다만 인력은 다른 부서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밖에 사소한 부분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다. 역대 대통령의 헤어스타일을 담당하던 이발사도 더 이상 청와대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졌으며 영부인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했던 이들도 사라질 터. 게다가 청와대 안팎에서는 평소 자택에 머물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던 박 당선인의 특성을 근거로 그가 머무는 5년 동안만큼은 ‘적막한’ 공간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호주 총리 남친 영부인 모임 등장
박 당선인처럼 배우자가 없는 경우엔 다양한 방법으로 퍼스트젠틀맨의 공석을 채워나가고 있다.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아이슬란드 총리의 경우 취임 당시는 싱글이었으나 현재는 세계 최초로 동성과 결혼한 국가 원수가 되어 배우자가 퍼스트젠틀맨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미혼이나 사실혼 관계로 지내는 남성이 퍼스트젠틀맨이 되기도 한다. 호주 사상 최초로 여성 총리가 된 줄리아 길라드가 대표적이다. 줄리아 길라드 총리의 남자친구인 팀 매티슨은 공관에서 지내며 공식적인 행사에서도 얼굴을 자주 내비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는 미셸 오바마가 주최한 퍼스트레이디 모임에도 ‘청일점’으로 참석해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