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지율이 69%로 오르면서 일부에서는 박 시장을 차기 대선 인물군에 올려놓고 있다. 박 시장은 인터뷰에서 새해에도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문제들에 집중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지 벌써 1년3개월이 됐다. 그동안 서울시는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박 시장이 부임 후 벌린 일은 결코 적지 않다. 무상급식,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시행, 택시회사법인 경영실태조사, 턴키방식(턴키발주) 근절 등이 서울 시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취임 초기만 해도 ‘행정 경험 없는 재야인사’라 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입을 닫은 분위기다. 최근엔 지지율이 69%까지 오르자 일부에선 차기대권 인물군에 박 시장을 올리고 있다.
새해에도 ‘박원순 호’는 순항할 수 있을까. 외부적 여건만 보면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지난 연말 대선에서 ‘친정’ 민주통합당이 뼈아픈 패배를 당한 데 이어 서울시 교육감선거에서마저 보수진영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이다. 박 시장 입장에선 우군이 없어진 셈이다. 박 시장은 이런 달라진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대응해 나갈까. <일요신문>이 박 시장을 만나 직접 그 생각을 들어봤다.
-지난 1년, 시장으로서의 보낸 소회를 듣고 싶다.
▲시장이라고 하는 직책이 3D 업종이다(웃음). 고된 업무지만 보람이 컸다. 성격이 비교적 꼼꼼한 편인데 서울시 기초를 놓는 과정에서 엉성했던 부분을 업그레이드하고 촘촘히 짜나가는 과정에 힘을 썼다. 당장 눈에 띄진 않지만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그 기분이 좋더라.
-박 시장이 생각하는 2012년 가장 보람된 성과는 무엇인가.
▲친환경 무상급식, 서울시립대 등록금 반값 인하,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 등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정책들이 많았다. 예컨대 지난해 지은 임대주택이 2만 800세대에 이른다. 누군가의 잠자리가 되고 삶의 터가 되는 틀을 만든 것이다. 또 2011년에 이어 노숙자 동사자가 없다는 점도 꼽고 싶다. 부자들이야 알아서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을 도왔던 게 보람됐던 한 해였다. 2013년엔 복지 부분 예산만 6조 원 정도 투입할 계획이다.
-언론에서 보기 힘들다. 인터뷰는 일부러 안하는 건가?
▲아니다. 정책 홍보를 할 기회를 (언론 측에서) 안주거나, 하더라도 보도가 잘 안 된다. 기사가 위에서 킬(삭제) 되는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아 이런 이야기해도 되나(웃음)? 하지만 그런 것을 탓하기보다는 더 열심히 하면 결국은 시민들께서 알아주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장 잘한 정책 3가지만 꼽아 달라.
▲정책 이전에 ‘마음’의 문제를 꼽고 싶다. ‘물질적으로 못 드린다면 마음이라도 드리는 시장이 되겠다’는 심정으로 일하고 있다. 정책으론 지하철 9호선 문제는 차츰 해결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어 임대주택 건설, 채무 감축 등에 힘쓰고 있다.
박 시장은 인터뷰 중간에 자신의 책상을 가리키며 “내가 직접 정리한 정치현안들이다. 이슈마다 파일로 정리했는데 수백여 권에 달한다”며 도시안전, 일자리, 창조경제, 관광, 복지, 시민과의 소통과 관련해서 평소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책장에는 그가 직접 정리한 수백여 개의 파일이 가득했고, 책상 위에는 서울시 현안 관련 문서들이 어린아이 키만큼 쌓여 있었다. 박 시장은 이어 “공무원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 파일 중에는 ‘서울시 공무원들을 어떻게 하면 더욱 힘나게 할 수 있을까’하는 아이디어를 담은 것도 있다”고 말했다.
-이 많은 일을 하려면 수면 시간이 절대 부족할 것 같다.
▲거의 못 잔다. 그래도 사람이 일을 하려면 어느 정도는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근엔 틈틈이 새우잠을 잔다. 밤에 자는 시간까지 합하면 하루 총 5시간 정도 자는 것 같다.
-지난 대선을 지켜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이 무엇인가.
▲내가 함부로 평할 위치에 있지 않다. 다만 선거에서는 언제나 치열한 논쟁, 대결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 과정이 용광로 역할을 해서 각기 다른 주장들이 합치가 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예컨대 복지와 경제민주화 같은 공약은 크게 보면 정리가 되지 않았나. 이렇게 대결이 화합으로 가면 좋은데 여전히 큰 갈등이 존재하고 있는 게 문제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의 몫으로 남았다.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가 받은 48%의 득표에 대해 어떤 해석이 가능한가.
▲우리 국민들은 새로운 정치를 바라고 있다.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정치를 원하고 있다. 반면 기존의 정치는 현장에서 시민과 소통해 이를 제도나 법률로 만들어 내는 부분이 약했다. 이에 대한 절망감, 배신감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민주당은 패배자로서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이 만족할 만큼 해줬느냐’ 하면 상대적인 거지, 최선의 정치를 해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양쪽 다 변화가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국회의원 등 정당 당직자가 된다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서울시장은 정당의 개혁보다 시에 올인해야 하는 위치다. 좋은 정책을 만들어 시민의 고통을 덜어준다면 그 역시 새로운 정치에 대한 신뢰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뢰가 좀 생기지 않았나(웃음).
-박 당선인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소통과 통합을 바란다. 서로 하나가 돼 힘을 합쳐도 해결하기 어려운 위기 상황이다. 이럴 때 분열하고 갈등하면 신뢰의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서 최근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사건에 대해 심경이 남다를 것 같다.
▲지난 대선기간 중 TV에서 정혜신 박사가 ‘요즘은 죽음의 대기표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연설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자살은 단순히 경제 문제에만 기인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사람은 위기에 빠지면 강인한 생존력이 나오지 않는가. 즉 자살까지 하는 건 경제적 문제뿐만이 아니라 아무한테도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대통령, 교육감이 모두 여당 출신이다. 야권인사로서 고립된 듯한 느낌을 준다.
▲정당이 다르더라도 기본적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또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누구도 성공하기 힘들다고 본다. 서울시는 중앙정부에 요구할 게 굉장히 많다. (정부가) 협력해주지 않으면 서울시에서 성과를 내기 힘들다. 동시에 서울시가 성과를 못 내는데 어떻게 대한민국이 성과를 내겠는가.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길을 택해야 한다. 지난 정권으로부터 (그 당시 실패를 통해) 배워야 한다.
-문용린 새 교육감의 무상급식 전면 금지 발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시장 일을 해보니 여러 기관이 협력해야 하는 게 참 많더라. 현재 조례상 전출금, 법정 전출금을 서울시에서 많은 예산을 대고 했다. (교육청이) 협력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상급식은 그대로 진행되나.
▲아마 진행될 것이다. 중학교 2학년까지는 2013년 예산이 이미 반영돼 있다. 교육감이 재정상의 어려움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하는 건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우리가 다 어려운 상황에서 서울시의회, 전임교육감 등이 하기로 이미 결정한 사안인데, 혼자서 안 된다고 하기는 좀 어렵지 않겠나.
▲ 박 시장의 책상에 어린아이 키만큼 쌓여있는 서류들. 책장에도 수백 권의 파일들이 가득하다. |
-수도권 시민의 복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들었다.
▲임의적으로 행정적 구획을 했지만 전국이 하나라고 생각한다. 경계 짓는 일에 반대한다. 예를 들어 ‘서울시립대 등록금 혜택을 왜 지방 출신에게 주느냐’는 말이 나왔을 때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서울시는 대한민국의 수도이지 않은가. 서울시에서 키운 인재가 지방에서 자기 본분을 하는 것도 수도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한편으론 경기도민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교통이다. 요즘엔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연구 중이다. 환승, 버스 정류장 개선은 꼭 필요할 것 같다.
박 시장은 인터뷰 중간에 기자가 “몇몇 경기도민으로부터 201번 버스노선 등이 변경된 것에 대해 하소연을 들었다”고 전하자 곧바로 비서진들에게 “201번 버스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한번 알아봐 달라”고 지시했다.
-새해에 서울시를 위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조금은 더 업무에 집중할 생각이다. 2012년 현장 시장실을 운영한 적이 있다. 은평뉴타운에 대형아파트가 안 팔린다고 해서 직접 일주일 동안 현장에 있으면서 3분의 2 이상 팔았다. 부동산 소개업소 역할을 한 것이다(웃음). 불경기에 618채 중 430채가 나갔다.
-어떻게 그런 성과를 냈나.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일례로 ‘지역은 은평, 가치는 금평’ 광고 문구를 만들기도 했고 실제로 효과를 봤다. 서울시 부채 감축을 위해 집중한 결과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서울 시민 삶의 모든 영역이 중요한 만큼 이번 선례처럼 상식, 원칙, 합리성에 기초해서 노력할 생각이다.
-차기 대선주자로 나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2년 전엔 서울시장 할지 전혀 몰랐던 것처럼 앞으로의 사람 일은 알 수 없다. 우선은 현재 하는 일에 몰두하고 거기서 성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장으로서 엉뚱한 생각을 하기보다 서울 시민을 돌보고 희망을 드리는 데 집중하고 싶다. 보통 서울시장의 다음 단계로 그런 얘기(대선)들을 하고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시정이 헝클어지게 된다.
-앞으로의 계획은?
▲2013년이 본격적으로 일할 수 있는 해라고 본다. 지난 한 해의 경험을 토대로 좋은 정책들이 안착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 가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서울 시민들에게 전하는 새해 메시지를 들려달라.
▲새해 계사년도 여전히 힘든 상황이 계속될 것 같다. 이미 하우스푸어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 데다 일자리도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 같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힘을 합치고 격려해야 한다. 늘 강조하는 사회적 혁신을 제대로 해서 위기가 기회라는 것을 증명했으면 좋겠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시장으론 69점, 남편으론 빵점”
‘원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별명이다. ‘원순 씨가 또…’라는 문장을 줄인 단어로 ‘날이 지나기 무섭게 서울 시민을 위한 정책을 내놓는다’며 박원순 시장을 재치있게 칭찬하는 내용을 담은 호칭이라고 한다.
서울시장 취임 1년 만에 이전의 시장들이 갖지 못했던 별칭까지 얻었다. 더군다나 20~30대 여성들로부터 ‘하사’받은 거라 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박 시장의 이 별명은 유명 여성커뮤니티 ‘삼국’ 카페에서 처음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젊은 여성들이 박 시장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인간미를 훑을 수 있는 취재 뒷이야기를 공개한다.
-‘원또’라는 별명이 삼국 카페란 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처음 안 사실이다. 한번 (그 커뮤니티에) 들어가 봐야겠다.
-여성만 가입 가능한데….
▲원순…, 내가 여성이름이니까 괜찮지 않을까(폭소)?
-무인도에 세 가지를 가져간다면?
▲휴대폰, 컴퓨터, 수첩. 무인도에서도 일하겠다.
-한때 노숙자 조문을 다닌 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2010년경 영국 런던 유스턴 역을 우연히 걷다가 ‘노숙자를 기리는 곳’을 본 적이 있다. ‘여기 우리가 늘 만나던 한 사람이 잠들었다. 이 자리에서 신문을 팔던 한 노숙자가 죽었고 가는 길에 위로가 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와 꽃들이 역 주변에 놓여 있었다. 도시의 노숙자들, 이름도 없는 사람들에게 주민들이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주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리곤 한국에 와서 뉴스를 통해 한 노숙자의 사망소식을 접하게 됐다. 위문할 가족 한 사람 없는 사람의 객사가 이전보다 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어찌됐든 우리 서울시민이지 않은가. 외로운 사람이 가는 길에, 그 누군가는 조문객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다른 약속을 취소하고 가서 조문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서울시장, 남편으로서의 점수는 몇 점인가?
▲시장으로선 괜찮게 하지 않았나(웃음). 최근 한 언론조사에서 서울시민 69%가 ‘잘한다’는 반응을 보여주셨다. 그걸로 점수를 갈음하겠다. 남편과 아버지로는 거의 빵점. 낙제 점수다. 늘 미안하게 생각한다. 가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양립시키기가 쉽지 않더라. 그동안 가족들이 많은 희생을 했다.
-어떻게 했기에 ‘희생’이란 말까지 나오나.
▲돈 제대로 못 갖다 주고(웃음), 함께하는 시간도 절대 부족했다. 그래도 최근엔 나로 인해 격무에 시달리는 서울시 공무원들을 살리려고 내가 일찍 퇴근하면서부터 좀 나아졌다. 요즘은 가족과 가끔 평일 저녁을 함께하는 편이다.
가족 얘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레 “지난 크리스마스 때 아내에게 어떤 선물을 줬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박 시장은 “이거 큰일 났다”며 당혹감을 내비쳤다. 뒤늦게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어보인 그는 “대신 저녁을 같이 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아내가 일이 있다고 해서 나 혼자 집에서 덩그러니 남겨져 트위터를 했다. 서울 시민들께 하트 이모티콘을 엄청 날려드렸다. 시민들께서 먼저 하트를 주시기에 신이 나 나도 듬뿍 드렸다”고 답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 시장에게 “20~30대 여성 팬들이 많다. 일각에선 ‘2018년에 박원순을 청와대에 감금하겠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고 하자 그는 “청와대 감금이라니? 감금죄로 고발해야겠다”며 웃어보였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