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는 2~3년에서 많게는 30년 이상의 경력 차이가 나는 선배들 사이에서 아주 밝지는 않더라도 눈에 띄는 반짝임을 내기 위해 누구보다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었을 터다. 그렇게 어깨를 짓누르던 부담과 압박감을 가수 겸 배우 조유리(24)는 자신만의 ‘담대함’으로 넘어섰다. 황동혁 감독이 골라낸 새로운 원석이었던 그는 이 담대함을 발판삼아 비판도, 호평도 모조리 끌어안으며 ‘신인답지 않은’ 면모를 보여줬다.(※기사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 3'의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6월 2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 3’에서 조유리는 가진 것이라곤 3000만 원의 빚과 곧 태어날 아기뿐인 참가번호 222번 김준희를 연기했다. 빚을 갚고 아기와 단 둘이서도 살아갈 수 있는 가정을 꾸리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참가자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살인 서바이벌 게임장에 들어오고 나서도 뱃속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죽음의 위협을 눈앞에 둔 만삭의 임산부’는 경력이 길다는 배우들에게도 연기하기 까다로운 캐릭터였던 만큼, 배우로서 신인인 조유리 역시 이 역할을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려낼 수 있을지가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남아있던 숙제였다고 했다.
“역할 자체가 부담됐다기보다는 ‘내가 잘해내지 못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임신을)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까 어설퍼 보일까 봐 많이 걱정했었거든요. 그러면서도 극적인 상황과 현실의 중간을 맞춰가는 것에도 신경을 정말 많이 썼고,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감독님께서 너무 현실적으로만 하기엔 극적인 부분도 있을 테니까 그사이를 잘 조율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주셨고, 저도 동의했죠. 배우로서 발걸음을 떼는 데 있어서도 캐릭터적으로 굉장히 좋은 도전이었다고 생각해요. 연기하면서 마냥 단순하게 ‘부담감’을 느낀 게 아니라 도전에서 오는 ‘좋은 부담감’으로 받아들였고요(웃음).”

“출산은 물론 중요한 장면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그렇게 자세하게, 오래도록 비춰질 부분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은 게임이 중점이기 때문에 출산 신도 그 정도로만 나오지 않았을까요? 사실 촬영 전에는 설정을 정말 세세하게 정해두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진통이 올 때와 아이를 낳을 때 호흡은 어떻게 해야 하고, 자세는 어떤 건 가능하고 이런 건 불가능하고…. 그랬는데 제 주변 많은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니 막상 출산할 땐 무아지경이라고 그러시더라고요(웃음). 그 말씀을 듣고 ‘내가 생각했던 것들은 다 필요 없겠다. 그냥 머리를 비우고 무아지경의 그 상태를 구현해내자’라는 생각으로 연기했죠(웃음).”
아기를 낳은 준희는 바로 다음 게임인 ‘고공 줄넘기’에서 심각한 발목 부상 탓에 참여할 엄두조차 내지 못 한 채 탈락하고 만다. 마지막으로 성기훈에게 아기를 맡긴 뒤 자진 탈락을 선택한 준희의 최후를 놓고서도 “모성애를 강조해 온 캐릭터인데 너무 쉽게 아기를 포기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유리는 “준희는 그냥 쉽게 포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해석했다.

게임장에서 처음 만난 기훈에게 보인 깊은 신뢰와 달리, 한때는 사랑했지만 끝까지 화해할 수 없었던 전 남자친구이자 아기의 아빠인 이명기(임시완 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복잡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앞서 상대역인 임시완이 “준희를 사랑하는 명기의 마음은 진실”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조유리 역시 “게임장에 들어오고 나서도 명기에 대한 마음은 애정이었지만 결국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현실에서도 명기 같은 남자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다”고 진심으로 강조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명기가 갑자기 잠수 이별을 했기 때문에 말로는 싫다면서 원망하지만, 아직 정이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상태라 마음속으론 약간의 미련이 있었죠. 그러면서 게임하는 동안 명기가 잘 챙겨주는 모습을 보며 ‘한 번만 더 믿어볼까’했다가 술래잡기 게임에서 모든 신뢰가 다 무너졌을 거예요. 그래서 최후에도 명기가 아닌 기훈을 믿게 됐던 거죠. 실제로도 명기 같은 남자는 최악이에요(웃음)! 저는 이런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는데, 죽을 때까지도 만나고 싶지 않아요(웃음).”

“사실 저희는 촬영 때 내 캐릭터가 죽고 난 뒤의 상황을 알 수 없거든요. 저도 본방송으로 마지막 게임을 봤어요. 그전에 (임)시완 오빠가 인터뷰할 때마다 계속 ‘죄송하다. 명기가 나빴다’고 하시기에 ‘왜 저렇게까지 하지?’ 했는데 마지막 화에서 그런(웃음)! 충격을 먹은 것과 동시에 시완 오빠가 그 마지막 연기를 너무 잘해주셔서, 그걸 보면서 정말 명기는 너무너무 밉지만 대단한 캐릭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연기를 했던 시완 오빠도 참 고생이 많았을 거예요. 그래서 보자마자 ‘오빠, 연기 정말 멋있는데요?’하고 연락했어요(웃음). ‘임시완 연기 찢었다’는 댓글도 보면서 제가 다 뿌듯하더라고요.”
임시완과 조유리는 각각 제국의 아이들과 아이즈원 출신으로 아이돌로서 먼저 연예계에 발을 디뎠고, 이후 배우로서 인생의 2막을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완전체 그룹 활동은 아직 기약이 없어도 둘 다 ‘가수’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 역시 똑같은 지점이기도 했다. 특히 조유리는 ‘오징어 게임’의 시즌 2~3을 촬영하는 동안 세 번째 미니앨범 ‘에피소드 25’(Episode 25)를 준비해 7월 14일 발매를 앞두고 있다. 가수와 배우, 양 갈래의 길을 모두 놓치고 싶지 않다는 그는 무엇보다 다시 한번 무대 위에서 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설렘이 멈추지 않는다며 웃어 보였다.
“시즌 3 공개 전 촬영이 다 끝나고 바로 앨범을 내는 게 원래 목표였는데, 준비가 더뎌지면서 뒤로 밀리다 보니 불가피하게 이렇게 됐어요. 달리 생각하면 제가 주목 받는 타임에 공개할 수 있게 된 거니까 저도 ‘럭키비키’라고 생각하려고 노력 중입니다(웃음). 팬 분들께서 떠나지 않고 저를 2년 동안이나 기다려주신 것에 감사드려요.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이번 앨범을 준비했어요. 제 취향을 녹여내려고 했는데, 정말 제 의견이 많이 반영된 앨범이라서 기대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