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년대 나이트클럽 문화 대세
한국남자농구의 최고 부흥기는 1990년대 농구대잔치로 꼽힌다. 당시 농구 스타들은 손지창, 장동건 등 최고의 연예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연세대와 고려대를 이끌었던 농구 스타들은 마음 놓고 거리를 활보하지도 못했다. 공개적인 애인 만들기는 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 1990년대 선수들도 솔로 탈출을 위한 기본 루트는 요즘 선수들과 비슷했다. 지인을 통한 소개팅이나 나이트클럽의 즉석 만남이 대세였다. 때로는 단체 미팅도 불사했다. 단 성공률은 낮았다.
당시 연세대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우지원(SBS ESPN 해설위원)은 “그땐 캠퍼스를 걸어 다니지도 못할 정도였다. 선수들이 여자친구를 만날 수 없는 환경이라고 할까. 그래도 만나는 방법은 다 있었다”고 했다. 그 방법이 뭘까. 바로 그들만의 아지트였다. 우지원은 “연세대 동문 앞 카페가 있었다. 농구선수들의 아지트였다. 거기는 선후배들의 만남의 장이었다. 시간이 없으니까 잠깐 만나 커피 한 잔 하고 헤어지는 장소였다. 아니면 신촌에 잘 가던 락카페가 있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그때는 락카페가 유행이어서 선수들끼리 자주 가서 즐겼다”고 옛 추억을 떠올렸다.
또 연예인들과의 만남도 많았다. 그 당시 방송 출연 섭외 1순위는 농구선수들이었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랑 전선이 형성됐던 시기다. 우지원은 “그땐 방송 출연이 많았다. 당시 최희암 감독이 허락한 프로그램에 나갈 수 있었는데, 방송 이후 회식을 하면서 친분을 쌓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관계가 더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내 얘기는 아니다”라고 웃었다.
연세대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고려대도 비슷했다. 하지만 아지트가 조금 달랐다. 학교의 색깔대로 만남의 장소도 달랐던 것. 고려대는 커피 대신 술이었다. 고려대 출신의 신기성(MBC 스포츠+ 해설위원)은 “우리는 바로 술집에서 만났다. 학교 앞은 아니었고, 압구정동에 잘가던 술집 아지트가 있었다. 커플끼리 단 둘이 만나면 소문이 나기 때문에 친구들과 단체로 어울려 노출을 피했다”고 털어놨다. 또 “그때 나이트클럽은 지금처럼 밤새 하는 것이 아니라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했다. 지금과 달리 생일 파티를 위해 오는 사람도 많았던 시절이다. 괜찮은 여성분들이 많아 거기서 만나 더 발전되는 일도 있었다”면서도 역시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선수들도 있었다”고 웃으며 몸을 사렸다.
1990년대 농구 스타들도 철칙은 있었다. 젊은 혈기와 달리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기 위한 진지함이다. 안정적인 선수 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절대적 조건이었다.
# 달라진 당당한 연애 문화
시대가 변했다. 그래도 연애는 한다. 노총각이 없다. 잘 만나고 결혼도 일찍 한다.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젊은 선수들도 일찌감치 ‘품절남’ 대열에 합류했다. 윤호영과 정영삼(이상 28·상무)은 벌써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고, 함지훈(28·울산 모비스)과 하승진(29·공익근무)도 올해 결혼했다. 대부분 대학 시절부터 이어온 인연의 결실을 맺었다. 이제는 애인을 숨기는 ‘비밀 연애’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당당하게 밝히고 사귄다. 프로농구 인기 꽃미남 강병현(29·상무)도 미스코리아 출신 여자친구를 공개했고, 체육관에 응원도 자주 온다. 신인 최부경(23·서울 SK)도 “쉬는 날에는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러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닌다. 공개해도 상관없다”며 여자친구의 존재를 스스럼없이 밝혔다.
하지만 데이트 문화는 확 달라졌다. 요즘 선수들은 나이트클럽이 아닌 클럽 문화에 익숙하다. 즉석 만남의 장소다. 30대 초반의 현역 프로선수 A는 “우리 때만 해도 클럽에서 만난 친구는 ‘날라리’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지금 젊은 선수들은 클럽에서 자주 만나는 것 같더라”며 “그래도 대부분 소개로 만나는 일이 많다. 동기나 선·후배 여자친구가 소개시켜주는 일이 가장 많다. 솔로인 선수들은 여자친구 소개를 시켜달라고 조르는 게 일이다”라고 말했다.
데이트 장소도 변했다. 맛집이나 술집은 이제 편하게 다닌다. 농구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둘만의 장소를 선호한다. 충격적인 얘기도 나왔다. 20대 중반의 현역 프로선수 B는 “보통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드라이브를 하면서 차 안에서 데이트를 한다. 또 모텔이나 호텔을 빌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영화도 보고 파티도 즐기면서 데이트를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고 귀띔했다.
미혼의 현역 프로선수 C는 “자주 보지 못하는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며 “겨울에는 볼 수 있는 시간이 적어 더 애틋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 자주 못 보기 때문에 한 번 볼 때 선물 공세도 아끼지 않는다. 여름 휴식기에는 매일 만나면서 그동안 못 본 한을 풀지만, 휴식기가 짧아 싸울 시간도 아까워 서로 많이 참고 배려하는 편이다. 그래서 한 번 사귀면 오래 연애를 해 결혼까지 가는 커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훤칠한 외모와 금전적으로 안정된 프로농구 선수들에게 ‘솔로대첩’은 다른 세상 이야기다. 1990년대나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농구선수들은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 프로 선수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는 짝을 만나는 데 집중을 할 뿐이다.
서민교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