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돌 |
이번에 박정환은 1국을 졌지만 2국에서 반격에 성공하며 ‘감’을 잡은 모습으로 자신감을 내비쳤다고 한다. 박정환이 3월에 잉창치배를 차지해 조훈현-서봉수-유창혁-최철한이 연출한 잉창치배 퍼레이드를 이어가 줄 것으로 믿는다. 이창호도 그렇지만 박정환도 나이에 비해 아주 의젓한 청년. 그리고 엄청난 노력파다. 오죽하면 선배들로부터 “박정환은 천재형인데, 노력이 지나쳐 오히려 천재성이 희석되고 있을 정도”라는 얘기를 들을까…^^.
백홍석은 2012년 시즌에 제4회 BC카드배와 제24회 TV아시아선수권을 차지해 유일한 세계대회 2관왕을 뽐냈고 국내에서도 제30기 KBS바둑왕전과 제40기 명인전에서 준우승하면서 생애 최고의 한 해를 만끽했다. 올해는 군대 간다고 하는데, 군대가 승부에 마이너스인 것만은 아니니 아무튼 더욱 만개할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연말연시를 기준으로 본다면 단연 이세돌 9단이다. 이세돌은 구랍 13일 중국 상하이 그랜드센트럴호텔 특설대국실에서 열린 2012(제17회) 삼성화재배 결승3번기 3국에서 구리 9단에게 반집을 이겨 2 대 1로 타이틀을 차지했다. 제1국도 반집승, 2국은 불계패. 두 번의 반집이 기가 막혔고, 한 집으로 3억 원을 벌었다.
26일에는 또 국내 최대 타이틀 제40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에서 우승 샴페인을 터뜨렸다. 백홍석과 결승5번기를 벌였는데, 백홍석이 처음 두 판을 계속 이겨 올해는 정말 백홍석의 해인가 싶었으나 이세돌이 나머지 세 판을 전부 거둬들임으로써 예전에도 결정적인 장면에서 사람들을 열광시키곤 했던 ‘연패 후 연승’의 드라마를 써낸 것. 거듭되는 대운, 믿기 어려운 대박 행진이다. 이세돌은 이것 말고 올해 ‘2012 올레배’와 제17기 GS칼텍스배에서도 우승했다.
27일 서울 역삼동 CS타워 아모리홀에서 열린 ‘2012 바둑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사람도 이세돌. 2010년부터 3년 연속, 통산 여덟 번째 수상이다. 우수기사상은 백홍석이 받았다. 바둑 담당기자들로 구성된 대상 선정위원단 투표에서는 50%를 획득, 45.45%를 얻은 이세돌을 앞섰으나 누리꾼 투표에서 17.84%에 그쳐 47.36%의 이세돌에게 합산에서 밀리며 2006년 신인기사상 수상 이후 6년 만에 받는 큰 상이라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명인전 결승5국이 MVP의 향방을 가른 셈이다.
박정환은 MVP와 우수기사상, 둘 다 놓쳤지만, 대신 2012년 통산 77승 22패, 승률 76.6%로 다승상과 승률상, 4월 20일부터 6월 18일까지의 18연승으로 연승상 등 기록 3개 부문을 석권했다.
시니어기사상 주인공은 서능욱 9단. 제2회 대주배에서 우승, 생애 첫 타이틀의 감격을 안았고 국내 프로기사 중 다섯 번째로 통산 1000승을 기록한 활약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한편 우글우글한 젊은 준재들 틈바구니에서 제8기 물가정보배를 차지한 안성준 4단은 신예기사상의 기쁨을 누렸고, 제17기 여류국수를 차지하고 여자 기사 중에서 다승·승률 1위를 기록한 박지연 3단에게는 여자기사상이 돌아갔다. 아마추어 기사상은 제93회 전국체전 바둑 종목 남자 일반부 금메달리스트이자 현 랭킹 1위인 전준학 선수. 수상자 모두 2013년 새해에는 더욱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기를.
랭킹 시스템을 개발하고 계속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는 배태일 박사가 공로상, 통계와 그래프와 도표를 도입해 바둑 뉴스의 시각화를 선도하고 있는, 한게임 바둑 팀 한창규 기자가 미디어상을 받았고, 부산 바둑계 발전에 헌신하던 중 지난해 4월 아까운 나이에 타계한 백승이 전무의 유족에게 보급상이 전달되었다.
이광구 객원기자
백의 과잉 의욕
소개하는 바둑은 이세돌과 백홍석의 명인전 결승5국. <1도>는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장면이다. 흑1로 한껏 넓히자(협공하자) 백은 2, 4로 갈라쳐 안정했고 흑은 5로 이쪽을 눌렀다. 백6은 당연한 반발로 보이는데, 여기서부터 바둑은 초반에 급류를 탔고, 그 와중에 백홍석의 의욕과잉이 문제가 되었다.
<2도> 흑1로 끊고 백2로 내려선 다음 흑3으로, 축이 아닌데도 몰아간 것이 이세돌의 강수. 백4로 나올 때 흑5가 일단은 맥점. 여기서 흑에게 리듬을 주지 않으려면 백A로 가만히 올라서는 것이 보통이나 지금은 백A면 흑B로 씌우는 수가 멋진 후속타가 된다. 흑B가 포인트. 백은 6으로 끊고….
<3도> 백1로 몰아 나갔는데, 이게 문제였다. 흑2, 4에서 6, 8의 경쾌한 스텝에 백이 걸렸다. 흑8은 <2도>의 흑B와 같은 맥락. 계속해서 <4도> 흑8까지 백은 뭉친 꼴의 미생마가 되었다(백7은 흑에 이음). 우상귀 쪽 백9, 11로 우변 백은 살았지만, 대신 우상귀 일대 흑진의 뒷맛이 없어졌다. 좌하변 흑12를 보고 검토실은 “백의 상처가 너무 커 보인다. 흑12로는 흑A의 모자씌움으로 손바람을 내고 싶은 장면이기도 한데, 이건 승기를 포착한 이세돌의 여유”라면서 일찌감치 흑의 승리를 예상했다.
<3도> 백5로 <5도> 백1로 따내면? 흑2가 기다리고 있단다. 흑2는 산뜻하고 백은 갑갑하다는 것. 결론은 <3도> 백1이 무리였고, 이걸로는 <6도> 백1로 늘어갈 자리였다는 것. 흑2는 백3에서 5로 이단젖히는 수가 있어 안 되니, <7도> 흑2로 올라와야 하는데, 그러면 백3, 5로 흑 두 점을 잡고 흑4, 6으로 우상변 백을 제압하는 바꿔치기가 될 텐데, 이 그림은 피차 만만치 않아 보인다는 것.
<3도> 흑8 다음 <8도> 백1, 3으로 돌파하려는 것은 흑12까지(백11은 흑에 이음), 백이 궤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