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은 7월 31일 대통령실 고위공직자 워크숍 특강에서 “가만히 있으니까 진짜 ‘가마니’인 줄 알더라. 사실은 이빨도 흔들릴 정도로 노심초사였다”면서 한미 관세협상 후일담을 공개했다.
이 대통령은 관세협상과 관련해 “좁게 보면 우리 기업의 해외시장에 관한 얘기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부담이 될 수 있는 사안”이라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한 성과를 이룬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나라의 국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말했다.
협상 과정은 험난했다. 7월 24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통상교섭본부장이 참석할 예정이었던 ‘한미 2+2 재무통상 장관급 회담’이 연기되면서 한국 정부 입장이 다급해졌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두 차례 방미 성과가 베일에 가려진 가운데, ‘2+2 회담’까지 미국이 돌연 연기하면서 한미 관세협상엔 먹구름이 끼는 듯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본부장은 ‘카운터 파트’인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밀착 마크했다.
러트닉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 수행 차 스코틀랜드를 방문하는 일정을 한국 협상단이 따라 붙었다. 김 장관과 여 본부장은 7월 27일 스코틀랜드에서 한미 관세협상을 논의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김 장관과 여 본부장이 스코틀랜드에 직접 가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감동시켰다”고 돌아봤다. 7월 29일엔 구 부총리가 가세해 러트닉 상무장관과 협의를 이어갔다.

한국 협상단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만났다. 협상단도 마지막까지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격적인 면담 성사였다. 30~40분 동안 이뤄진 회담에서 관세협상 세부사항이 급속도로 조율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협상단은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면담 시나리오를 사전에 준비해 갔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판 흔들기’는 협상의 큰 변수로 작용했다.
금액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과정이 숨 돌릴 틈 없이 펼쳐졌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말미에 “나는 보통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아니면 다른 나라 협상단과 직접 협상하지 않는데, 한국의 경우 사실 각료급인데 특별히 직접 협상했다는 건 한국을 굉장히 존경하고 굉장히 중요시하는 걸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3500억 달러(약 748조 원)에 ‘OK 사인’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 한국 협상단이 가져간 안보다 높은 액수로 알려졌다.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금은 크게 세 가지 항목으로 분류되는 구조였다.

‘플러스알파’ 격으로 추가된 항목도 눈에 띈다. 미국산 에너지 구입과 관련한 내용이다. 한미 양국은 한국이 미국 LNG(액화천연가스)나 기타 에너지 제품을 구매하는 등에 1000억 달러 규모를 투입하는 데 합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 갈래로 구성된 대미 투자금을 둘러싼 한미 양국 해석에 시각차가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3500억 달러 외에도 대규모 투자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산 에너지 제품 구매금액과 별개로 한국의 추가 투자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 상무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향후 3년 반 동안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구매할 에너지 제품 비용이 1500억 달러라고 알렸다. 에너지 제품 구매 비용에서 나타나는 500억 달러(약 70조 원) 차액에 대한 부분은 향후 세부적인 점검이 필요한 포인트다.

외교가 한 소식통은 “한미 양국에서 협상 결과를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 이유는 내부적으로 부각해야 하는 정치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라면서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투자를 받았다고 홍보해야 하는 상황이고, 한국은 미국과 협상에 출혈이 적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한국 대미 투자금을 3500억 달러로 보면 명목 GDP 대비 18.7% 수준이다. 이는 일본 대미 투자금 5500억 달러가 일본 명목 GDP 대비 13.7%인 것에 비해 5.0%포인트(p) 높다”면서 “아무래도 데드라인에 임박해 협상이 급물살을 탄 상황이 반영된 대목으로 비춰진다”고 분석했다.
한미 입장차이가 보이는 부분은 또 있다. 농축산물 시장 개방과 관련해 대통령실은 “국내 쌀과 소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발표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산 자동차, 트럭, 농산물 등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기로 했다”고 했다.
쌀과 소고기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농축산물 시장이 전면 개방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농축산업계가 이재명 정부 주요 지지층을 구성하는 것을 감안하면, 농축산 시장 개방 범위가 국내 정치권에 미칠 파급력은 적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추후 관세협상 결과 세부내용이 공개되면 한미 견해차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한국 투자에서 나오는) 수익 90%가 미국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실은 “내부적으로는 이를 ‘재투자 개념’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투자 수익에 대한 세부 내용 역시 한미 관세협상 성적표를 가늠할 만한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 주요 동맹의 대미 투자 금액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자랑한다. 유럽연합(EU)은 6000억 달러, 일본은 5500억 달러, 한국은 3500억 달러에 협상을 마쳤다.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한국이 다소 값비싼 출혈을 치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 FTA로 관세가 0%였던 한국 자동차에 15% 관세가 부과되는 것을 두고도 ‘가격 경쟁력 상실’ 가능성이 점쳐진다. 야권에선 자동차 관세를 일본이나 EU 대비 2.5%p 낮은 12.5%로 설정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러 비판적 시각이 존재하지만 데드라인이 다가오기 전 협상을 체결하며 25% 관세를 막은 것은 분명한 성과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전직 통상 분야 관료는 “큰 고비를 나름 잘 넘겼지만, 출혈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관세율이 25%인 것과 15%인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에 관세율 10%p를 낮춘 이번 협상이 체결된 것은 불행 중 다행으로 봐야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관세협상은 EU나 일본 등 다른 국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관세를 맞추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서도 “기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 대비 관세를 적게 적용받았기 때문에 향후에 기업들이 마주할 출혈은 더 클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을 언급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11억 달러 규모인 주한미군 방위비 적정가가 100억 달러라고 지속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통령을 만난다면, 주한미군 방위비 이슈를 직설적으로 테이블에 올려놓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국에 대한 견제에 있어, 한국이 더 큰 역할을 맡아달라는 취지의 요구도 표출될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선 국내 기업의 대미 추가 투자에 대한 내용이 발표될 전망이다.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이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하면 한국 기업들이 대규모 대미 투자를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 기업들의 대미투자와 관세협상 대미 투자펀드가 어느 정도 교집합을 이룰지도 관심사다. 이 역시 ‘관세협상 복기 포인트’로 부각될 수 있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관세를 15%로 낮추면서 최악은 면했다. 정부에서 잘된 협상이라고 자화자찬을 하지만, 그런 것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면서 “경제 규모가 큰 일본과 EU도 15% 관세를 적용받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던 관세 이점이 사라진 셈이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 등 여러 가지 디테일한 과제들이 더 남아 있는 만큼, 정부가 자만하지 않고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바라봤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