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 기간 정청래 신임 대표는 ‘당심(당원 지지)’에서, 박찬대 후보는 ‘의심(의원 지지)’에서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현역 의원 지지를 등에 업은 박 후보 당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기류가 형성됐다. 의원이 동원할 수 있는 ‘조직표’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당 지도부, 현역 의원, 시도당 위원장, 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 등 대의원 약 1만 6000명은 의원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대의원 1표는 권리당원 17표에 맞먹는다.
그러나 7월 19~20일 진행된 충청·영남 권리당원 투표에서 정 후보가 약 60% 득표율을 기록하자 ‘어차피 당대표는 정청래(어대청)’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박 후보 측은 수도권과 대의원 투표에서 역전이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대세론은 흔들리지 않았다. 8월 2일 정 대표는 권리당원 66.48%, 국민 여론조사 60.46% 등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정 대표는 약점으로 꼽혔던 대의원 투표에서도 46.91%를 얻으며 선전했다.
이번 전당대회 결과는 당원 권한을 강화한 민주당 구조 개혁의 산물로 평가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 권리당원 권한 강화 논의가 시작됐다. 정 대표가 처음 국회에 입성한 시기(2004년)와 겹친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은 온라인 입당 시스템을 도입했다. 정당 외곽에 머물던 정치인 팬덤이 당내에 진입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약 111만 명(8·2 전당대회 기준)의 권리당원을 보유한 정당이 됐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의견을 교환한다. 여러 친여 성향의 스피커들의 의견을 참고해 자신들만의 관점을 구축한다. 지지할 인물을 스스로 고른다. 전당대회 현장에서 만난 한 민주당 의원은 “대의원들은 아직은 의원들이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권리당원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당원이 의원을 움직이는 추세”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 같은 분위기를 잘 활용했다. 법사위원장과 탄핵소추단장을 맡으며 당원들의 마음을 얻었다. 22대 대선 때는 광주·전남 골목골목선대위원장을 맡아 민주당 텃밭인 호남 당원들과 호흡했다. 선거 기간에도 딴지일보 게시판에 직접 글을 올리며 당원들과 소통했다.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는 “당원주권시대를 열망하는 민주당의 주인이신 당원들의 승리”라고 말했다.
반면 박 후보는 일부 강성 당원들의 반발을 사는 행보를 보였다. SBS ‘뉴스브리핑’ 토론회에서 국민의힘과 대치와 협치를 병행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갑질 논란’에 휩싸인 강선우 의원의 여성가족부 장관 사퇴 촉구 메시지는 지지자들의 빈축을 샀다. 박 후보 메시지가 올라온 뒤 17분 만에 강 의원은 사퇴했다.
그러자 박 후보와 대통령실의 ‘사전 교감설’이 불거졌다. 지지자들의 반발과는 별개로 ‘명심(이재명 대통령 지지)은 찬대’라는 기류가 강해졌다. 정 대표가 승리하자 ‘당심’이 ‘명심’까지 눌렀다는 뒷말이 나왔다. 박 후보의 패배는 ‘선명성’을 강조하지 못한 전략 미스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대통령도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명심이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선명성을 강조한 정 대표에게 당원들이 표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협치 대신 대치
정 대표의 당선으로 정국 경색은 계속될 전망이다. 당원들이 강경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당대회 현장에서 만난 당원들은 지지 후보와 관계없이 빠르게 ‘내란 세력’을 청산하라고 요구했다. 내란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을 해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언론 개혁을 타협 없이 빠르게 진행하라고 주문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더 이러한 당원들의 요구를 힘 있게 추진할 적임자라고 했다.
정 대표는 이 같은 당원들의 요구에 대해 정견 발표에서 “폭풍처럼 몰아쳐서 전광석화처럼 해치우겠다”고 약속했다. 추석(10월 6일) 전 3대(검찰·사법·언론)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지명직 최고위원 2명 중 1명은 평당원을 뽑는 등 당원 주권 강화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반발했다. 같은 날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대야 투쟁’ ‘야당 협박’을 멈추고 국민의힘을 국정의 동반자로 존중하기 바란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8월 3일 페이스북에 “거대 의석을 앞세워, 더 노골적인 의회 독재와 입법 폭주를 예고한 것”이라며 “자꾸 우리 당 해산을 운운하는데 그 입 다물라”고 적었다.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은 통합 이미지를 가져가고, 정 대표는 야당과 싸우는 ‘투트랙’ 전략을 사용할 것으로 점친다. 민주당은 과반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예산안·법안부터 고위공직자 임명 동의까지 단독 통과가 가능하다. 정 대표는 법사위원장 시절 간사 선임 등 법사위 독단 운영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방송 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등 다수의 법안을 밀어붙인 전력이 있다.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이들은 대치 국면이 이 대통령에 대한 중도층 여론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걱정한다. 또한 정 대표가 강경 행보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자기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린다.
전당대회 당일 여수에서 온 이 아무개 씨(50)는 “(나는 박찬대 지지자인데) 우리 대통령 정부에서는 포용력 있는 사람이 더 좋지 않나 생각한다”며 “(정 대표는) 개인의 스타성이 강하다. 조력해야 하는데 본인이 (이 대통령을) 앞설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친명계 일각에선 여전히 정 대표에 대한 비토 기류가 감지된다. 정 대표가 이재명 정부와 엇박자를 낼 것이란 관측도 뒤를 잇는다. 지난 6월 정부는 대법관 증원법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그러나 정 대표는 통과가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이재명 정부는 ‘협치’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정 대표는 강경론을 펴고 있다.
정 대표의 ‘입’도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단명을 기원하는 취지의 발언인 ‘명박박명(2011년 12월)’ 발언 등 정 대표는 여러 차례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 같은 강성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가 강성 지지층을 위한 발언을 계속할 경우 이재명 정부 부담이 될 공산이 크다.
당내에서는 2025년 지방선거까지는 당·정일체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주를 이루긴 한다. 앞서의 민주당 의원은 정 대표가 마이웨이로 가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정 대표를 따르는 당내 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이 의원은 “의원들 다 친명이다. 대통령과 어긋나는 행보를 보이면 의원들이 가만히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2026년 6월 지방선거가 당과 대통령실 관계의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공천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 중간 평가 성격도 띠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실과 친명계는 그립감을 강화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 경우 정 대표와의 내홍 발발을 배제하기 어렵다.
전당대회 직후 통화한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당분간은 대통령실과의 ‘원팀’ 기조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공천 문제는 다르다. 정 대표 역시 본인의 세를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면서 “지금까지의 정 대표가 보여준 행적을 떠올려 보면, 여권이 시끄러워질 수 있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정 대표는 당선 수락 연설에서 “더불어민주당 당원과 당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배출한 이재명 대통령과 운명 공동체”라며 “이재명 정부가 성공해야 더불어민주당도 성공한다”고 했다. 이어 정 대표는 “험한 일 궂은일 싸울 일은 제가 앞장서서 솔선수범하겠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정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