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전관예우가 극진하다. 혹여 밥줄이 끊어질까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에 재취업 자리까지 정해두고 고이 보내드리는 것이 관례가 되다시피 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마다 고위공무원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낙하산 인사’가 구설수에 오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부부처 및 위원회 산하의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고위직은 정치권 인사들의 든든한 재취업 창구나 다름없었던 것. 청렴결백을 주장하던 청와대 출신의 공무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높은 문턱을 자랑하는 공공기관이 어떻게 정치권 인사들에게만은 대문을 활짝 열었는지 낙하산 인사 실태를 낱낱이 파헤쳐봤다.
‘금줄’ 낙하산을 타고 공공기관에 안착한 정치권 인사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와 정부 부처에 따르면 한 차례 논란이 됐던 최고경영자(CEO)뿐만 아니라 기관 내 2인자로 불리는 감사직까지 정치권 출신인사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CEO의 경우 80여명(약 30%)이 상급기관 출신이었으며 감사직은 무려 118명(47.2%)이 정치권 인사들로 이뤄져 ‘그들만의 리그’로 불려도 아무런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줄만 제대로 잡으면 전공이나 경력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다른 부처 산하 공공기관으로 전직을 하더라도 전공 업무와 일치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으나 그렇지 않은 공무원도 20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를 거친다지만 최종 결정권은 상급기관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감사 업무를 담당하는 감사원 출신의 경우 고작 12명에 그쳤으며 회계사나 법조계 인사들도 전공과 무관하게 감사직에 오른 경우도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내부인사의 반발로 조용히 한 자리를 차지하려던 계획이 틀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공식적으로 공공기관에 속하지는 않으나 그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지금 딱 그런 모습이다. 현재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 자리를 놓고 이진규 전 대통령정무1비서관이 단독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태인데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동조합에서 극심한 반대를 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지난달 초로 예정됐던 이사장 선임이 두 차례나 연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진규 전 비서관은 건설과 관련한 경험이 전혀 없다. 투명한 절차를 통해 이사장을 선출한다고 해놓고선 규정을 교묘히 이용해 그를 단독 후보로 올려놨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전 비서관의 이사장 취임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낙하산 인사들의 주요 활동무대는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 산하 공공기관 감사의 수는 총 60명이나 그중 21명이 청와대를 비롯해 정당 당직자나 시의원 등 정치권 출신으로 밝혀졌다. 국토해양부도 산하 공공기관 감사 30명 중 11명이 정치권에서 옮겨온 인사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돈’을 만지는 공공기관들에 청와대 출신이 포진하고 있었다. 금융위원회의 경우 산하 공공기관 감사의 10명 중 4명이 청와대와 인연이 닿았던 인물들이었다. 여기엔 국민권익비서관 출신의 이상목 예금보험공사 감사, 총무기획관실 선임행정관이었던 코스콤 김상욱 감사, 경제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던 한국기업데이터 이준호 감사, 정책홍보비서관을 역임했던 한국주택금융공사 박흥신 감사가 포함된다.
다른 주요 공공기관도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긴 마찬가지다. 한국전력기술 김장수 감사는 정부1비서관실 행정관 출신이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유현국 감사도 청와대 정보분석비서관이 자리를 옮겼다. 한국감정원 유정권 상임 감사위원도 청와대 경호처 군사관리관을 역임한 인물이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박병옥 감사도 대통령실 서민정책비서관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성환 감사는 청와대 홍보수석실 비서관을 지냈다. 더욱이 이들은 정권 말 대거 공공기관으로 자리를 옮긴 인물들이어서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보은인사라는 비판도 듣고 있다.
물론 정치권 출신의 공공기관 고위직들을 일괄적으로 ‘낙하산 인사’로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수순을 밟은 인물들의 활약상이 하나같이 제로학점이었다는 것이 문제다.
익명을 요청한 한 감사는 “외부인사이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부분도 있다.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 사적인 친분에 잘못을 눈감아 주는 일도 덜하다”면서도 “다만 관련 분야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없어 허수아비가 되는 경우가 많아 문제”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부담은 피하고 혜택은 챙기고
‘1인자’를 탐하지 않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왕이면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권력을 원하는 것이 일반적인 심리일 터. 하지만 정부 부처 및 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에 떨어지는 ‘낙하산 인사’들은 오히려 그 자리를 껄끄러워한다. 대신 ‘2인자’로 불리는 감사직은 인기가 높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감사라는 타이틀에 숨겨진 권력도 막강할 뿐 아니라 딸려오는 혜택도 쏠쏠하기 때문이다.
본래 감사는 기관장을 관리·감독하는 역할로 만들어진 자리라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자리인데다 경력까지 화려한 인물들이 많다보니 ‘절대권력’에 버금가는 직책이 됐다. 거기다 최고의 금액을 자랑하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1억 3491만 원)를 포함해 한국감정원, 코트라, 국립공원관리공단, 대한지적공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은 1억 원이 넘는 연봉까지 지급해 여느 공공기관의 CEO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수입을 자랑한다.
정치권 출신 감사 2명이 자리하고 있는 한 공공기관의 관계자는 “솔직히 그들이(감사) 하는 일은 없다. CEO는 실적에 따라 평가라도 받지 감사는 질책받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인사발표가 나면 감사는 CEO만큼 관심을 받지 않아 소리 소문 없이 움직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며 “억대연봉을 챙기는 감사도 많아 진정한 ‘신의 직장’이라 불릴 만하다. 우리는 고위직으로 올라가기 위해 아등바등 일하는데 이런 사람들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