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라톤 대회 주최 측은 사전에 페이스메이커를 구성, 참가자들이 결승선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한다. 얼마나 훌륭한 페이스메이커가 있느냐에 따라 대회의 질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 역시 경쟁이 치열하다. 수고료를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좋은 ‘스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달리기 경력을 취업 조건으로 내거는 회사도 늘어나는 추세다.
샤오위는 “페이스메이커 모집 글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 우리처럼 달리기를 좋아하는 학생들에겐 드문 경험이기 때문”이라면서 “나뿐 아니라 동호회의 거의 모든 멤버들이 신청을 원했다”고 했다. 샤오위는 “페이스메이커로 한 번 등록되면 앞으로 계속 할 수 있다. 아예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귀띔했다.
마라톤 대회 페이스메이커는 각 도시의 마라톤조직위원회가 선정한 선수들 중에서 뽑는다. 전문적인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일정 자격을 갖춘 선수들이 명단에 포함되는데, 그 기회가 샤오위를 비롯한 베이징대학교 학생들에게 찾아온 것이다. 샤오위는 “페이스메이커 명단에 들어간다는 것은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라고 했다.
샤오위는 공고에 적혀 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본인을 '모모'라고 밝힌 남성은 샤오위에게 얼마 후 열리는 한 마라톤 대회의 페이스메이커 자리가 비어 있다면서 보증금을 내면 채용할 것이라고 했다. 샤오위는 자신의 개인 정보와 함께 보증금 700위안(13만 6000원)을 송금했다.
모모는 자신의 SNS(소셜미디어) 계정을 샤오위에게 알려줬다. 여기엔 모모가 관여했다는 수많은 마라톤 대회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마라톤 선수들과 찍은 사진도 볼 수 있었다. 샤오위는 “학교 동호회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글이라 신뢰가 갔다. 또 SNS에 올라온 사진을 봤을 때 모모가 상당한 인맥이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모모는 샤오위에게 “요즘 마라톤 대회가 너무 많이 생겨 페이스메이커가 부족하다”면서 동료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모모는 학교 친구들, 지인들을 모모에게 소개해줬다. 이들은 모두 700위안의 보증금을 냈다. 모모는 “불참을 막기 위한 보증금이라고 들었다. 시합이 끝난 후 돌려준다고 했다”고 말했다.
대회를 앞두고 모모는 샤오위에게 이벤트 참여를 제안했다. 대회 전까지 특정 브랜드 러닝화, 헤드셋을 사용하고 후기를 남기는 일이었다. 샤오위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벤트에도 보증금은 필요했다. 러닝화는 2099위안(40만 원), 헤드셋은 1099위안(21만 원)이었다. 다소 비싸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차피 돌려받을 것이기에 모모에게 지불했다.
하지만 이벤트 상품은 오지 않았다. 샤오위뿐 아니라 그가 모모에게 소개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샤오위는 모모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대회 주최 측은 모모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샤오위를 비롯해 모모에게 돈을 보낸 사람들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은 결과 사기라고 결론 내렸고, 모모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저장성 항저우에서 모모를 체포해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모모는 모든 범행을 순순히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는 50명에 달했고, 모모는 이들로부터 11만 위안(2100만 원)의 돈을 편취했다. 모모의 수법은 간단했다. 샤오위에게 했던 것처럼 페이스메이커 자격을 주거나 마라톤 물품 테스트를 하는 조건으로 보증금을 받는 식이었다.
모모는 과거 마라톤 물품 제조업체에서 일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마라톤 인맥을 얻었고, 많은 동호인들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모모는 페이스메이커 자격 부여로 환심을 산 후, 물품 테스트 이벤트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했다. 베이징 하이뎬구 검사 후오천쉐는 “보증금이 아주 큰 액수는 아니다. 그래서 많은 피해자들이 침묵을 택했다. 모모의 사기극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라고 했다.
마라톤협회는 페이스메이커 자격 관리를 매우 엄격하게 하고 있다. 공개 모집을 통해 명단을 선별하고 후에는 전문 교육을 거쳐 우수한 자원을 양성한다. 이외에 페이스메이커 자격을 획득할 수 있는 경로는 없다. 베이징시 마라톤협회 관계자는 “외부를 통해 자격을 제공하지 않는다.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이 이 자격을 얻는 건 매우 어렵다”고 귀띔했다.
조사에 따르면 모모는 피해자들에게 접근할 때 해박한 마라톤 지식을 활용했다고 한다. 달리는 방법, 체력 관리 등의 노하우를 전수하며 피해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마라톤 업계에서 입소문이 났고, 모모는 셀럽으로 통했다. 또한 모모는 동호회 공식 채널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다가갔다.
후오천쉐 검사는 “모모는 상습법이다. 베이징대학교 학생 14명 외에도 피해자가 더 많았다”면서 “2011년부터 사기 행각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피해 규모가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전국 각지에서 뒤늦게 신고가 쏟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사건을 공안과 함께 확대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