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부터 중국 정부 기조가 바뀌었다. 일본 침략에 맞선 ‘하나의 중국’ 이념을 공고화하려는 목적으로 전승절을 9월 3일로 챙기기 시작했다. 8월 15일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날이다. 중국 한 소식통은 “역사적 흐름과 현실적 상황이 변화하며 중국 당국이 전승절을 소리 소문 없이 교체했다”고 했다.
2015년 중국은 제70주년 전승절을 기념하며 대규모 열병식을 진행했다. 당시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톈안먼 망루에 올라갔다. 박 전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 옆 자리에서 전승절 열병식을 직접 관람한 장면은 국내외적으로 상당히 화제를 모았다.
10년이 지난 2025년 중국은 제80주년 전승절을 기념해 다시 ‘초대형 열병식’을 개최했다. 10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자리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 있었다. 국제사회에서 엉덩이가 무겁기로 소문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중국을 찾아 시진핑 국가주석 옆에 섰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좌정은 우푸틴’ 구도를 위시하며 건재함을 자랑했다. 냉전 이후 처음으로 북중러 정상이 한데 모인 상황에서 시 주석은 미국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시 주석은 “중국 인민은 역사와 인류의 문명 진보라는 올바른 길에 굳건히 서서 평화 발전의 길을 견지할 것”이라면서 “세계 각국 인민들과 함께 인류 운명 공동체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전반적인 연설 내용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를 정면으로 겨냥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시 주석이 전승절 연설을 통해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GA)’를 슬로건으로 관세전쟁 신호탄을 쏘아올린 트럼프 대통령과 본격적 대결구도를 정립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9월 3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폴란드 정상회담 이후 언론 질의응답 시간에 트럼프 대통령은 열병식 시청 소감을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름다운 행사였고 매우 인상적이었다”면서 “미국의 공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 매우 놀랍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연설에서) 반드시 언급됐어야 했다”면서 “왜냐하면 우리는 중국을 매우 많이 도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직접 장제스가 이끌던 중국 국민당을 지원해 일본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각시킨 발언으로 풀이된다.
북중러 정상이 한 곳에 모인 것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들 모두와 사이가 매우 좋다”면서 “얼마나 좋은지는 1~2주 안에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한미 관세협상, 한미정상회담 등에 비중을 더 뒀다는 분석이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이 대통령은 “과거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태도를 취한 게 사실이지만, 이제 과거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중국 견제)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앞서의 중국 소식통은 “이 대통령 발언이 중국 심기를 상당히 건드렸을 것”이라면서 “한미정상회담 이후 중국은 김정은의 전승절 행사 참석 사실을 전격 발표했다”고 했다. 소식통은 “전승절 행사 당일에서도 김정은을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섰던 자리에 세우며 한국 측에 대한 불쾌감을 간접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한미일 군사협력을 북중러 삼각축으로 맞받아치겠다는 의도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과 러시아는 함께 전쟁을 치르고 있다”면서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군사적인 도움을 받고,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돈과 기술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북한과 러시아에게 부족한 부분은 전쟁과 경제난 등으로 거덜 난 물자”라면서 “세계의 공장인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대형 퍼즐조각’”이라고 했다.
그는 “웬만하면 북한 밖으로 절대 움직이지 않는 김정은이 중국으로 직접 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라면서 “향후 격랑 속 국제정세 국면서 김정은이 ‘키 플레이어’로 뛰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격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우원식 국회의장은 중국 ‘의전서열 3위’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을 만나 “한중관계를 더욱 성숙시켜 나가길 희망한다”고 했다. 자오 위원장은 “전승절 목적은 평화”라고 화답했다.
중국이 ‘의전서열 3위’를 내보낸 데엔 그만한 외교적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다. 주한 중국대사 임명 당시 대사 ‘급’을 높였던 중국이 다시 ‘서열 외교’를 통해 한국을 압박하는 데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관계자는 “전승절 기념식은 김정은이 이재명 정부의 ‘평화 청사진’을 받을 수 없는 자리”라면서 “미국과 대화, 한국과 소통을 원했다면 중국으로 직접 움직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과 각각 일대일 정상회담을 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혈맹 관계’를 부각시켰다.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 땐 파격적인 단독 만찬 자리를 가졌다. 시 주석과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은 열차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