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회담 공동성명 등의 절차는 생략됐다. 양국 정상이 특정 현안에 대한 합의를 도출한 부분도 공개되지 않았다. 한미 관세협상 타결에 따른 세부사항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공식화 될 것이란 기대가 높았지만 이 부분 역시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 저서 ‘거래의 기술’을 읽는 등 철저하게 회담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정상회담 전날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로부터 ‘회담 경험담’을 듣기도 했다. 회담 현장에서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칭찬 일변도’ 기조를 보였다. 철저했던 사전 준비가 좋은 회담 분위기를 이끌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맞춤 골프채, ‘MAGA(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모자, 거북선 모형 등을 선물했다. 회담 막판엔 트럼프 대통령 요청에 따라 서명용 만년필을 즉석 선물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기분에 초점을 맞춘 회담 전략을 두고 반응이 엇갈렸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트럼프 대통령 기분을 맞춰야 한다’는 긍정론과 ‘기분 맞추느라 실익을 챙기지 못했다’는 부정론이 동시에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바로 전까지 이재명 대통령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회담 3시간 전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라면서 “숙청 또는 혁명처럼 보인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심지어 우리 군사 기지에 들어가 정보를 수집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가 두 차례 방한했을 당시 안내를 맡았던 이영훈 순복음교회 담임목사에 대한 채해병 특검 압수수색, 오산 미군 기지에 대한 내란 특검의 압수수색을 겨냥한 메시지란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 글이 공개된 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을 만났다. 강 비서실장에 따르면 와일스 비서실장과의 만남에서 강 비서실장이 한국 정치상황을 설명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다시 보고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미 정상회담 취재진 질의 순서에서 이 대통령은 관련 질문에 “(특검이) 미군을 직접 수사한 것이 아니라, 그 부대 안에 있는 한국군의 통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확인한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친위 쿠데타로 인한 혼란이 극복된 지 얼마 안 된 상태”라면서 “내란 상황에 대해 국회가 임명하고 주도하는 특검에 의해서 사실조사가 진행 중”이라고도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특검이) 제 통제 아래 있지는 않지만, 지금 검찰(특검)이 하는 일은 팩트 체크”라면서 “나중에 더 자세히 (얘기할 것)”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도 “(소셜미디어로 언급했던 내용이) 오해라고 확신한다”면서 “하지만 소문이 존재하니 관련해 얘기한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조사가 잘 마무리됐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잭 스미스는 2022년 11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임명한 특별검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루된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의혹’과 ‘백악관 기밀문서 유출 의혹’을 수사했다. 잭 스미스는 트럼프 대통령을 기소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 법원 재판은 중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잭 스미스를 일관되게 비난해오고 있다.
외교가 소식통은 “이 대통령이 특검 관련 얘기를 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끼어들며 자신을 수사한 특검을 거론했다”면서 “특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면서도 농담으로 치환했다”고 했다. 소식통은 “숙청, 혁명 등 키워드가 들어간 발언 이후 오해를 확신한다면서도 자신을 수사했던 특검을 매개로 농담을 한 것은 ‘의심의 눈초리’를 완전히 거두지 않았다는 시그널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많이 논의됐던 현안은 북한 문제였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 메이커’라면 내가 ‘페이스 메이커’가 되겠다”는 발언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만족스런 표정을 이끌어 냈다.

이 대통령은 “얼마 전 김여정이 미국과 저를 비난하는 발언을 할 때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특별한 관계는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다”면서 “기다리고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저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면서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도 했는데, 다시 얘기를 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로 대화할 준비가 된다면 기회가 있을 것”이라면서 “여동생(김여정)을 제외하면, 김정은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했다.
취재진이 김정은과 만남을 추진할 시기를 질의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어 확실히 말하긴 어렵지만, 올해 그를 만나고 싶다”고 답했다.

조선중앙통신은 ‘3단계 비핵화론’과 관련해 “천진한 꿈에 불과하다”면서 한국을 ‘주권을 미국에 고스란히 섬겨 바친 정치적 가난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의 논평을 자세히 보면 한국과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루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해도 이 대통령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란 굳은 의지를 다시 표출한 셈”이라고 바라봤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북한의 반응이 좋지 않더라도, 한반도 평화 첫 걸음이라는 점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관련 대화는 의미 있었던 대목”이라고 했다. 앞서의 야권 관계자는 “한미 현안과 관련한 세부적인 조율을 논의해야 할 시간이 김정은과 관련한 대화로 채워진 점이 아쉽다”면서 “북한과 관련한 대화가 많이 이뤄진 반면, 한미 현안 관련 세부 조율 등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성과가 무엇인지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군사 분야뿐 아니라, 경제와 과학기술 분야까지 한미동맹을 확장하자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MASGA(한미조선협력) 프로젝트’가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알래스카 에너지 사업 등에서 한국과 협업을 원한다는 의사를 표출했다.
농산물 수출입 등 민감한 이슈는 거론되지 않았다. 한미 관세협상에 따른 의례적인 발언 외에 추가적인 조율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8월 26일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50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53.1%가 한미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매우 잘했다’고 답한 비율이 37.6%, ‘잘한 편’이라는 응답률이 15.6%였다. 부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은 41.5%였다. ‘매우 잘못했다’고 답한 비율이 27.9%, ‘잘 못한 편’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13.6%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중 60.7%는 정상회담 성과가 있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성과로는 조선업 및 제조업 등 경제 협력 확대(18.0%) 정상 간 개인적 신뢰 구축(14.0%) 북미대화 및 한반도 평화 진전(13.9%) 한미일 동맹 협력 강화(10.5%) 순이었다. 성과가 없었다는 응답률은 34.6%였다.
이번 조사는 무선 100% 무작위 생성 표집 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RDD) 자동응답조사 방식으로 실시됐다. 응답률은 5.3%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한미 정상회담 결과와 관련해 “적절하게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며 “세부적인 차원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이슈라든가 남북관계 이슈에서 한미 정상들이 비핵화에 도달할 수 있도록 김정은을 설득해야 하는 점 등이 과제로 남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