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은 김건희 씨 오빠 김진우 씨 장모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며 이 화백 그림을 발견한 바 있다. 김 전 검사는 이 화백 그림을 구매해 김건희 씨에게 전달하며 2024년 총선 공천과 경선에서 떨어진 뒤 국가정보원 법률특보 임명을 청탁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법원은 18일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김 전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향후 법원이 이 그림을 뇌물로 판결 내린다면 그 액수에 따라 김 전 검사 형량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 형법은 뇌물 금액을 ‘가액’(물건 가치에 상당한 금액)으로 규정한다. 또, 특정범죄가중법은 수뢰액이 3000만 원 이상일 때부터 가중 처벌하고 있다.

김 전 검사가 선물한 그림은 그 중에서도 1980년 작으로 추정된다. 파란 점들이 농도를 달리하며 반복적으로 찍혀있는 이 그림은 가로 33cm, 세로 24cm의 크기로 A4 용지보다 조금 더 큰 4호 캔버스에 그려진 소품이다.
이 그림은 2022년 6월 대만의 한 미술 경매장에서 한국인 이 아무개 씨에게 낙찰돼 한국으로 건너왔다. 경매를 연 곳은 대만 타이베이시에 위치한 ‘에테리얼’ 갤러리로 불상, 청동, 도자기, 고가구 등 고미술품과 골동품을 주로 취급하는 중소 화랑이었다. 2019년부터는 경매 회사를 설립해 온라인 경매도 정기적으로 열고 있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이 화백 그림에 대해선 출처를 포함한 상세 정보를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일요신문이 이날 치러진 경매의 카탈로그에 기재된 작품 정보를 비교해 본 결과, 야요이 쿠사마의 대표작인 ‘호박’(판화)은 크기 53×65cm의 에디션 번호(81/120)와 함께 ‘야요이 쿠사마 전 판화 1979–2017’(도쿄 아베 출판, 2017)에 수록된 사실까지 출판 기록으로 제시됐다. 판화란 작가가 직접 그린 것이 아닌 프린트 작품을 말한다.
다카시 무라카미의 ‘Mr.DOB’은 27.5×27.5×23.5cm 크기에 한정 1000점(금색 250, 청색 750)으로 제작된 작품이며 2020년 6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낙찰된 이력과 원 포장 박스, 하단 인쇄 정보 등 자세한 정보가 제공됐다. 또 다른 한국 작가의 작품 역시 어떤 경로를 통해 경매로 나오게 됐는지 등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재돼 있었다.
반면 이 화백의 ‘점으로부터 No.800298’은 ‘33×24cm’라는 규격 외에는 다른 항목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재료와 바탕재 등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 누락된 상태였다. 함께 출품된 다른 작가들 작품엔 에디션 넘버와 증명서, 소장 경로 등이 첨부된 것에 비해 이 화백 작품에 대해선 오로지 크기만 명시된 것이다.
예술품 소장이력서라고 불리는 프로비넌스는 미술계에서 진위 판정을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꼽는다. 위작이 많은 작가의 작품인 경우 해당 작품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어디에 전시됐는지, 누가 소장했는지 등을 알려주는 프로비넌스를 통해 위작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일요신문은 해당 갤러리에 이 화백의 작품에만 기본 정보가 빠진 채 경매가 진행된 이유와 진작 여부 등을 여러 차례 문의했으나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업계에선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해당 갤러리가 이 화백에 대해 문외한이었거나, 진품 입증이 불가해 의도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경매 업체는 이 화백의 작품 추정가를 5만~10만 대만달러(한화 230만~450만 원)로 야요이 쿠사마의 판화 작품보다도 더 낮게 책정했다.
과거 화랑을 운영한 A 씨는 “모든 작품의 출처를 밝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서도 프로비넌스가 있는 작품이 더 비싼 값에 거래된다. 대부분은 자신의 안목을 믿고 구매하고 이후 진품 감정을 받는 일이 많다”고 했다. 다만 “이 화백 정도의 작가 작품을 내놓으면서 재료, 캔버스나 종이처럼 작품의 형상을 담는 지지체 등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 누락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양측 모두 일요신문 등 언론엔 “감정윤리규정상 감정 과정과 결과를 공개할 수 없다”는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다만 미술계 전언에 따르면 한국화랑협회 쪽 관계자는 위작을 확정한 근거로 비정상적으로 폭등한 가격을 들었다. 이 작품은 한국인 이 아무개 씨에 의해 3000만 원에 낙찰됐다가 이후 임 아무개 씨를 거쳐 2023년 2월 김 전 검사에게 1억 4000만 원에 팔렸다. 이 밖에도 화폭 천의 재질, 안료와 작가의 서명이 진작과는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고도 봤다.
반면 한국미술품감정센터 측은 가격 변동이 위작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센터 관계자는 “현대 유명 작가라도 국외 군소 경매에서 명성이나 작품 가치를 잘 몰랐다가 이후 거래가가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또, 작가의 서명과 구도, 안료 등에서도 진작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고 밝혔다고 한다.
실제로 ‘빨래터’로 유명한 박수근 화백의 작품 200여 점도 헐값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뒤늦게 그 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한국전쟁 당시 생계가 막막했던 박 화백이 직접 자신의 그림을 싼값에 팔았는데 이때 상당수 작품들이 미군에게 팔렸다가 시간이 흘러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1950년대 점당 10만~50만 원에 거래됐던 박 화백 작품은 2007년 점당 10억~50억 원에 거래됐다.
이번 논란을 바라보는 업계 종사자들은 이 화백의 그림이 위작인지 진작인지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 한 미술사 연구자는 “작품 가치를 알아보는 이가 없어 여기저기 싼값에 팔리다가 시간이 지나 발굴되는 진품이 적지 않다”며 “국내에 들어와 가격이 폭등했다는 이유만으로 위작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또 다른 미술 평론가는 “한국으로 넘어오기 이전의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더욱 논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작가 본인이 와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2016년 이 화백 작품이 대대적인 위작 논란에 휘말렸을 때 작가가 직접 진작이라고 주장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경찰은 이 화백 그림 13점을 조직적으로 위작해 유통한 일당을 검거했다. 위작범은 “자신이 그렸다”고 자백했다. 여기에 그림 중 한 점에 2005년 이후 생산된 캔버스가 쓰인 사실도 확인됐다. 그런데 위작을 직접 살펴본 이 화백은 “모두 내 호흡과 필치가 묻어 있는 진작임이 틀림없다”고 주장해 미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진위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안을 수사 중인 김건희 특검팀은 위작 여부에 대해선 단정하지 않고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