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연 회장이 수감생활 중 건강 상태가 나빠져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보라매병원 병실에 입원했다. 연합뉴스 |
“다이너마이트’ 김 회장이 쓰러졌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구치소 수감 중 돌연 실신해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는 일이 벌어졌다. ‘위풍당당’ 김 회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김 회장은 지난해 10월 배임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남부구치소에 수감될 당시만 해도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재계 회장에겐 전례 없던 실형 선고가 내려졌던 날에도 김 회장은 변호사 접견실에서 여유를 부리는 모습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거물급 회장님에게 구치소 생활이 그리 만만치는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김 회장은 구속 수감 5개월 만에 원인 모를 건강 악화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지난 9일 재판부로부터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일요신문>은 집행정지 처분을 받기까지 지난 150여 일간 김 회장의 구치소 생활을 주변인들을 통해 낱낱이 알아봤다.
“눈치를 보면서도 당당했다.”
김 회장은 구치소 수감 초기만 해도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는 게 당시 김 회장을 목격한 법조인들의 증언이다.
서울서부지검 관계자 김 아무개 씨는 “김 회장이 구속 수감 판결을 받을 당시 재판정에서나 당일 구치소 내부 변호사 접견실 등지에서 전체적으로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김 회장이 구속된 당일 구치소에서 변호인과 접견하는 김 회장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김 회장의 앉은 자세가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다. 변호인을 앞에 두고 책상 위에 두 다리를 쭉 뻗어 걸쳐 놓고 양 손은 의자 뒤로 돌려서 깍지 낀 자세로 앉아 있었는데 굉장히 자연스러워보였다. 마치 그게 일상인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구속 당시 김 회장을 가까이서 목격했다는 또 다른 법조인은 “실형 선고가 나오자 다소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고 구치소 내에서도 주변 눈치를 보는 듯 했다. 하지만 자세라든지 태도는 당당한 편이었다”고 전했다.
이 법조인은 “하지만 김 회장이 자신이 구속당할 줄 몰랐던 것 같아 보이긴 했다. 변호인 비용으로만 100억 원 넘게 썼다는 설이 법조계 내부에서 돌 만큼 김 회장 측이 이번 재판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랬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김 회장도 속으로는 당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당당했던 김 회장이 구치소 입소 후 불과 한 달여 만에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는 게 그를 접한 구치소 관계자 및 일부 법조인들의 최근 증언이다. 어떤 속사정이 있었던 걸까.
한 구치소 관계자는 “김 회장이 입소 초반에 거물급 회장이랍시고 고개를 빳빳이 세우는 일은 전혀 없었다. 다만 시종일관 ‘자신은 결백하다’는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다”면서도 “그런데 한 달 쯤 지났을 때부터 김 회장이 구치소 관계자들에게 한껏 예의를 갖추는 등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달라진 모습에 대한 증언은 또 있다. 김 회장을 자주 접했다는 다른 법조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김 회장이 입소한 지 10일 만에 패닉 상태에 빠진 것 같아 보였다. 지나가는 구치소 관계자들에게 목례를 하기도 했다 거물급 회장이 그러기엔 쉽지 않았을 텐데 다소 의아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구치소 관계자 및 법조인 일부에 따르면 김 회장이 구치소 내에서 수의를 입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목례는 기본이고 표정도 그답지 않게 의기소침했다는 것.
▲ 김승연 회장이 지난해 8월 16일 서울 마포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했다. 연합뉴스 |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못했을 즈음 김 회장의 건강 상태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한다. 남부구치소 입소 후 가족 면회도 하지 않고 변호인만 접견하는 등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올인했던 김 회장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한 교도소 관계자는 “김 회장이 (구치소에) 입소하고 나서 건강상태가 안 좋아졌던 것은 사실이다. 갑자기 위중해진 이유는 모르겠다. 변호인 접견을 자주 한 부분 이외에는 다른 수감자와 거의 동일한 대우를 받았다”며 “(김 회장이) 안에 있어서 갑갑해 하는 것 같았다. 심적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대기업 회장이 실제 구속 수감된 이례적인 일이라 본인도 심적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며 “재판 결과를 두고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결국 지난달 원인 모를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인근 보라매병원으로 이송된 김 회장은 병세가 더 악화돼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고, 현재 호흡곤란 증세 및 당뇨합병증 치료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이와 관련 한화 측 관계자는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 회장은 현재 가족도 못 알아볼 정도로 위중한 상태다. 이미 지난해 10월 24일 경부터 체중이 급격히 증가하는 등 건강 적신호를 보였다”고 말했다.
김 회장 담당 주치의 등으로부터 김 회장의 상태를 전해 들었다는 한 의료계 관계자 역시 “우울증이 심하고 무엇보다 가족도 못 알아볼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고 들었다”면서 “건장한 체격에다 건강 상태가 비교적 좋은 편이었던 김 회장이 구치소 생활 100여일 만에 위중해진 까닭은 아무래도 정신적인 원인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편 김 회장의 병환이 이번 항소심 재판에 어떤 결과를 미칠지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김 회장 측이 일전에 제출한 보석신청 심리를 2심 재판부가 최근 각하시킨 바 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선 “보석신청에 2심 재판부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보면 김 회장의 2심 형량도 예측이 가능하다”며 “그런데 (보석심리를) 각하시킨 것을 보면 김 회장이 2심에서도 쉽지 않은 판정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반응이 많다. 이에 반해 “지난 2007년 보복폭행 재판 때처럼 위중한 병세를 들이밀어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낼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재계, 법조계의 관심사로 떠오른 김 회장 관련 판결은 오는 3월 7일 오후 2시에 재개될 2심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거물들 중 가장 잘 적응
현재 구치소에 수감 중인 유명 거물급 인사들로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이국철 SLS그룹 회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영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인 김재홍 씨 등이 있다. 과연 이들은 잘 적응하고 있을까. 구치소 생활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사는 바로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이다. 지난해 5월 구속집행정치 심리 결정이 있기도 전 법원과 검찰의 허락 없이 외부 병원에서 긴급 수술을 받는 등 과감한 돌발 행보를 보인 최 전 위원장. 당시 그는 구치소에 입소하자마자 평소 앓고 있던 지병이 악화돼 외부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표면적으로는 한화 김 회장과 비슷한 패턴이다. 최 전 위원장의 이런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집행유예 등 양형 감형을 받기 위한 쇼가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최 전 위원장을 주변에서 관찰한 서울구치소 관계자들 일부는 “최 전 위원장이 구치소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최 전 위원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5~6일 정도는 가족과 면회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측근이나 변호인 접견은 최대한 줄이고 부인과 딸을 만나는 데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다만 올해 1월부터는 면회 횟수가 한 달 6회로 제한됐다.
서울구치소의 한 관계자는 “거물급 인사의 수감 생활을 그동안 많이 접했지만 최 전 위원장의 경우 예상외로 소박한 면이 있어 놀랐다”면서 “최 위원장이 면회 온 가족들에게 출소하면 보신탕을 먹으러 가고 싶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최 전 위원장이 수감 중인 서울구치소는 ‘작은 정부’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거물급 인사들이 많이 수감돼 있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거물급 인사들의 가족들끼리 구치소 근처에서 조촐한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거물급 인사의 부인은 9일 “남편이 먹고 싶은 음식을 몰래 넣어주는 방법을 교환하고, 설 특사 여부 등과 관련해 수감자 가족들끼리 애환을 나누면 기분이 좀 풀린다”고 귀띔했다.
한편 청와대가 몇몇 거물급 인사들을 대상으로 ‘설 특사’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해당 인사들의 가족은 어떤 심정일까. 특별사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 최 전 위원장의 한 측근은 10일 통화에서 “나올 수 있을까? 도저히 모르겠다. (특별사면) 되면 좋겠지만 현재 가족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담담히 최 전 위원장의 옥중 생활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거물급 인사의 측근들은 “그래도 나오면 좋겠다. 죄를 지었지만 억울한 면도 없지 않았다”며 하소연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