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한양대에서 열린 ‘잡 디스커버리 페스티벌.’ 심각한 취업난을 반영하듯 수많은 취업준비생이 몰려들었다. 최준필 기자 |
해마다 연말이 되면 대학에는 플래카드가 내걸린다. ‘대학평가 취업률 1위’, ‘졸업생 취업률 90%’ 등.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수치와는 달리 취업을 준비하는 졸업생들이 느끼는 현실은 썰렁하기만 하다. 정부에서는 대학 교육역량강화 사업 차원에서 대학의 취업률을 조사하고 있다. 취업률이 높은 대학은 국고 보조금을 받고, 낮은 학교는 대학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각 대학들은 위장취업, 교내 채용 늘리기 등 부정한 방법까지 동원해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혈안이다. 심지어 취업률이 낮은 학과는 통폐합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대학들의 취업률 부풀리기 실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본다.
대구공업대학 이원 총장(60)은 지난 7일 보조금관리에 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 7일 대구지검 서부지청에 구속됐다. 이 총장은 지난해 4월 교육과학기술부가 주관하는 교육역량강화 우수학교 선정 당시 취업률과 학생 정원, 장학금지급률 등을 부풀린 허위서류를 작성해 5월과 9월 2차례에 걸쳐 국고 보조금 20여억 원을 타냈다. 심지어 이 대학은 보조금 중 15억 원을 입시처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장학금 명목으로 지급한 뒤 되돌려 받는 형식으로 지원금을 빼돌리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금 대학의 취업률 부풀리기가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매년 전문대학과 대학·대학원 등 졸업자를 대상으로 취업률을 파악해 공개하고 있다. 대학의 취업률은 학교 지명도와 인기에 직결돼 취업률이 높아야만 신입생들을 많이 받을 수 있다. 또한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 교육역량강화 사업 심사에서 취업률은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작용한다. 취업률이 낮은 대학은 재정지원이 제한되고 대학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문대학뿐 아니라 서울의 명문대학들까지 위장취업이나 교내 채용 등을 통해 가짜 서류를 만들어 취업률을 뻥튀기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월 지방의 A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편입을 준비하던 박 아무개 씨는 지도교수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교수는 “내가 아는 업체가 있는데 네 이름으로 서류상 취직시키고 4대 보험에 가입하겠다”며 “보험료는 학과 실습비로 대납할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교수는 “학교에서 취업조사차 전화하면 그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해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서울의 명문대 미대를 졸업한 손 아무개 씨 역시 교수로부터 “예체능 학과가 취업률이 낮아서 학과가 없어지거나 통폐합될 위기에 처했다”며 “왜 취업을 하지 않느냐”고 취직 독촉을 받았다고 한다. 손 씨는 “미술을 하거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개인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취업을 하라는 건 예술을 접으라는 말이 아니냐”고 황당해 했다.
실제로 교육과학기술부가 예술 학과들이 유명한 상명대, 추계예술대 등을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부실대학이라는 평가를 했다. 이들 대학은 대출 제한 등의 재정 압박을 받으면서 학교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져 취업률이 낮은 예체능, 철학, 인문학 관련 학과들을 통폐합 하는 등 존폐 위기에 처했다.
위장취업이 힘들면 대학들은 교내 채용 인원을 늘리는 방법으로 취업률을 부풀린다. 광주의 B 대학은 지난해 교내 행정인턴을 채용하면서 당초 예정했던 인원보다 28명이 많은 178명의 인턴을 뽑았다. 그리고는 이 인턴들까지 취업상태로 구분했다.
이러한 대학들의 취업률 부풀리기에 답답한 것은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다. 졸업을 앞둔 김 아무개 씨는 “학교에서는 취업률이 80%라고 자랑을 하는데 내 주변을 보면 취업을 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며 “어떻게 저런 수치가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학교 관계자들은 취업률 부풀리기에 대해 극구 부인했다. 대학 취업지원처에서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학교에서 조사한 취업 현황과 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비교해 취업률이 맞는지 확인하기 때문에 취업률을 부풀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학들이 위장취업을 하며 학생들의 이름으로 4대 보험까지 가입하기 때문에 이런 비교 작업으로는 취업률 조작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교육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학의 취업률 부풀리기가 문제가 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5일 ‘2013 대학 평가지표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취업률 편법, 조작행위에 제동을 걸기 위해 교내취업 인정비율을 취업대상자의 3%까지로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대학 관계자들은 이런 조치가 취업률 부풀리기를 근절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취업률로 대학 등급을 매기는 나라가 없다”며 “정부가 대학들의 취업률 조작을 부추기고 있다”고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정부도 취업률 ‘뻥튀기’ 한다
국회, 예금보험공사 등 공공기관과 공기업은 지난 2009년부터 청년 인턴제를 실시하고 있다. 6~8개월 동안 인턴들에게 업무를 가르치고, 인턴 경험자에게는 공공기관 신규 채용시 인턴 경력을 우대해주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것. 그러나 청년 인턴제가 구직자들의 취업을 돕기보단 취업률을 올리기 위한 정부의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 대학을 졸업한 김 아무개 씨는 지난 2012년 4월부터 12월까지 8개월 동안 국회 도서관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김 씨는 “국회 도서관에서 인턴으로 일했지만 나는 사서로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아 정규직 전환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도서관의 사서가 되기 위해선 준사서로 2년 이상의 경력과 교육과정을 통한 자격증이 있어야 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인턴제는 MB 정권 말기까지 취업률을 떨어뜨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뽑아놓은 거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낙연 민주통합당 의원이 이러한 문제를 지적했다. 이 의원은 “올해 상반기 공공기관이 채용한 청년 인턴 1만 1017명 가운데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는 490명으로, 전체 인턴의 4.4%에 그친다”며 “이는 올해 공공기관이 정규직을 뽑을 때 신규 채용의 20%를 인턴 경험자 중 선발하겠다고 한 정부의 방침에 크게 못 미친다”고 주장했다.
공공기관에서 인턴을 관리하는 한 관계자 역시 “공공기관은 어차피 공무원시험을 합격해야 하기 때문에 인턴의 정규직 전환은 쉽지 않다. 그 사실을 알고도 청년 인턴제를 실시한다는 것은 정부에서 취업률 수치를 올리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