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하라 공동대표: “1997년 창립됐다. 많은 분이 참여하고 있다. 대학교 교수, 공공기관 직원, 선생님들도 있다. 참여하고 있는 단체는 45개다.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는 회원은 150명 정도다.”
—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 ‘제1회 전국대회’에 참석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데하라 공동대표: “(전쟁유적보존전국네트워크 입장은) 사실상 일본 정부 입장하고는 좀 다르다. 일본 정부는 침략전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네트워크는)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생각한다. 그 침략전쟁을 후대가 기억해야 하는데, 일본 내에 남아 있는 전쟁유적만 가지고는 (전쟁 참상의) 전체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한반도에 남아 있는 전쟁유적은 어떤 상태인지, 중국은 또 어떤 상태인지, 아시아 전체의 전쟁유적 실태를 봐야지만, 일본이 했었던 침략전쟁의 전체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차원에서 이번 심포지엄에 참석하게 됐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다면.
데하라 공동대표: “식민지배라든가, 침략전쟁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전쟁유적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한국말은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한글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연표·연대 같은 게 나와 있었다. 그것을 보고서 식민지 시대상이 변화하는 모습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사진 같은 것을 (발표자들이) 많이 보여줬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통해 한국의 전쟁유적 상황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전쟁유적은 물건이다. (사진들을) 보면서 바로 이해가 됐다.”
—일본의 전쟁유적 관리 실태가 궁금하다.
데하라 공동대표: “5만 건의 전쟁유적이 있다. 385건은 올해 문화재로 지정됐다. (문화재로 지정된 전쟁유적은) 전체의 1%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전쟁유적 보존에 관심이 많은 시민이 (보존) 요청을 많이 하니 그것에 대해 반응하는 행정기관과 지자체가 있다.”

데하라 공동대표: “일본 고지현의 난코쿠시라는 곳에 해군 비행대가 있었다. 그곳 격납고 7곳을 보존해 달라고 요청해서 약 10년간 활동을 해서 결국 7개 전부 다 보존하게 됐다. 물론 주민 중에는 ‘철거해야 된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지자체에서 그런 분들을 설득했다. 그래서 1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정부 기관은) 듣는 귀는 있는데, 진행 속도가 너무 느리다. 이해는 하지만, 어려움이 있다.”
이와와키 운영위원: “전쟁유적에 대해서는 일본 지자체도 보통 방치하고 있다. 유적을 철거하려고 해도 비용이 드니까 일단은 놔둔 것이다. 고지현처럼 전향적으로 움직이는 곳도 있는가 하면 미에현 같은 경우에는 많이 뒤처져 있는 현이다. 보존 성과가 있는 현은 시민과 행정이 서로 의견이 합치된 곳이다. 뒤처진 곳은 시민들이 열심히 보존 운동을 하지만, 아직 행정이 따라오지 못하고, 돈이 없어서 보존이 어렵다. 그러나 전쟁 80주년이 지나고 나서 보니 뒤처진 지자체도 그 전쟁유적이 보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가부치 회원: “그래서 올해 여름 전쟁 80주년을 맞이해 NHK(일본 공영방송)에서 지바현에 있는 ‘아와유적네트워크’를 소개했다. 유적에서 어떤 보존 활동을 하고 있는지, 미에현 쪽에는 보존이 안 되고 오히려 개발이 좋다고 하는 지자체와의 갈등 등이 나온다. 아와유적네트워크는 마을 자체가 박물관이라는 점을 알리려고 하고 있다.”(나가부치 씨는 아와유적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보존에 적극적인 지자체와 그렇지 않은 지자체의 차이가 무엇인가.
나가부치 회원: “원래는 다 안 되는 거다.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비용이 드니까 하기 싫어하는 분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스스로 기부를 하며 활동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렇게 해서 단체가 생기고,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과정이다.”
—시민단체가 보존 활동을 하건, 일본 정부가 하건, 결국 과거를 미화하려는 시도로 보일 수도 있다.
이와와키 운영위원: “두 번 다시 전쟁유적이라는 것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이러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쟁은 안 된다. 전쟁은 나쁜 것이다. 이런 것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교육하기 위해 전쟁유적을 보존하려는 거다. 전쟁유적을 통해 ‘옛날에는 훌륭한 시설 같은 것도 있었다’ ‘우리가 뛰어난 과학 기술도 있었다’는 것을 자랑삼아 후대에 남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과거를 왜 들추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전쟁유적 보존 활동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이와와키 운영위원: “전쟁 경험자들이 거의 사라지고 없는 상황이 됐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니 전쟁유적이 (전쟁 참상을) 이야기해 주는 상황이 됐다. 지자체도 언론도 그 필요성에 대해 알아채기 시작했다. 앞으로 전쟁유적을 남겨야 한다는 경향이 더 강해지지 않을까 예상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전쟁유적을 남긴다 하더라도 전쟁 책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유적에 대해서는 두 가지 움직임이 있다. 전쟁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평화가 중요하다. 그래서 전쟁유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전쟁유적 자체가 없다는 것은 전쟁이 없다는 뜻이 된다. 이처럼 전쟁을 할 수 없다고 돼 있는 평화헌법 9조를 중요시하는 이들이 있다. 다른 한 축은 전쟁유적을 통해서 전쟁 전술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과거사를 미화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한 축이다.”

데하라 공동대표: “한국은 민중의 힘이 세서 정치를 그래도 좌우할 수 있는데, 일본은 어려운 것 같다. 극으로 가더라도, 우향우하더라도, 국민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시민들이 (압력을) 막을 힘은 작은 것 같다.”
이와와키 운영위원: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권력이 있었던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다. 특히 그런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회사들이 있다. 미쓰비시나 스미토모도 마찬가지다. 미쓰이도 그렇다. 옛 재벌이다. 전투기를 만들었던 회사가 자동차를 만든다. 그랬던 회사들이 지금 다시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미쓰비시는 전투기를 만들다 자동차를 만들었다. 그런데 다시 전투기를 만들고 있다. 그런 회사들이 자민당(집권 여당)을 후원하고 있다.”
—한일 네트워크는 어느 정도까지 구축된 상태인가.
데하라 공동대표·이와와키 운영위원: “아직은 일본에만 있다. 현재 (일본 내에서) 직접 사료를 발굴하고 그 장소를 찾아다니면서 답사하고 있다. 각 지역 단체들이 중심이 돼서 각 지역 전쟁유적에 대한 조사가 다 돼 있다. 그 내용을 모아서 사전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내년(2026년) 4월 발간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
“이제 한국에 전쟁유적을 보존하는 단체가 만들어졌으니 서로 교류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유대를 강화해 가면 좋겠다. 이번이 그 첫 번째 교류인 셈이다. 해마다 서로 방문하면서 (현황에 대해) 발표도 하고 현장도 답사하고 하면 좋을 것 같다. 내년 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의 개최지와 답사지역이 어디가 될지 벌써 기대가 된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