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법으로는 당사자가 사망하면 불법 행위에 따른 미납 추징금 집행 절차가 중단된다. 불법 행위로 축적된 자산이 자녀에게 상속되더라도 이를 추징할 수 없다.

#589명 사망한 끔찍한 인권 유린 ‘형제복지원 사건’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1987년 부산의 민간 수용소에서 이루어졌던 인권유린 사건이다. 1987년 3월 22일 직원의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이에 35명이 탈출함으로써 각종 폭력과 인권 유린 사실이 드러났다. 형제복지원이 운영되던 12년 동안 무려 589명이 사망했고, 일부 시신은 300만~500만 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가기도 했다. 시신이 암매장된 땅에 아파트 등이 들어서 제대로 확인할 수도 없었다. 4000여 명이 하루 10시간 이상 혹독한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대우도 받지 못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박인근 전 원장의 재산 환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박 전 원장의 경우 횡령 등의 혐의만 유죄로 확정됐을 뿐 불법 감금이나 강제 노역 동원 등의 혐의는 무죄가 선고됐다. 또 박 전 원장이 2016년 사망하면서 형제복지원의 재산 처분 후 가족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산은 국내법상 추징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호주의 ‘강력한 몰수제도’ 활용해야
법조계에서는 호주의 민사몰수제도(Non-Conviction Based Forfeiture)를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호주는 우리나라와 달리 형사상 유죄 판결이 없더라도 재산 취득의 불법성만 입증되면 몰수할 수 있는 민사 성격의 법적 시스템을 구비하고 있다. 특히 호주는 ‘Unexplained Wealth Order(UWO)’이라는 강력한 범죄수익환수규범을 갖고 있는데, 개인 재산 중 합법적으로 취득한 재산이라는 점을 스스로 입증하지 못할 경우 몰수할 수 있다.
호주 형사사법공조법은 외국 정부의 동결 및 몰수 결정을 집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재산이 호주에 있다고 의심할 만한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 민사 몰수를 적용해 자산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한다. 간접 수익 및 이에서 비롯된 동등한 가치의 다른 자산에 대해서도 몰수 가능하다.
예를 들어 호주가 아닌 제3국에서 불법 행위를 한 범죄자들이 수익금으로 음식점을 매입해 운영한 사실이 밝혀지면,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가게 소유주를 상대로 해당 음식점과 그와 관련된 모든 권리를 몰수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는 해당 범죄자가 사망했더라도 유효하다.
실제로 호주에서는 2005년에 마약 밀수 범죄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한 범죄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의 자전적 소설을 출판하자 그 수익에 대한 보전명령을 내리고 환수 절차까지 밟았다. 박인근 전 원장이 사망했지만 호주 법 시스템을 활용하면 형제복지원을 통해 형성된 박 전 원장 일가의 재산을 어느 정도 추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장을 역임했던 권순철 변호사는 “호주 법 시스템을 활용해 몰수를 요청하고 몰수된 자산을 국가 간 자산 분배 조항을 활용해 국내로 회수하고 피해자들에게 분배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수사기관이 종전의 증거자료들을 다시 면밀히 분석하고 자금추적을 통해 해외재산의 출처를 다시 규명한 뒤 검찰이 구축해 놓은 아시아·태평양 범죄수익환수 네트워크(ARIN-AP) 등을 활용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독립몰수제 도입 필요성도 거론
법조계에서는 나아가 독립몰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독립몰수제는 범죄자가 해외로 도피하는 등의 이유로 법원의 선고가 확정되지 않더라도 독립적으로 몰수 또는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의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을 우선해 그동안 입법에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불법 행위로 취득한 재산을 환수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다 보니 독립몰수제를 도입해 ‘해외’ 등으로 재산이 빠져나갈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실제로 독일은 범죄자가 도주했거나 공소시효가 완료돼 형사적 처벌이 불가능하더라도 형법상 독립적인 몰수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미국은 형사재판과 상관없이 범죄와 연관성이 있는 재산을 상대로 민사소송이 가능하다. 미국이 시행하는 민사몰수는 해당 재산이 범행 준비 단계에서 쓰였거나 실제 범죄 행위로 벌어들인 수익이라는 점 등이 입증되면 사람이 아닌 재산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 수 있다.
스페인 역시 범죄수익 몰수 범위를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2015년 형법을 개정했다. 법원의 유죄 판결 선고가 없더라도 △명백한 불법 재산이 존재하거나 △범죄자가 사망했거나 만성질환 등의 병을 앓고 있어 재판 진행이 어려운 경우 △공소시효가 지나 형벌을 따로 부과할 수 없는 사건의 경우에는 별도로 재산몰수를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갈수록 범죄 수익 환수가 어려워지니 해외에서도 관련 법들이 도입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범죄가 갈수록 치밀해지고, 수익을 숨기기 위한 방법도 진화하고 있는 만큼 ‘불법 행위로 돈을 벌면 언젠가는 다 책임을 지게 된다’는 원칙을 입법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