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각국 정상들의 정치 수 싸움의 간극을 메운 이들이 있다. K-콘텐츠를 대표하는 한류 스타들이었다. 가수 지드래곤과 그룹 방탄소년단의 리더 RM, 군복무 중인 가수 겸 배우 차은우 등이다. 비록 이번 행사의 주인공이라 볼 순 없지만, 그들의 행보는 한국을 찾은 각국 정상뿐만 아니라 전 세계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경주 APEC 정상회의에 대한 글로벌 관심을 높이는 데 크게 일조했다는 평이다.

RM은 “K-팝은 마치 비빔밥과 같다. 서로 다른 요소들이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함께 어우러져 새로운 결과물이 된다”면서 “K-팝의 성공은 특정 문화의 우월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다양성을 존중하고, 세계의 문화를 폭넓게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화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다양한 목소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창조적인 에너지가 폭발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RM은 국경을 초월해 전 세계 각지에 있는 아미(공식 팬덤)을 언급하며 “창작자의 한 사람으로서 문화산업이 APEC의 핵심 의제로 다뤄지는 것을 보며 자부심과 기대감을 느낀다. 문화란 막힘 없이 흘러서 어딘가에 전달되고, 때로는 조화롭게 합쳐져서 K-팝처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이러한 문화의 창조적인 흐름이 전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가장 역동적인 문화적 다양성을 가진 지역”이라고 덧붙였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의상이었다. 지드래곤은 한국 전통 의상인 ‘갓’을 연상시키는 검은색 페도라를 쓰고 무대에 올랐다. ‘갓’은 신을 뜻하는 영어(God) 발음과 함께 주목받으며 글로벌 패션 아이템으로 발돋움했다. 앞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물인 넷플릭스 ‘킹덤’뿐만 아니라 최근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보이그룹 사자보이즈가 갓과 도포를 입고 퍼포먼스를 펼친 장면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드래곤의 무대보다 더욱 눈에 띈 것은, 그의 무대를 즐기는 각국 정상들의 모습이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지한 대화를 주고받던 이들이 지드래곤의 공연이 시작되자 만면에 미소를 띠며 그 광경을 각자의 스마트폰에 담았다. K-팝이 또 다른 국가대표이자, 한국의 미래 먹거리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APEC 참석차 한국을 찾은 유력자들의 남다른 행보는 또 다른 곳에서도 포착됐다.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경제부 장관은 APEC 기간 중인 11월 1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멤버 진의 솔로 팬 콘서트를 관람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에브라르드 장관은 그동안 꾸준히 K-팝에 관심을 보이고 멕시코 공연 유치를 추진해온 인물이다. 그는 환영 만찬 때도 지드래곤의 축하 공연을 본 후 자신의 SNS에 한글로 ‘K-팝의 왕이 바로 너야?’라는 글을 올린 바 있다.
이외에도 한류 스타들은 APEC 정상회의 시작 전부터 이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지드래곤을 비롯해 박찬욱 감독, 걸그룹 아이브 장원영, 안성재 셰프 등이 참여한 홍보 영상은 온라인에서 22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 영상을 비롯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전 세계에 널리 분포된 한류팬들에게 공유되며 경주 APEC 정상회의의 성과를 알리는 데 힘을 보탰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