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 대통령은 11월 4일에 이어 11월 7일에도 조은석 내란특검이 기소한 체포방해 혐의 재판에 출석했다. 윤 전 대통령은 10월 30일과 31일 공판에 이어 11월 들어서 계속해서 법정에 나왔다. 지난 7월 재구속된 이후 한동안 재판에 출석하지 않던 윤 전 대통령은 최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과 체포방해 혐의 재판에 잇따라 출석했다.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 박종준 전 경호처장 등 주요 증인의 법정 증언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방어권을 행사하려는 차원으로 보인다는 게 법조계 풀이다. 윤 전 대통령은 재판부로부터 발언 기회를 얻어 직접 증인신문을 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앞서 윤 전 대통령이 불출석했던 여러 재판은 전해들은 말(전언)을 간접적으로 진술하는 증인들 위주였다. 하지만 최근 재판에 나온 증인들은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대화했거나 중요한 증언을 내놓을 만한 관계자들이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이 직접 출석해 혐의를 적극 소명하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윤 전 대통령이 건강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재판에)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며 “다른 변수가 없으면 계속 출석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의 재판 출석이 즉흥적 결정이 아닌, 법적 대응 등 여러 사안이 고려된 것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윤 전 대통령이 증인들에게 날 선 질문을 던지며 방어권을 적극 행사하는 모습은 TV로도 중계되며 많은 화제를 모았다. 윤 전 대통령은 ‘내란 혐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계엄 당일 국회의사당에서의 장면들과 관련, 11월 3일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과 법정 공방을 벌였다.
곽 전 사령관은 12월 3일에서 4일로 넘어가는 밤 12시 31분쯤 윤 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었다. 윤 전 대통령은 “그때 통화는 딱 40초 했는데, 당시 국회에 도착했나 상황을 물어봤다. 그것만 묻고 답해도 20초가 지나간다”며 “나머지 20초 동안 제가 느닷없이 의결정족수를 얘기하면서 특전사하고 의원 끄집어내라는 이야기를 했는가”라고 물었다.
윤 전 대통령은 직접 곽 전 사령관을 신문하며 “증인은 지금 거두절미하고 ‘문 부수고 들어가 의원 끄집어내라’만 기억한다고 한다”며 “만약에 (그런 지시를) 했다면 이는 중차대한 지시라 (대통령이) 진행상황이 어떻게 됐는지를 한두 번 더 물어봐야 하는 게 아니냐”고도 질문했다.
윤 전 대통령 법정 출석은,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이 추가되고 여론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다. 실제로 곽종근 전 사령관은 11월 3일 공판에서 “(2024년 10월 1일 윤 전 대통령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지목하며) 잡아 오라. 총으로 쏴서라도 죽이겠다”는 작심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즉각 반박했지만 곽 전 사령관의 발언은 큰 파장을 불러왔다.
한 전 대표는 공판 중 발언이 나온 직후 페이스북에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참담하고 비통하다”는 심경을 밝혔다. 그리고는 “10월 1일 무렵은 제가 여당 대표로서 당과 정부의 성공을 위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의료 사태 해결, 김건희 여사 비선에 대한 단속, 김 여사에 대한 민심을 반영한 특별감찰관 임명을 비공개로 요청하고 있을 때였다”고 했다. 한 전 대표의 이런 언급은 자신에 대한 윤 전 대통령 발언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대목이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이제 1년이 다 돼가는 만큼 계엄에 대한 여론의 감정적 대응이 끝나고 차가운 이성적 판단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며 “윤 전 대통령은 검사 출신이어서 법리에 능해 법정에서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한다면 수사기관이 일방적으로 우위에 섰던 판도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재판 보이콧’을 선언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를 소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극적 방어가 아닌 수세적 회피로 맞섰던 박 전 대통령은 결국 중형을 선고받았다. 박 전 대통령을 떠올려 본다면 법적 대응은 물론, 여론 관리 측면에서도 공세 전략이 오히려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7년 3월 파면된 박 전 대통령은 같은 달 31일 구속됐고, 4월 17일 재판에 넘겨졌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은 공소사실이 18가지로 방대한 데다 쟁점도 복잡하다는 이유로 주 4회씩 집중 심리가 이뤄졌다. 게다가 법원은 1심 구속 기간(6개월) 만료를 앞둔 2017년 10월 13일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검찰이 청구한 추가 구속영장까지 발부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법원의 이런 결정에 극단적인 선택으로 맞섰다. 유영하 변호사를 비롯한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 7명 전원은 구속 기간 연장 후 열린 10월 16일 재판에서 재판부 결정을 비판하며 총사퇴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을 열어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재판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면서 수사기관과 사법부를 비판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단 한 차례도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선 변호인을 선임하지도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회고록 ‘어둠을 지나 미래로’에서 당시 느낀 재판부에 대한 분노를 다음과 같이 털어놨다.
“최(순실) 원장과 나를 공동정범으로 묶어서 뇌물죄를 만들려 했던 재판이었다. 이것은 이 재판에서 건드릴 수 없는 원칙이 돼 있었다.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재판정에서 진실을 가릴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역사의 법정에서 이 모든 것에 대한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믿는다.”
국정농단 사건 1심은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벌금 180억 원을 선고했다. 2심은 징역 25년 벌금 200억 원으로 오히려 늘었다. 2021년 1월 14일 대법원에서 박 전 대통령 총 형량은 징역 22년으로 확정됐다. 법조계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재판을 전면 거부하고 나선 게 결국 중형을 부른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왔었다.
수백억 원대 뇌물수수 혐의를 포함해 중대한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의심받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해명하거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대신 사법부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선 게 중형 선고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실제 재판부도 선고를 하면서 이 같은 취지의 판시를 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한 친박계 전직 의원은 “돌이켜보면 최순실 씨와의 공모 관계가 제대로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이를 재판에서 제대로 다투지도 못했다”며 “수세적으로 나가다 보니 걷잡을 수 없는 정치적 파도에 휘말렸고 사법부 판단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윤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특검 수사 검사였던 만큼 이 부분을 주목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이 태세를 강공 모드로 전환한 가운데 국민의힘도 거칠게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은 11월 4일 내란 특검의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항의해 이재명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보이콧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 국회 도착에 맞춰 본청 로텐더홀 계단에서 추 전 원내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비판하는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검은색 마스크와 넥타이에 어두운색 정장을 입고, 가슴에는 ‘자유민주주의’가 적힌 근조 리본을 달았다. 일부 의원들은 이 대통령이 로텐더홀 입구에 도착하자 “범죄자 왔다. 범죄자” “꺼져라” “재판 받으세요”라고 외쳤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시정연설 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제 전쟁이다. 우리가 나서서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 모든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며 “이번 시정연설이 마지막 시정연설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를 전면 부정하는 듯한 언사를 내놓으며 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국민의힘의 이러한 스탠스는 부동산 문제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이 대통령 지지율이 좀처럼 상승세를 보이지 못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대장동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중형 선고가 나와 이 대통령 사법 리스크가 악화하는 양상도 영향을 미쳤다. 강공 전략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력 집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감지된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선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조갑제TV’ 조갑제 대표는 11월 5일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 나와 국민의힘 상복 시위를 두고 “역사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대표는 “그런 행동은 장동혁 체제를 지지하는 일종의 극우 세력을 향한 행동이지, 국민을 위한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박수 안 친 보수가 더 많을 것 아닌가. 중도는 더 말할 것도 없고”라고 했다. 장 대표의 강공책이 산토끼는 물론, 집토끼까지 잃어버릴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