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대전 현대아울렛 화재 이후 ‘위장도급 해소’를 명분으로 철수했던 수급업체 HCDM 인력이 다시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도 일부 인력이 점포 총무팀·본사 전략구매팀 등으로부터 직접적인 지시와 업무 보고 요청을 받으며 근무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형식상 수급사 본사를 통해 업무를 전달받는 구조를 취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원청의 승인이나 협조 없이는 업무 수행이 어려운 종속 형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법 제664조는 도급을 ‘당사자 일방이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하기로 하는 계약’으로 규정한다. 도급인은 수급업체 근로자에게 직접적·상시적인 지휘·명령을 할 수 없으며, 양측은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형식상 도급계약이라도 수급인이 도급인에 종속돼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는 위장도급에 해당한다.
HCDM은 2009년 현대백화점 내부 시설·건설 관리부서가 종업원 지주회사 형태로 분사해 설립된 수급업체다. 설립 이후 현대백화점과 그 계열사 외에는 별도의 수주 실적이 없으며, 외부 발주처나 독립적인 영업 활동도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급비 역시 원청이 회계 자료를 검토해 일방적으로 금액을 확정하는 구조로, 사실상 원청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는 2022년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이와 유사한 구조를 위장도급으로 인정하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도급업체가 독자적인 사업 수행 능력이 없고 원청이 제공한 시설과 인력을 그대로 사용하며 지휘·감독을 받았다면 실질적으로 원청의 근로자로 종속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대표이사 선임·연임 과정에서도 원청의 직접 개입 정황이 포착됐다. 연말마다 원청 관계자들이 직접 도급사를 방문해 대표이사 교체 여부를 통보했고, 이후 곧바로 인사가 확정되는 방식이 반복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원한 한 HCDM 직원은 “원청의 총무담당 상무와 전략구매팀장 등이 다녀간 뒤에는 바로 대표이사의 연임 여부가 정해졌다”며 “원청이 인사에 관여한다는 사실은 사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원청과 계열사, 도급사 간 인사 교류가 상시적으로 이뤄졌다는 정황도 나왔다. 환노위 제출 자료인 ‘소속변경현황표(별지2-5-2)’에 따르면, 회사 간 인력 이동은 원청의 통보에 따라 수시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그린푸드 부장 겸 리바트아이디스트 상무가 HCDM 관리·인테리어 부문 대표이사로 이동했고, HCDM 차장이 현대백화점 수석으로 전보됐다가 다시 HCDM 건설부문 대표이사로 임명된 사례도 있었다. HCDM 소속 직원들이 현대백화점 전략구매팀, 안전팀, 디자인팀으로 옮긴 사례와 인테리어팀 전원이 HCDM에서 리바트아이디스트를 거쳐 다시 HCDM으로 복귀한 이력도 확인됐다. 이는 원청이 도급사의 인사에 직접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으로 사용자성을 입증하는 핵심 근거로 꼽힌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불안·임금삭감 겪는 수급업체 직원들
이 회사에서 위장도급 논란이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 현대백화점 본사 인재개발팀이 하청업체 직원을 대상으로 ‘도급관리 현장점검’이라는 제목의 내부 교육자료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이 일었다. 백화점 조직도와 비상연락망을 파쇄하고, 사훈이나 경영방침이 부착된 경우 이를 제거하라는 지침도 포함돼 있었다. 원청이 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한 지휘·감독 관계를 감추려 한 정황으로 해석되면서 위장도급 의혹이 제기됐다.
위장도급 의혹이 불거진 뒤 원청은 수급사 직원의 사무공간만 분리했을 뿐, 업무 내용이나 근무 환경에는 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2020년에는 HCDM 경영진이 돌연 ‘위장도급 해소’를 명분으로 파견 인력을 본사로 복귀시켰다. 그러나 당시 현대백화점 내부에서 도급비 절감 방안이 보고되면서 인력 철수와 감축이 동시에 추진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근무했다고 밝힌 HCDM 직원은 “철수된 인력은 본사 사무실에 대기 배치됐고 곧 팀이 해체될 것이니 이직을 준비하라는 분위기였다”며 “1~2년 사이 해당 팀 직원의 약 20%가 자발적으로 퇴사했다”고 말했다.
2022년 대전 현대아울렛 화재 이후 안전관리 부실이 지적되자 HCDM 인력이 다시 현장에 배치됐다. 이후 인력 축소가 진행되면서 대부분 점포가 1~2인 근무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일부 점포는 주말 휴식이 어렵고 업무 부담이 가중된 것으로 파악된다. 인력 축소 배치가 재철수를 전제로 한 조치라는 내부 기류도 감지되면서, 직원들 사이에서는 구조조정과 고용 불안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앞서의 HCDM 현 직원은 “고용이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원청이 지급하는 도급비 부족으로 승진이 지연되거나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사례까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점포 근무 인력은 백화점 영업 특성상 연장·휴일 근무가 불가피하지만, 정기적으로 지급되던 연장수당이 중단되고 명목상 근무시간만 단축된 것으로 전해졌다. 도급사 직원들이 사실상 원청의 지휘·감독 아래에서 일하고 있는 만큼 정규직 전환 등 직접 고용을 통해 고용 안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대표변호사·노무사는 “전형적인 사내하청 관행이다. 외부에서 인력을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소사장을 세워 일거리에 따라 인력을 상시 붙잡아두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이런 구조야말로 비정규직이 정규직화 돼야 할 영역이다. 종속된 노동자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마치 소모품처럼 쓰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근로기준법, 파견법, 하도급법, 상법 위반 소지가 복합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더 이상 위장도급이라는 편법 구조로 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임금삭감을 감내하지 않도록 철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고 원청 역시 해당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통해 위법 소지를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HCDM은 현대백화점 사업부였다가 분사해 만들어진 시설유지, 관리 컨설팅업체로 현대백화점과는 지분관계가 전혀 없다”면서 “과거부터 HCDM 직원들이 도급업무 수행을 위해 사업소에 상주 또는 비상주했었는데, 대전 아울렛 화재 이후 안전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사업소별 1~2명씩 현재 상주하고 있지만, 도급업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 원청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이어 “HCDM은 분사한 독립적인 법인으로 원청이 대표이사 등의 인사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 또한 전체 직원 중 40% 정도만 사업소에 상주하고 있고 나머지 직원은 HCDM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또한 업무 성격이 매우 전문적이어서 지휘감독 자체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