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을 통해 별세 소식이 사실이 아니라고 알려지자 연극배우협회는 “정확한 사실 확인을 거치지 못하고 혼란을 드려 가족분들과 배우님을 아끼는 팬 여러분께 고개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리고 얼마 후 윤석화가 세상을 떠났다.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석화는 1975년 연극 ‘꿀맛’을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고인의 마지막 작품은 2023년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 연극 ‘토카타’로 5분가량의 짧은 특별 출연이었다. 50여 년에 이르는 무대 인생이다. 실질적인 마지막 작품은 2022년 7월에 공연된 ‘햄릿’으로 윤석화는 석 달 뒤인 10월에 악성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고 투병 생활에 돌입했다.

손숙, 박정자 등과 연극계를 대표하는 여배우였던 고인의 연극 대표작으로는 ‘신의 아그네스’ ‘햄릿’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이 손꼽힌다. 특히 1983년에 공연된 ‘신의 아그네스’는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을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아그네스 역할을 연기한 윤석화가 ‘아그네스 신드롬’을 불러올 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또한 ‘신데렐라’ ‘아가씨와 건달들’ ‘명성황후’ ‘넌센스’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의 뮤지컬에도 출연했다.
1990년에는 커피 CF에 출연해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예요”라는 카피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또한 ‘우리가 만난 기적’ ‘사임당, 빛의 일기’ ‘날 녹여주오’ 등의 드라마와 ‘레테의 연가’ ‘봄, 눈’ 등의 영화에도 출연했고 오란씨, 부라보콘 등의 CM송도 불렀다.
1994년 5월에는 김석기 전 중앙종합금융 대표와 결혼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남편 김석기 전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당시 월가의 5대 투자은행이었던 베어스턴스 아시아법인 영업본부장을 지내며 ‘월가 최초의 한국인’으로 불렸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장손녀 이미경 CJ 부회장과 결혼해 삼성가 사위가 되기도 했다. 1994년 이미경 부회장과 이혼한 김 전 대표는 같은 해 5월 윤석화와 재혼했다.
결혼 생활에는 큰 위기도 있었다. 주가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던 김 전 대표가 2000년 해외로 떠나 무려 16년 동안 수배 상태로 도피 생활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 자진 귀국한 김 전 대표는 2017년 11월 구속됐다. 2018년 2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지만 같은 해 7월 2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석방됐다.

1999년에는 경영난을 겪던 공연예술계 월간지 ‘객석’을 인수해 발행인이 됐다. 당시 한국경제신문 인터뷰에서 윤석화는 “평소 아끼던 공연전문 월간지가 어쩌면 우리 곁에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척박한 문화환경 속에서 객석마저 사라진다면 10년 뒤의 우리 문화는 얼마나 삭막해지겠습니까”라고 인수 배경을 설명했다. 객석 인수를 위해 윤석화는 25년 동안 연극배우로 활동하며 모은 전 재산 4억 5000만 원을 투자했다.
2002년에는 서울 대학로에 건축가 장윤규와 함께 설치극장 ‘정미소’를 개관했다. 원래 목욕탕으로 쓰이던 3층 건물을 개·보수해 192석 규모의 극장으로 마련된 정미소는 개관공연으로 박정자 배우의 ‘19 그리고 80’을 올린 뒤 윤석화의 ‘신의 아그네스’, ‘위트’ 등을 장기 공연했다. ‘서안화차’, ‘미친극’, ‘미친키스’, ‘자객열전’, ‘노래하듯이 햄릿’ 등이 공연된 정미소는 실험적 연극의 산실로도 유명했다. 그렇지만 만성적인 경영난으로 2019년에 문을 닫았다.
또한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를 연출했고, 뮤지컬 ‘톱 햇’을 제작했다. 윤석화 등 6명의 프로듀서가 함께 제작한 ‘톱 햇’은 영국 로런스 올리비에상을 수상했는데, 한국인이 제작에 참여한 작품으로는 최초의 올리비에상 수상이었다.
윤석화는 ‘신의 아그네스’, ‘하나를 위한 노래’, ‘덕혜옹주’ 등의 연극을 통해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을 네 차례 받았고, 서울연극제 여자 연기상, 이해랑 연극상, 한국뮤지컬대상 연출상, 잡지의 날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등 다양한 상을 받았다. 또한 2005년 대통령표창과 2009년 연극·무용부문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았다.
아들과 딸 두 아이를 입양한 고인은 입양아들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꾸준히 개최하는 등 입양문화 개선에도 앞장서 왔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은 프리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