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22일 장동혁 대표는 필리버스터 연단에 섰다. 헌정사상 1야당 대표로는 처음이다.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내란·외환·반란 범죄 등의 형사 절차에 관한 특례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이 법안은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죄 사건 등을 전담하는 재판부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에 각각 2개 이상 설치하고, 전담재판부 구성과 관련한 사항을 모두 대법원 예규로 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골자다. 국민의힘뿐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위헌 지적이 쏟아졌던 사안이다.
장 대표는 사전에 의원들에게 “필리버스터를 직접 하겠다”는 뜻을 알렸다고 한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이나 시간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상당수 의원들은 “몇 시간 하다가 내려오겠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언론에서도 당대표의 필리버스터가 형식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라며 큰 주목을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의원들 전원이 본회의장에 출석하지 않고, 일부만 나오는 당번제를 그대로 이어갔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장 대표는 24시간을 채우며 역대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을 세웠다. 법안이 상정된 직후인 12월 22일 오전 11시 40분쯤 필리버스터 첫 번째 주자로 나선 장 대표는 밤을 꼬박 새웠다. 24시간 경과로 토론이 강제 종결된 23일 오전 11시 40분까지 총 24시간 발언했다. 이는 필리버스터 최장 기록인 같은 당 박수민 의원의 17시간 12분 기록을 7시간 가까이 넘긴 것이다.
장 대표는 필리버스터 시작 당일 간단히 아침식사를 했고, 발언 이따금씩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타민을 물에 타 마셨다. 약물은 안약과 인후 스프레이가 전부였다고 한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최근 격무로 인해 5kg 넘게 체중이 빠졌는데도 초인적으로 버텼다. 정말 놀랍다”고 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 12월 23일 새벽 5시 3분쯤 장 대표가 역대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을 돌파하자 소속 의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현재 본회의장에서 장 대표의 무제한 토론이 종전 기록을 경신해 18시간 넘게 진행되고 있다”고 알리며 본회의장으로 와서 장 대표에게 힘을 보태달라고 했다. 최장 기록을 경신한 순간 “기록 깼습니다” 외침과 함께 국민의힘 의원들의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장 대표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의 위헌성을 부각하며 법안이 통과되면 이재명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우리는 소리 없는 계엄이 일상이 된 나라에서 살고 있다. 법에 의해 사법부를 장악하고, 법에 의해 국민의 삶을 파괴하고, 법에 의해 국민 인권을 짓밟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소리 없는 계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소속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본회의장 국무위원석에서 밤새 자리를 지키며 장 대표의 무제한 토론을 들어야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 24시간 경과를 알리자 토론을 끝낸 장 대표에게 국민의힘 의원들은 기립 박수를 보낸 뒤 본회의장을 떴다. 장 대표의 필리버스터가 끝난 후 민주당 의원들은 법안 표결에 나섰다.
장 대표를 향해 당내에선 오랜만에 한목소리가 만들어졌다. 필리버스터를 통해 당이 하나로 결집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장 대표가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당을 결집시켰다. 당이 화합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게 아니냐(조배숙)” “당 대표가 주도적으로 먼저 선봉에 서겠다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가 상대해야 될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줬다는 의미에서 (당이) 함께할 수 있는 계기를 완전히 마련한 것(김희정)” 등의 찬사가 나왔다. “우리가 장동혁(강명구)”이라는 구호를 내놓는 의원들도 있었다.
그동안 장 대표에게 비난의 화살을 쏟아냈던 인사들도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친한동훈계인 우재준 최고위원은 “최장시간뿐 아니라 내용 또한 사법부에 대한 애정과 우려가 충분히 전달되는 명연설”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역사적인 정치인들의 단식투쟁에 비견될 만큼의 결기와 책임감이 느껴졌다”고 했다. 양향자 최고위원도 채널A 방송에 출연해 “우리 장동혁 대표가 정말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본인의 존재감뿐만 아니라 당내 결속, ‘우리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친한계인 김근식 서울송파병 당협위원장도 12월 23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한동훈 전 대표가 토크 콘서트를 하는 사이, 장 대표는 24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를 했다”며 “단식 투쟁의 효과를 낸 것으로 볼 만큼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 역시 12월 24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우리 당 장동혁 대표가 위헌적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막기 위해 장장 24시간 동안 혼신의 힘을 쏟았다. 노고 많으셨다”고 했다.
그동안 당내 의원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아왔던 국민의힘 지도부는 화색이 완연한 모습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리더십 논란을 돌파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한 최고위원은 장 대표 필리버스터를 중계한 국민의힘 유튜브가 구독자 50만 명을 돌파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장 대표가 위기를 직접 해결한 부분은 정말 높이 살 부분”이라고 했다.

장 대표는 최근 자신에 대한 당내 비판이 쏟아지자 장 대표는 체중이 빠질 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사퇴 여론까지 불거진 것에 대해서도 힘들어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필리버스터 이후 장 대표는 자신감을 회복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토크콘서트로 세 확장에 나선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 우위를 확보했다는 자체 판단을 장 대표 측은 내놓았다.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인 대구·경북(TK)에서 장 대표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제거했다는 해석도 뒤를 이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12월 24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단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도지사는 이날 “역시 장동혁”이라며 “초인적인 24시간 필리버스터 정말 대단하고 역사를 바꿨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자유 우파의 길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 지사는 또 “초기에는 (장 대표가) 1.5선 대표라는 이유로 주변에 우려도 있었지만 이제는 보수를 대표하는 인재로서 제대로 역할하고 있음이 증명됐다. 이번 필리버스터는 당을 다시 단단하게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도지사는 “바람 빼는 말, 통합을 방해하는 세력은 잘라버리고 장 대표 중심으로 단합해 자신 있게 앞으로 나아가자”고 언급하면서 장 대표를 비판해온 한동훈 전 대표를 겨냥하기도 했다.
장 대표는 조만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등 보수 원로들을 만나는 일정도 잡을 것으로 알려졌다. 명실상부한 보수 리더로 인정받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장 대표 측으로 알려진 한 국민의힘 인사는 “새해 인사 차원에서 우리 당이 배출한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라면서 “보수 진영에서 장동혁의 이름을 되새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25년 12월 18일 서울 강남구 한 식당에서 국민의힘 몇몇 의원들과 만나 당내 갈등을 우려하며 힘을 합쳐 이재명 정권에 맞서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러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장 대표를 중심으로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잘 되는 집안은 형제들끼리 싸우다가도 밖에서 강도가 들어오면 물리친다. 지금은 잘 뭉쳐서 힘을 모아야 한다”면서 장 대표를 응원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이 자리에는 주호영 나경원 윤한홍 박정하 김대식 정연욱 의원 등 20명이 넘는 정치인들이 참석했는데 주호영 윤한홍 의원 등은 최근 장 대표에게 쓴소리를 한 바 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장 대표에게 닥친 비판 공세는 장 대표에게 시련을 줬지만 필리버스터를 통해 정면돌파하면서 이 어려움이 이제는 약이 됐을 것”이라며 “한동훈 전 대표를 견제하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의 연대나 유승민 전 의원 등을 품는 전술 등을 통해 리더십 공고화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동혁 대표는 12월 25일 당 정강·정책 1호에 명문화된 ‘기본소득’을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가에선 이를 두고 리더십을 재건한 장 대표가 기존의 우클릭 기조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장 대표는 이날 서울 사랑의교회 성탄축하 예배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정강·정책의 기본소득 문구 삭제를 검토 중이냐’는 질문에 “국민의힘이 나아갈 방향과 보수 정당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말씀드리면서 필요하다면 정강·정책과 당명 개정도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장 대표가 언급한 정강·정책은 미래통합당 시절인 2020년 9월 김종인 비상대책위 때 만들어진 것이다. 1조 1항에 ‘국가는 국민 개인이 기본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 뒷받침…’이라고 돼 있다. 2022년 유승민 전 의원이 기본소득은 민주당 기조에 가깝다며 “기본소득을 폐기하는 정강·정책 개정, 당장 해야 한다”고 촉구했었다.
친한계 쪽에서 24시간 필리버스터를 칭찬하며 화해의 손짓을 하는 데 대해서도 장 대표는 “필리버스터의 절박함과 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한 전 대표 가족 연루 의혹이 있는 이른바 ‘당원게시판(당게) 사태’에 대한 당무감사로 내홍이 격화한 상태에서 친한계가 화해로 해석될 메시지를 연이어 냈지만, 장 대표는 온도차를 보인 셈이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장 대표가 자신감을 회복한 만큼 당원게시판 사태나 당원 비중을 높인 지방선거 경선룰에 대해 강경책을 쓸 가능성이 커졌다”며 “지방선거라는 승부처가 있는 터라 갈등 관리를 하지 않으면 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병준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