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동혁 대표의 단독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는 반향이 컸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에 상정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저지를 위해 12월 22일부터 24시간 필리버스터에 섰고 필리버스터에 대한 여러 국회 기록을 갈아치웠다. 정당 대표가 직접 필리버스터에 나선 것이나 24시간도 모두 최초였다.
장 대표에 대한 흔들기가 멈춘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고, 그가 외쳐온 ‘보수 결집’으로 실제 이어졌다는 해석도 나왔다. 장 대표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당일부터 이튿날까지 국민의힘 공식 유튜브 채널인 ‘국민의힘TV’ 구독자 수는 50만 명을 돌파했다.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 수도 최근 1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비포장도로를 나와 고속도로로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오자 자신감을 회복한 듯 장 대표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는 12월 28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자강론’을 재확인했다. 한동훈 전 대표를 품고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도 손을 잡는 이른바 ‘장한석 연대’에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장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해선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지만, 왜 '장한석'이 붙는지 모르겠다.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 문제를 풀어갈지를 왜 연대라고 이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당내 혁신과 변화,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는 사이 ‘이혜훈 인선’이 발표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대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휴일에 예상치 못한 강펀치를 대통령실로부터 얻어맞은 국민의힘은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이 전 의원을 제명 조치했다. 긴급한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서면으로 안건을 상정하고 최고위원들에게 유선으로 찬반 여부를 물어 가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의 의원들과 당직자는 이혜훈 후보자에 대해 격앙했다. 제명 직후 나온 국민의힘 보도자료에는 이 같은 기류가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국민의힘은 “이혜훈 전 의원은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이재명 정부의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함으로써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을 남기고 국민과 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 행위를 했다”고했다.
또 “국무위원 내정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선출직 공직자 평가를 실시하는 등 당무 행위를 지속함으로써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자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태로 당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당무 운영을 고의적으로 방해했다”고 비판했다.
동시에 경계심도 발동됐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의 무차별적인 사람 빼가기가 나올 가능성 때문이다. 실제 부산 출신의 조경태 의원, 김세연 전 의원 등이 해양수산부 장관에 발탁될 수 있다는 소문이 나왔다. 국민의힘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홍준표 전 시장이 요직에 임명될 것이란 말까지 들렸다.
이혜훈 인선은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학연으로 보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많다. 이재명 대통령 측근인 김 실장이 서울대 경제학과 1년 후배인 이 후보자를 추천했을 가능성이 크고 이 대통령이 이를 전격 수용했다는 게 내부 분석이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김 실장이 이 후보자 능력을 검증해준 데다 제1야당에 예상치 못한 펀치까지 먹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기꺼이 이 카드를 받았다는 게 복수의 국민의힘 의원들 전언이다.
이 대통령 용병술은 유승민 전 의원 입에서 다시 확인됐다. 유 전 의원은 1월 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지난 6·3 대선 전에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측으로부터 정권 출범 시 총리직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확인해줬다. 유 전 의원은 이혜훈 후보자에 대해서도 “이걸 통합, 연정, 협치라는 거창한 말을 붙일 일이 아니다”라며 “보수를 위축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했다.
장동혁 대표는 ‘이혜훈 사태’를 자신의 강성 기조를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그는 12월 29일 전남 해남군 현장 시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당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국면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그동안 보수 가치를 확고히 재정립하지 못하고 당성이 부족하거나 해당 행위를 하는 인사들에 대해 제대로 조치하지 못했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장 대표는 새해 첫날인 1월 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서도 “많은 분이 6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선거를 생각하고 선거 승리를 생각하면 선거에서 패하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중도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는 당내 일부 의견을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이혜훈 인사는 장 대표의 ‘선 결집’ 주장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선 이혜훈 후보자에 대해 배신자 프레임이 팽배하다. ‘윤 어게인’과 같은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이를 노리고 이혜훈 후보자를 임명한 것이란 얘기가 많다”고 했다.

12월 29일 장 대표의 ‘당성 우선, 배신자 조치’ 의견이 나온 후 한동훈 전 대표 당원게시판 조사 결과가 뒤따라 나왔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12월 30일 이른바 ‘당게 사태’와 관련해 한동훈 전 대표 책임을 확인했다. 당초 국민의힘 일각에선 “당게 사태를 그냥 묻어둘 것”이란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집안싸움을 할 때가 아니라는 주장이 퍼지면서다. 하지만 당무감사위원회는 한 전 대표를 바로 때리는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그동안 침묵하던 한 전 대표는 조사결과가 나온 바로 그날 SBS 라디오 ‘주영진의 뉴스직격’에 출연, “제 가족들이 익명이 보장된 당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인 사설과 칼럼을 올린 사실이 있다는 것을 제가 나중에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글이 작성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고 했지만 당게 사태에 자신의 가족이 연루됐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한 전 대표는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고 생각한 듯 사과를 하지 않은 채 역공에 들어갔다. 한 전 대표는 12월 31일 페이스북에 “어제 이호선 씨(당무감사위원장)는 게시물 명의자를 조작해 발표했다”며 “민주당과 싸워야 할 때 이렇게 조작까지 하면서 민주당을 도와주는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발끈했다.
한 전 대표는 “저는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이미 공식적으로 확인돼 있어 ‘동명이인 한동훈’ 명의 글은 바로 무관하다는 것이 탄로 날 테니, 동명이인 한동훈 명의의 상대적으로 수위 높은 게시물들을 가족 명의로 (가족들이 한 것처럼) 조작한 것”이라며 “이호선 씨의 허위사실 유포를 통한 의도적인 흠집 내기 정치공작에 대해 민형사상 법적조치로 단호히 대처하겠다”고도 했다.
친한계의 엄호 사격도 쏟아졌다. “당무감사위원장이란 중요 보직자가 눈치도 없이 당의 중차대한 투쟁의 순간마다 끼어들어 자기 정치의 퍼포먼스를 하는 바람에 당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쯧쯧 멍청하기가(배현진 의원)” “제1야당이라는 공당의 당무감사 결과가 이렇듯 허술하고 엉터리일 줄은 미처 몰랐다(박정하 의원)” “장 대표가 공작정치 책임져야 한다(김종혁 전 최고위원)” “음모론에 빠지던 자들이 날조한 내용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박상수 전 대변인)” 등의 반격이 당 지도부와 당무감사위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자 당권파도 친한계를 때렸다. 한 전 대표의 감사 결과과 계파 내홍으로 번질 것으로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장 대표 측근으로 꼽히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같이 가기 쉽지 않다”고 했다. 지도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김용태 의원조차 “한 전 대표가 과거 이 문제가 (처음) 거론됐을 때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넘어갔으면 됐을 문제다. 법적조치 등을 중언부언 말씀하시는 태도는 적절치 않고 낯부끄러운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한 전 대표로부터 일격을 받은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은 블로그에 “위원회의 공적 행위를 위원장 개인에 대한 형사고소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공사의 구분이 안 되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지금 민주당이 김병기 사퇴, 공천헌금 등으로 쑥대밭이 됐는데 그 반사이익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전현 대표들이 제발 정신을 차리고 (지방)선거만 생각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 간 싸움이 커지자 당내에서는 2018년 지방선거 참패의 악몽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당시 텃밭인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졌다. 1월 1일자로 발표된 대부분의 신년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패할 것이란 결과치가 나온 것도 들끓는 우려에 기름을 부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월 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민의힘 지도부를 향해 12·3 비상계엄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6·3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범보수 대통합을 거듭 촉구했다. 오 시장은 같은 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이제 계엄으로부터 당이 완전히 절연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며 “그동안 당 대표께서 기다려달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이제 해가 바뀐 만큼 심기일전해서 적어도 계엄을 합리화하거나 옹호하는 듯한 발언은 더는 우리 당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당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며 범보수 대통합에 나서야한다고 했다. 한동훈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과의 선거 연대를 촉구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진다. 한 전 대표의 당원게시판 문제도 덮어야 한다는 의미 역시 담긴 것으로 해석됐다. 장 대표의 우클릭 기조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오 시장의 메시지는 국민의힘 내부를 달구는 형국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국민의힘은 선거를 얕보다가 민심의 회초리를 연거푸 맞고 쓰러졌는데 또 다시 같은 길을 갈까봐 걱정”이라며 “집안 식구끼리 싸울 때 싸우더라도 선거를 앞두고는 일단 뭉쳐야 한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병준 언론인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