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티스트컴퍼니는 입장문을 통해 "안성기 배우는 연기에 대한 깊은 사명감과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대한민국의 대중문화 역사와 함께 해 온 분이었다"며 "그의 연기는 언제나 사람과 삶을 향해 있었으며 수많은 작품을 통해 시대와 세대를 넘어 깊은 울림과 위로를 전해주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안성기 배우는 배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책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며 선후배 예술인들과 현장을 존중해 온 진정한 의미의 '국민배우'였다"며 "갑작스러운 비보에 깊은 슬픔을 느끼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 분들께 진심 어린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1952년 1월 1일 대구에서 태어난 안성기는 여섯 살이던 1957년 고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하며 아역 배우로 주목받았다. 어린 나이에 카메라를 만난 그는 곧바로 '천상 배우'로서의 재능을 드러냈다. 8세에 출연한 '10대의 반항'(1959)으로 문교부 우수국산영화상 소년연기상과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9세엔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사에 남을 '작품 속 얼굴'로 대중들에게 뚜렷이 각인됐다.

아역 배우가 공백기를 넘어 성인 연기자로 다시 자리잡는다는 것은 그 당시에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안성기는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을 기점으로 안착에 성공하며 1980년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이후 '고래사냥'(1984), '투캅스'(1993), '태백산맥'(1994), '실미도'(2003), '라디오스타'(2006), '화려한 휴가'(2007), '부러진 화살'(2012) 등 굵직한 작품을 통해 세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행보를 이어가며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장 최근 출연작은 '한산: 용의 출현'(2022), '노량: 죽음의 바다'(2023·특별출연)으로 어영담 역할을 맡았다.
안성기가 출연한 작품은 그의 연기 인생 69년 동안 원본이 유실된 작품을 포함해 약 200편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영화가 '예술'에서 '산업'으로 성장하고, 시대와 세대가 바뀌며 관객 층이 변화하는 동안에도 그는 현장의 선봉에 있었다. 주연과 조연의 경계를 두지 않고 늘 같은 태도로 연기를 대하는 그는 많은 영화인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그의 족적은 화려한 수상 경력으로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안성기는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모두 석권한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 배우로 기록된다. 특히 백상예술대상 8회, 대종상영화제 5회 수상으로 남우주연상 최다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는 동시에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서로 다른 세대에 걸쳐 주연상을 받은 유일한 배우라는 이력도 가지고 있다.

2017년에는 데뷔 60주년을 맞아 영화계에서 안성기의 영화 인생을 돌아보는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이를 기념한 인터뷰에서 안성기는 앞으로 배우로서의 꿈을 묻는 질문에 "오래 하는 게 꿈이다. 나이는 들어도 에너지가 느껴지면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노쇠한 느낌을 준다면 '이제 쉬었으면 좋겠다'란 얘기가 나올 것 같은데, 나이가 분명 많은데도 힘이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거나 제가 실제 그렇다면 오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족적이 한 배우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후배 영화인들의 앞길을 닦아주는 밑거름이 되길 바랐다. 6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안성기는 "배우로서 조금 더 오래 해야겠다는 것에 이유가 있다면 뒤에 따라올 배우들이 '아, 저 정도까지는 열심히 하면 할 수 있겠구나'라고 정년을 길게 느끼게 해주는 역할이기 때문"이라며 "나 자신을 위해서나 후배들을 위해서나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그의 이름 앞에 붙을 '국민배우'라는 호칭에 대해서는 "팬클럽이 없으니 국민이 팬인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안성기는 "'국민배우'라고 하는 건 그렇게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의 표시, 애정의 표시 아닌가 싶다. 굳이 벗어날 필요 없이 착실하게 배우로서, 작품으로서 보여주는 모습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저와 잘 맞아 떨어지는 별명이 아닌가 싶다"며 유쾌하게 답했다.
고인은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1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추적 관찰 과정에서 암이 재발하면서 최근까지 치료에 전념해 왔다. 투병 생활 중에도 2023년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개막식,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 등에 참석해 대중들과 마주하며 복귀 의지를 밝혀 왔다. 연기 70주년을 건강한 모습으로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이 이어져 왔던 만큼, 그의 비보에 영화계는 물론 그를 사랑한 대중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된다. 발인은 1월 9일 오전 6시, 장지는 양평별그리다다.
장례는 (재)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사)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진행되며 명예장례위원장 신영균, 배창호 감독, 한국영화배우협회 이갑성 이사장,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 신언식, 한국영화인협회 양윤호 이사장 등 4인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아 장례를 진행한다. 같은 소속사의 배우 이정재, 정우성 등 영화인 후배들의 운구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예정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