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CJ ENM,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등 각 투자·배급사는 연초 일제히 공개하던 올해의 라인업도 대대적으로 알리지 못하는 처지다. 개봉 편수가 현저히 줄어든 탓이다. 위기감이 고조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관객을 찾아오는 기대작은 있다. 촬영을 마치고 올해 개봉을 준비 중인 한국 영화 가운데 눈에 띄는 작품들을 골라 봤다. 오랜 기간 관객과 신뢰를 쌓은 유명 감독들의 신작부터 실화 사건을 극화한 시대극, 전 세대를 아우르는 사극이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지킨다.
#설 명절 정조준 류승완 감독 ‘휴민트’·유해진 ‘왕과 사는 남자’

2월 11일 개봉하는 ‘휴민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무대로 국제 범죄를 추적하는 국정원 블랙 요원 조 과장(조인성 분)과 북한 보위성 조정 박건(박정민 분), 이들을 경계하는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 분), 조 과장을 돕는 북한 식당의 종업원 채선화(신세경 분)가 얽히는 이야기다. 2024년 추석에 ‘베테랑2’로 700만 흥행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의 3년 만의 신작이자, 2013년 하정우 주연의 ‘베를린’ 이후 내놓는 첩보 액션 장르로 주목받는다. 라트비아 로케이션을 통해 이국 땅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첩보전을 완성했다.
‘휴민트’보다 일주일 먼저 개봉하는 ‘왕과 사는 남자’는 역사에 상상력을 더했다. 숙부 수양대군에 밀려 폐위된 어린 왕 단종(박지훈 분)이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에서 겪는 이야기다. 마을 촌장(유해진 분)과 이곳으로 유배온 단종 사이에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진다. 계유정난이 아닌 ‘그 이후’의 이야기에 주목해 경쟁력을 갖췄다. 재치 넘치는 유머를 갖춘 장항준 감독이 연출해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가 완성됐다. 유지태와 전미도, 이준혁 등도 출연한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암살자(들)’과 ‘몽유도원도’
역사와 실화 사건은 늘 영화 소재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택시운전사’부터 ‘서울의 봄’까지 근현대사의 실화를 극화한 영화들은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꾸준히 흥행 성과를 낸다. 그 흐름은 올해도 이어진다.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일어난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극화한 작품. 박정희 대통령의 경축사 도중 객석 재일 한국인 2세 문세광의 총격으로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8·15 저격 사건에 상상력을 더한 서스펜스 영화다. 유해진이 사건을 목격한 중부경찰서 경감, 박해일은 위험과 압박에도 수사 과정의 의문을 파헤치는 신문사 사회부장, 이민호는 패기 넘치는 사회부 신입 기자로 호흡을 맞춘다. ‘서울의 밤’부터 ‘남산의 부장들’까지 한국 현대사에 주목한 이야기를 꾸준히 내놓는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의 작품이란 점에서도 기대가 집중된다.
‘몽유도원도’는 세종대왕의 두 아들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상향을 꿈꾸면서 갈등하는 이야기다. 당대 예술가인 안평대군이 꿈에 본 낙원을 화가 안견에게 그리게 한 그림 몽유도원도가 완성된 이후 증폭하는 형제의 갈등을 다룬다. 그림을 통해 두 왕자의 대립과 야심, 엇갈린 운명을 다루는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배우 김남길이 수양대군, 박보검이 안평대군으로 호흡을 맞춘다. ‘택시운전사’의 장훈 감독이 연출했다.
#칸 국제영화제 노리는 나홍진, 이창동 감독의 신작

이창동 감독이 처음 넷플릭스와 손잡고 만든 영화 ‘가능한 사랑’도 빼놓을 수 없는 기대작이다.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두 부부가 서로의 삶에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전도연과 설경구, 조인성과 조여정이 부부로 만났다. 특히 전도연과 설경구는 이창동 감독과 ‘밀양’ ‘박하사탕’ ‘오아시스’ 등 작품을 함께했고, 조인성과 조여정은 감독과 첫 만남이다. 그동안 극장 개봉 영화만 연출한 이 감독이 글로벌 OTT를 통해 공개하는 첫 번째 작품이란 점에서도 궁금증을 일으킨다. ‘호프’와 함께 칸 국제영화제 초청 가능성이 가장 높게 예측되는 작품이다.
#이 조합 실화? 최민식과 한소희 ‘인턴’
올해 개봉하는 한국 영화 주연 캐스팅에서 가장 돋보이는 주인공은 최민식과 한소희다. 영화 ‘인턴’은 성공한 패션회사의 CEO 선우(한소희 분)가 연륜과 지혜를 지닌 은퇴자 기호(최민식 분)를 인턴으로 채용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로버트 드니로와 앤 해서웨이가 주연해 2015년 흥행에 성공한 할리우드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유행에 민감한 패션회사에 시니어 인턴으로 채용된 기호는 한참 어린 직원들과 일하게 됐지만, 20대는 알 수 없는 노련한 삶의 지혜를 앞세워 회사에 닥친 위기를 돌파한다. 선우와 기호의 세대와 성별을 뛰어넘는 우정의 이야기를 내세웠다. 최민식은 1000만 흥행작 ‘파묘’에 이어 색다른 변신에 나섰고, 한소희는 올해 ‘프로젝트 Y’에 이어 ‘인턴’까지 쉼 없는 스크린 활동을 이어간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