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이 점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대표 취임 이후 공개 석상에서 비상계엄과 관련해 직접적으로 당의 ‘잘못’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사과는 단순한 입장 표명을 넘어 당의 체질 개선안과 함께 제시됐다. 장 대표는 당명 개정 검토와 청년 의무공천 확대 등을 언급하며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로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는 계엄이라는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쇄신 이슈로 정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치솟은 지방선거 위기론…당내 현실론·여론 압박의 교차점
장 대표 사과의 구체적 내용도 주목되지만, 그 ‘시점’도 중요하다. 6·3 지방선거를 불과 5개월 앞둔 시점에서 나온 이번 메시지는 당 안팎의 복합적인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다.
무엇보다 여론 지형의 경고음에 대한 반응으로 풀이된다. 연초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에 열세를 보였다. 특히 수도권과 중도층 이탈이 고착화되는 흐름이 뚜렷해지면서, 계엄 이슈에 대한 명확한 정리 없이는 선거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지도부 내에서 공유됐다.
당내에서 확산 중인 현실론도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계엄 사과 요구를 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의 공세로 치부하던 기류에 변화가 생기며, 최근에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고비’라는 공감대가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수도권지역 출마 희망자들을 중심으로, 계엄 프레임에 갇힌 채로는 유권자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현장의 절박함이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이재명 정부 초반 1년에 대한 심판 성격도 있다. 범여권에서 계엄 문제를 선거 전략의 핵심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장 대표가 선제적 사과를 통해 공세의 명분을 약화시키려 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법조인 출신인 장 대표는 계엄 직후 취임 초기까지 계엄에 대해 주로 ‘신중론’과 ‘법리적 방어’에 치중하는 인상이었다. 계엄 사과 요구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입장을 밝혔다”, “반복되는 질문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회피하는 등 거리두기했다.
한두 달 전 발언에서도 비상계엄의 주된 원인을 민주당에 돌렸지만, 사태를 막지 못한 당의 책임도 짚어 분위기 변화가 감지됐다. 장 대표는 지난해 11월 28일 대구에서 열린 민생회복 법치수호 국민대회에서 “민주당의 의회 폭거와 국정 방해가 계엄을 불러왔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들께 혼란과 고통을 드렸다”며 “저는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1년을 맞은 지난해 12월 3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고 썼다. 한편 이달(1월) 2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는 “계엄 문제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며 “그런데도 계속해서 우리 스스로 과거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에 안타까움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혁신당의 냉소…“선거용 면피, 진정성 없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은 장 대표의 사과에 대해 즉각 ‘평가절하’에 나섰다. 문금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장 대표의 사과 역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며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 라는 표현은 헌정 질서 유린을 단순한 판단 착오로 축소하는 언어적 기만이다. 이는 사과가 아니라 책임 회피이며, 반성이 아니라 계산된 면피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제 와 가장 먼저 꺼내 든 카드가 당명 변경이라면, 이는 혁신이 아니라 국민의 기억을 지우고 역사를 덮으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범여권은 ‘진정성 검증’이란 프레임으로 계엄 관련 국민의힘 메시지에 제동을 걸면서, 계엄 이슈를 지방선거 당일까지 끌고 갈 가능성이 있다.
#내부 강성 지지층 반발 변수…‘추가 사과’ 조절할 듯
장 대표의 이번 사과가 국민의힘의 일관된 공식 입장으로 안착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대표의 결단에도 불구하고 당내에서 사과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한동안 남아있을 수 있다.
향후 추가 사과 여부나 메시지 수위 조절은 여론의 흐름에 달렸다. 사과 이후 지지율 반등이 미미하거나 수도권 선거 판세가 호전되지 않을 경우, 더 구체적인 책임 인식이나 재발 방지책이 요구될 수 있다.
반면 강성 지지층의 반발이 커질 경우 지도부는 이번 사과를 최종선으로 삼고 쇄신 정책에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장 대표의 승부수가 민심의 응답을 얻을 수 있을지, 향후 정국 주도권의 향배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