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주춧돌 멤버인 이용섭 의원과 정책 모임을 준비 중인 최재천·김성곤 의원. 일요신문 DB |
대선 패배 이후 민주통합당 내부는 거의 ‘패닉’에 가까운 상태다. 새로운 원내 지도부와 비대위까지 꾸려졌지만, 좀처럼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최근 당 내부에서 서서히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잇따라 ‘정책모임’이 꾸려지면서 새로운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는 것.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앞으로 다가올 전당대회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행해지는 의원들 저마다의 ‘새판 짜기 워밍업’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지난 1월 23일(수) 오전. 국회에서는 최근 새롭게 꾸려진 민주통합당 정책모임 ‘주춧돌’의 정례 조찬모임이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당직자는 “오늘은 쌍용차 문제와 관련해 토론이 진행됐다. 그런데 정작 얘기됐던 것은 당 내부의 대응방식과 시스템 문제였다. 그동안 당 지도부가 쌍용차와 같은 노동문제에 대해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그저 현장 방문에만 급급했다는 비판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에 참여한 의원들 상당수가 개인적으로 문제의식은 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많이 털어놓더라. 특히 당내 관례적인 시스템이 너무 많다는 불만사항이 쏟아져 놔왔다. 오히려 새누리당이 더 혁신적이고 세련된 경우가 많은 데 반해, 민주당은 개선조차 안 되고 있다는 얘기였다”고 덧붙였다.
주춧돌은 민주통합당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난 1월 9일 결성됐다. 이날 모임은 세 번째 만남이었다. 여기에 참여한 의원들은 초선 박수현 김성주 박완주 의원 등과 재선 김상희 민병두 의원 등 모두 22명이다. 모두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거나 비교적 계파색이 옅은 초· 재선 의원들이다. 소위 말하는 ‘중립지대’ 인사들인 셈이다.
주춧돌 외에도 민주통합당 내 비주류 중립지대 인사들 사이에서 최근 새로운 정책모임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재선인 최재천 의원은 법조인 등 전문직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책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최재천 의원 측은 “최근 뜻이 있는 의원 몇 분과 자리를 함께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비공식이라 밝힐 단계는 아니다”며 조심스런 답변을 내놨다.
비주류에 가까운 김성곤 의원 역시 당내 중도성향의 의원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준비 중이다. 김 의원 측은 “1월 24일 조찬모임을 가졌다. 명단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현역 의원 열다섯 분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는 대략적인 대선 평가와 함께 당 내에서 중도적인 목소리가 꼭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아직 조직 운영방향이나 명칭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향후 몇 차례 더 모임을 가질 것이다”고 밝혔다.
앞서의 당직자는 “최근 들어 당 내에서 중도와 중립을 표방하는 의원들끼리 정책모임을 만들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심지어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는 한 번 합쳐보자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고 말했다. 최근 당 안팎에서는 민주통합당 내 중립지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본격적인 ‘지각변동’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민주당 보좌진 출신의 한 정치평론가는 “비노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곧 다가올 전당대회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의원들 자신의 입지와 목소리를 강화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다만 그 이전 DY계 같은 민주당 내 계파 모임과는 성격이 다르다. 모임들 모두 하나같이 좌장급 인사가 없다. 이 때문에 결속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존 계파 모임처럼 특정 좌장을 중심으로 함께 나서기보다는 그저 ‘목소리’를 모아 개개인의 입지를 강화시키겠다는 수준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만, 이 모임 뒤에서 김한길, 정세균 등 지도부급 인사들이 보이지 않은 ‘핸들링’을 하고 있을 수는 있다. 이들이 앞에 나서면 여전히 건재한 친노 세력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숨어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계파 모임 뒤에 있다가 언젠가 때가 되면 ‘한 방’을 날리겠다는 ‘노림수’가 있을 수 있다. 이 점은 좀 더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결성했거나 결성을 준비하고 있는 정책모임 인사들은 외부에서 비춰지고 있는 이러한 정치적 의도에 대해 무척 경계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정책모임에 참여하는 한 의원의 보좌진은 “현재로서는 세력화의 기반보다는 위기에 처한 당 진로 고민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러한 고민이 진행되다보면 전당대회를 앞두고 세력화 기반을 다지는 단계를 밟을 수는 있다. 현재는 그 전 단계가 아닌가 싶다”며 넌지시 정치적 의도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진행 중인 중립지대의 ‘변혁’ 움직임은 향후 민주당의 권력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하지만 세력화의 깃발을 누가 드느냐에 따라 소멸과 확대의 기로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탈계파와 정책연구 추구”
―‘주춧돌’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많다. 앞으로 정례 모임이 되는 것인가.
▲매주 수요일마다 의원들이 직접 돌아가면서 발제를 하고 토론을 하기로 했다. 특히 마지막 주 모임은 외부 인사를 초청해 집중토론을 할 예정이다. 오는 1월 29일에는 윤여준 전 장관을 초청해 ‘한국정치가 나아갈 길’이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진행한다.
―탈계파를 주장하고 있지만 외부에서는 ‘주춧돌’ 조직 자체가 새로운 계파형성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정치라는 게 사실 그렇지 않나 싶다. 외부에서는 분명 그런 시선이 존재한다. 탈계파 자체가 계파라고. 반대로 난 그런 물음을 던지고 싶다. 과연 ‘계파’라는 게 정말 있는 건지. 엄밀히 따지면 타파할 계파는 없다. 외부에서 네이밍 하는 것이다. 다만 국민들은 ‘계파’라는 존재를 인정한다. 우리 모임은 거기에 눈높이를 맞춰 인정하고 그것마저 없애자는 것이다. 우리 모임은 탈계파와 혁신적 정책연구를 추구하지만, 방점은 앞이 아니라 뒤에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게 되나.
▲정책적 연구가 중심이다. 당 정체성을 담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주제를 나열해 토론하고 대표적 의견을 정리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당에 제안 및 공급하게 된다. 심지어 새누리당과의 공통공약이 있다면, 제안할 수도 있고 현재 대선공약특별위가 구성된 것처럼 지난 대선에 내세운 우리 공약을 다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주춧돌이 생각하는 혁신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혁신이 아니다. 반성도 무조건 절하고 무릎 꿇는 게 반성이 아니다. 혁신의 방법은 누구나 다 알지만 안 할 뿐이다. 기존의 것을 잘 닦고 기름 치는 게 혁신이다. 지난 대선공약을 잘 다듬고 만들어 나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