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2분과 간사를 맡은 이현재 의원이 초선 의원들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지난 1월 24일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차기 정부 첫 국무총리로 내정되면서 인수위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 출범 초반 “인수위는 인수위일 뿐, 공직 진출과 연계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박근혜 당선인의 뜻이 많이 희석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봉인이 풀렸다”며 추가 인선에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다. 그간 실무에 매달렸던 인수위원과 그 밑의 전문·실무위원들은 ‘청와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들)이 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늘공’(늘 공무원인 사람들)들의 정치권 줄 대기도 기승을 부릴 조짐이다. 인수위가 들어선 삼청동 금융연수원 별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흡사 ‘이공계 연구실’ 같았던 인수위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월 11일 외부 전문가 35명이 인수위에 추가 인선되면서부터였다. 대학교수·연구원·변호사 등 전문가로 이뤄진 35명의 전문위원들은 대부분 대선 때 박근혜 당선인을 위해 활약한 인사들이다. 35명 가운데 14명은 새누리당 선대위의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 참여한 인사들이었고 박 당선인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출신도 14명이나 됐다. 이미 인수위에 입성했던 위원들이 “추가 인선은 논공행상에 가깝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추가 인선을 통해 정권 이양 작업에 한층 탄력이 붙었다는 세간의 평가에도 인수위 내부에서는 “인수위는 철저히 실무 작업과 언론 대응만을 강요받고 있다. 실제 주요한 결정 권한은 통의동에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 통의동에 마련된 당선인 집무실·비서실 등은 인수위 출입기자들조차 사전 약속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 이 때문에 조직개편 및 차기 인선 작업이 인수위가 아닌 당선인 비서실과 비선라인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의심이 끊이지 않는다.
이와 함께 인수위에 새누리당 선대위 핵심 인사였던 김광두 김무성 김종인 안대희 최경환 권영세 등 친박계 인사들이 중용되지 않았던 것도 인수위의 권력집중화를 막으려는 움직임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차기 국무총리로 깜짝 지명되자 다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인수위에 관여하는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많은 인수위원들이 ‘제2의 김용준’이 되기를 바라고 있겠지만 인수위 안에서도 엄연히 ‘급’이 존재한다. 기자실이 있는 금융연수원 본관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위원들은 그만큼 중량감이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라고 덧붙였다. 10명 중 7~8명이 공직에 진출했던 과거 인수위에 비해 이번 인수위는 대거 공직 진출이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 때문에 인수위 내부에서는 이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세력 간 암투도 생겨날 조짐이다. 앞서의 당직자는 “아무리 작은 곳이라도 힘이 주어지면 그 힘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모이고 또 갈리게 되는 것”이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업무와 무관하게 끼리끼리 모이는 분위기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실제 인수위 안에는 어떤 그룹이 맹위를 떨치고 있을까. 단연 서울대 출신 인수위원들이다. 25명의 인수위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3명이 서울대 출신이고, 이 중 현직 교수도 4명이다. 특히 고용복지분과 간사를 맡은 최성재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를 ‘승계서열 1순위’로 꼽는 이들이 많다.
▲ 고용복지분과 간사를 맡은 최성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가 ‘승계 서열 1순위’로 꼽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최 교수는 인수위 명단 발표 당시 ‘정영사’ 1기 출신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정영사는 1968년 박정희 정권 당시 서울대에 세워진 기숙사로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당시 정영사는 학업성적이 뛰어난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최 간사를 비롯해 정운찬 전 총리, 문용린 서울시 교육감, 그리고 헌법재판소장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른 이동흡 후보자 등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정영사 출신들은 ‘정영회’라는 모임을 통해 긴밀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데 박근혜 당선인 역시 한나라당 대표 시절부터 정영회 회원 모임에 비정기적으로 참여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 외에도 최 교수는 박근혜 당선인이 정치에 입문했을 때부터 교류를 가지며 대선 때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다방면으로 인연을 맺어 왔다.
또 다른 인수위 핵심 축으로는 다섯 명의 초선 의원들이 거론된다. 이들은 전면에 나서기보다 주로 당선인 측과 인수위를 연결하고 중간에서 대선 공약 및 국정 현안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인사로 경제2분과 간사를 맡은 이현재 의원을 꼽는 이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이 의원을 지난 17대 인수위 경제1분과에서 활약한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과도 견주는 분위기다.
현재 이 의원은 박근혜 당선인의 당선 후 첫 번째 히트상품인 ‘중소기업 손톱 밑 가시 빼기’를 구체화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현역 의원 중에는 ‘위스콘신 4인방’으로 유명한 안종범 강석훈 의원도 활약하고 있지만 같은 위스콘신대학 출신인 유승민 최경환 의원보다 중량감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1분과 간사인 류성걸 의원은 ‘TK 출신’으로 인수위 내 운신의 폭이 좁다는 분석이 많다.
새누리당 한 초선 의원은 “인수위에 들어간 현역 의원들 중 누가 누구보다 높다거나 당선인과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라면서도 “이현재 의원과 유일호 비서실장이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 것은 맞다”라고 밝혔다. 인수위 한 출입기자 역시 “현역 의원들이 모두 경제 전문가들이라 서로 보이지 않는 견제심리가 있는 것 같다”라며 “특히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역할이 공석으로 남아 있어 차기 정부 경제통을 노리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소속 한 보좌관은 “서로 세력을 모으고 각을 세웠던 지난 인수위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초선을 배치한 것 아니겠느냐. 실력을 통한 경쟁은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뉴라이트(New Right, 보수·우익 성향의 저항운동이나 단체를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 출신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출신인 국정기획조정분과 유민봉 간사와 정무분과 박효종 간사가 대표적이다. 두 위원은 이미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에서 활약한 바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뉴라이트 출신은 ‘6두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선 밑바닥에서부터 뛰고 인수위에 들어가 실무까지 맡고 있지만 권력 핵심으로 나아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뉴라이트 출신은 아니지만 칼럼을 통해 비슷한 성향을 보인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2개월용’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최근 뉴라이트 출신이 반전을 꾀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 15일 국정조정위 유민봉 간사는 조직개편안 브리핑을 맡아 호평을 얻었다. 조직개편안은 인수위 국정조정위가 아닌 당선인 자택이 있는 ‘삼성동’에서 주도적으로 이뤄졌다는 이야기가 많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선인 측과 함께 조직개편안을 주도적으로 만든 것은 옥동석 위원이고, 유민봉 간사의 경우 인수위 회의를 주재하고 대외언론창구와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브리핑 당시 유 간사는 예상 질문을 수십 개 뽑아서 달달 외울 정도로 연습을 했다고 한다. 또 백 브리핑 도중 “이제 그만하고 가시라”는 실무위원의 요청에도 “말하는데 왜 자꾸 가라고 하느냐”라며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앞서의 인수위 출입기자는 “유 간사는 4시로 예정된 브리핑을 1시간 연기하면서까지 준비했는데 좀 오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라면서도 “박 당선인이 자기 사람은 한없이 신뢰한다는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인물을 깜짝 기용하는 면도 있지 않나. 그런 면에서 유 간사의 역할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북강경파’이자 뉴라이트 계열로 분류되는 김장수 외교국방통일위 간사 역시 꾸준히 주목을 받는 상황이다. 인수위 내부에서는 김 간사가 ‘대북온건파’인 최대석 전 인수위원과의 내부 심리전에서 이겼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인수위에 관여하는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외교국방통일분과 세 명의 위원은 모두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이자 대선 때 박 당선인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런데 자신들을 제치고 차기 통일부 장관 물망에 오르는 최대석 교수가 좋게 보였을 리 없지 않은가. 최 교수의 사퇴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인수위 내부 암투에 밀린 것이 그 원인을 촉발시켰다고 본다”라며 “공직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수록 ‘제2의 김용준’이 아니라 ‘제2의 최대석’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진짜 ‘깜깜’ 대변인도
이정현 대변인이 새누리당 캠프 공보단장에서 당선인 비서실 정무팀장으로 ‘영전’하면서 뒤를 이을 차기 당선인 대변인 경쟁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현재 박선규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과 당 대변인인 신의진 이상일 의원 등이 차세대 당선인 대변인이 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먼저 청와대 직행이 거론되는 이는 조윤선 대변인. 조 대변인은 같은 여성으로 대선 때부터 줄곧 박근혜 당선인과 현장을 동행하며 근접 보좌를 맡았다. 뒤늦게 합류한 박선규 대변인은 MB 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으로 이미 능력 검증이 끝난 인물이라는 평가다. 이 외에도 지난 대선에서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홍문종 의원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변인을 고르는 데 있어 더욱 까다로운 기준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평소 신중한 언론 대응 습관 탓인데 이 때문에 대변인끼리 당선인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금기시된다고 한다. 이미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음에도 박근혜 당선인과 직통으로 연결되지 않고 보좌진을 통해서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인사가 있을 정도다.
인수위 한 출입기자는 “24일 총리 발표 이후 여러 대변인에게 전화를 돌렸는데 다들 발표 순간까지 결과를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개중에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 같은 대변인도 있었지만 진짜 모르는 눈치의 대변인도 있었다”라며 “대변인조차 사전에 인선 정보를 몰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선인의 인선 스타일에 다시 한 번 놀랐다”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