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애영 씨는 압도적인 지지로 한국여성바둑연맹 제40대 회장에 선출됐다. |
우리나라 여성 바둑 동호인은 얼마나 될까. 근사한 통계가 없다. 그렇다면 전체 바둑 인구는? 그것도 애매하다. 1980년대 중후반 바둑계에서는 기회만 있으면 “1000만 바둑팬…”이라고 했다. 근거는 ‘믿을 수 있는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의 발표였다. 그러나 1000만 운운은 난센스다. 주먹구구로 계산해도 성인 남자 두 사람 중 하나는 바둑 동호인이라는 얘기가 되니까. 바둑이란 게 뭔지는 안다, 들어는 봤다, 거기까지도 다 동호인이라고 친다면 모를까. 갤럽의 설문이 그런 정도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에 일본에서 세계 바둑인구 분포도를 발표했다. 중국 2000만, 한국 900만, 일본 500만, 대만 60만, 북미 20만, 러시아 10만, 독일 5만, 영국 4만, 네덜란드 3만, 프랑스 3만, 브라질 3만 등 세계 바둑인구는 약 3800만 명이라는 것. 우리 바둑 동호인은 여러 가지 지표나 정황으로 미루어 300만 명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300만 명이라면 그것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300만 명 이하일 가능성이 사실은 더 크다. 200만 명? 그것도 대단한 숫자다. 그렇다면 여성 동호인은? 100분의 1쯤으로 본다. 3만 명 안팎이라는 얘기다. 어쩌면 실상은 100분의 1이 아니라 200분의 1, 300분의 1인 정도인지도 모르겠다. 1만~2만 명 정도.
어쨌든 1만~3만 명이라는 숫자는 그래도 신빙성이 있다. 우리나라 아마추어 여성 바둑 동호인들의 중심인 ‘사단법인 한국여성바둑연맹’에 정식으로 등록된 숫자만 전국적으로 약 3000명에 이르고 있으니까.
1월 16일 한국여성바둑연맹 제40대 회장으로 박애영 씨(60)가 선출되었다. 추대나 다름없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23일 오후 왕십리 한국기원 5층에 있는 연맹 사무실에서 신임회장을 만나 보았다. “얼떨결에 중책을 맡게 되었어요. 걱정입니다. 할 일이 많을 텐데 과연 능력이 따라줄지….”
― 현재 대학바둑연맹 부회장이신데, 더 바빠지시겠어요.
▲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여성연맹 쪽에 더 매달리게 되겠지요. 대학연맹은 강병두 회장님이 워낙 잘하고 계시고, 부회장님도 한 분 더 계시니까요.
굉장히 신중하다. 질문을 하면 한참씩 생각한 다음 입을 열었다. 말의 속도도 느렸다.
― 어떤 구상을 갖고 계신지?
▲ …요즘은… 소통, 통합 그런 게 화두랄까, 사회적 키워드 같은데, 우리도 그게 우선 시급한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지금 여성연맹이 둘이잖아요? 서로 다른 일을 한다면 모를까, 똑같은 일을 하면서… 이름도 똑같고… 어떤 사안에 대해 생각이 다를 수는 있고, 다양한 게 오히려 좋은 것이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거든요. 다시 원래대로 뜻을 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잘될 거라고 봅니다.
사단법인 대한바둑협회(대바협)가 생기면서 여성연맹은 대바협 산하가 되었는데, 재작년에 대바협에서 나와 사단법인 한국여성바둑연맹으로 독립했고, 그러자 대바협에서는 또 하나의 여성바둑연맹을 구성했다. 이후 가령 바둑대회 같은 게 열리면 대회에 따라 어떤 때는 이쪽 여성연맹만, 어떤 때는 저쪽 여성연맹만 참가하는 딱한 현상이 벌어지곤 했다.
“여성 바둑계 자체의 힘을 결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프로기사, 여성 시니어 강자, 연구생 출신의 젊은 강자, 회원과 일반 동호인, 이들 사이의 왕래나 교류, 그런 게 좀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일을 지금 한국기원 프로기사가 280명인데, 여자 프로기사가 49명이에요. 또 내셔널리그에 참가하는 강자들 숫자도 적지 않잖아요? 여성 바둑 인구…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체감되는 바는 약해요. 너무 완만해서 과연 늘고는 있는 건지 모를 정도예요. 회원 등록만을 본다면 신입회원이 1년에 불과 몇 십 명이거든요. 그러나 힘을 합하면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 숫자가 여자는 남자의 100분의 1 정도인데, 프로기사는 여자가 전체 기사의 17.5%나 된다. 남녀의 4.7 대 1이다. 100 대 1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일반 보급에는 취약했다는 뜻이다.
박 회장이 바둑계와 인연을 맺은 지는, 1999년에 여성연맹에 가입했으니 20년이 넘는다. 이화여대 특수교육과 1기생으로 1985년부터 2001년까지 반포 서래마을에서 꿈나무유치원을 운영했다.
▲ 장용미 편집국장(왼쪽)과 박애영 회장. |
― 여성연맹에는 어떻게 가입하게 되셨는지?
▲ …참 바쁘게,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아이들 키우면서 유치원 운영하고, 사업하는 남편 뒷바라지하고, 동창회 모임 같은데 활동하고… 그러다 아이고, 이젠 좀 쉬어야겠다, 나도 좀 놀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떻게 쉴까, 뭘 하면서 놀까, 생각하다가 어느 봄 날, 바둑이 떠오르더라구요. 어릴 때 집안 어른들이 두시는 걸 어깨너머로 구경한 게 있거든요. 여기저기 알아보니 한국기원에 여성들이 바둑 두는 데가 있다는 거예요. 찾아가 그날 바로 등록했어요. 생초보였지요. 그 무렵에 박종렬 사범님이 강좌를 하고 계셨는데, 강의 들으면서 10급쯤 되었고… 저보다 며칠 앞이었는지 뒤였는지 장용미라는 회원이 등록했는데, 지금 여성연맹 편집국장이고 방과 후 강사 열심히 하고 있지요, 저보다 열 살쯤 아랜데도, 금방 친해졌고 지금까지 붙어 다니는데, 둘이서 도봉구 창동에 있던 심우섭 사범님, 바둑TV에서 진행하시는, 바둑교실을 찾아갔어요. 거기 그때 어머니교실이 있었어요. 일주일에 세 번이었는데 3년을 다녔지요. 그때 실력이 지금 실력이에요. 실력이요? 타이젬 3단이라고 두기는 하는데, 모르겠어요^^.
바둑에 빠져들면서 2004~5년에는 여성연맹 부회장이 되었다. 그런데 “2005년 겨울부터 한 1년 동안은 브리지를 배우느라 잠시 뜸했다가 2008년 당시 이명덕 여성연맹 회장의 권유와 주선으로 대학바둑연맹 부회장으로 컴백(^^)”했다. 2010년부터는 매년 한국 팀 단장으로 대학생 선수들을 인솔해 태국에서 열리는 국제 대학생 바둑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보급이 최우선 사업입니다. 연맹 안에 바둑강사를 양성한다고 할까요, 아무튼 강사 관련 일을 보는 강사국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방과 후 바둑에 우리 강사들이 많이 나가고 있는데, 강사국을 더 활성화해서 학교뿐만이 아니라 노인회관이나 양육원 같은 복지 관련 단체들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소년원까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문제, 인성교육과 관련된 일, 방향은 그쪽입니다. 문제는 재원인데요. 해 봐야지요.”
한국기원이나 대바협에게 기존의 것들에서 우리에게도 나누어 달라 그런 얘기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많지도 않은 걸 갖고 그걸 또 갉아내면 어떡해요. 우리 힘으로 마련해 봐야지요. 우리도 조직이 만만치 않거든요^^. 전국에 지부가 20개나 있고 다들 열정적이세요.”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