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태영 부회장은 현대카드에 상당한 비용 부담이 따를 수 있다는 관측 속에서도 애플페이 국내 도입을 적극 추진했다. 현대카드는 이용자들이 애플페이를 원활히 사용할 수 있도록 NFC 단말기 설치비를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애플페이 결제를 위해서는 NFC 단말기가 필요한데, 당시 이를 전국적으로 보급하는 데만 수천억 원이 소요될 수 있다는 추산도 나왔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은 특정 카드사 이용에 유리한 단말기 보급 지원이 여신전문금융업법상 리베이트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으나, 현대카드는 약 1년간의 국내 배타적 사용권을 포기하면서 애플페이 도입을 성사했다.
현대카드의 애플페이 도입으로 국내 카드사가 휴대전화 제조사 기반 결제 플랫폼에 결제 수수료를 지급하는 사례가 형성됐다. 애플페이는 해외 주요 시장에서 카드 발급사에 결제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에서도 카드사에 결제금액의 약 0.15% 수준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기존 간편결제 서비스 제휴에 따른 비용 부담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애플페이 도입이 별도의 추가 비용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카드업계는 애플페이의 수수료 구조가 삼성페이 유료화 논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페이는 2015년 국내 출시 이후 카드사에 별도 결제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 구조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애플페이 도입 이후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고 삼성전자가 수수료 부과 가능성을 검토한다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로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카드사들과 재계약을 앞두고 삼성페이 수수료 부과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페이 결제망에 대한 카드사들의 의존도가 높아 수수료 협상 국면에서 카드사들이 상대적으로 열위에 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과거 현대카드가 애플페이 수수료 체계를 수용한 것이 삼성페이 수수료 논의의 명분을 제공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현대카드가 애플페이 수수료를 부담하는 첫 사례를 만들면서 휴대전화 제조사 기반 결제 플랫폼에 비용을 지급하는 구조가 시장에 선례로 남았고, 이는 삼성페이 유료화 논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카드사들이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으로 수익성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애플페이와 삼성페이 관련 비용 부담까지 커진다면 업계로서는 한층 어려운 환경에 놓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대카드의 애플페이 도입이 카드사들이 플랫폼 사업자와 수수료를 협상하는 데 부담을 남겼다는 시각에는 동의한다”며 “애플페이가 이미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는 만큼 삼성페이 역시 장기적으로는 무상 제공 기조를 유지하기보다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장차 카드사들의 비용 부담 확대가 소비자 혜택 축소나 비용 전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3월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카드사에 새로운 수수료가 부과되면, 결국 그 부담이 소비자에게 이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과거 금융위원회는 카드사들이 적자 보전 등 수익 관리를 위해 학원·마트·통신 등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부가서비스 혜택을 축소하거나 연회비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한편 여타 국내 카드사들의 애플페이 진입 움직임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현재까지 애플페이 제휴 카드사는 현대카드가 유일하다.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는 2024년 애플페이 도입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출시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토스뱅크는 지난 3월 24일을 애플페이 서비스 개시일로 잡고 출시를 준비했지만, 계획을 잠정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애플페이는 시장 진입 과정에서 카드사가 비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구조인 만큼 후발 카드사들이 굳이 서둘러 들어갈 유인이 크지 않다”며 “애플페이를 도입하면 향후 삼성페이까지 수수료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어 카드사들이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