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진 회장은 5월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유가족과 박종철 열사 유가족, 광주시민과 국민에게 사과했다. 정 회장은 이번 일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취지로 고개를 숙였고 신세계그룹은 자체 진상조사 결과도 함께 발표했다.
신세계그룹 측은 해당 마케팅이 고의로 기획됐다는 명확한 근거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일부 임직원이 휴대전화 제출을 거부한 가운데 첨부파일을 열어보지 않은 채 결재한 사례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책상에 탁’ 문구는 기존 이벤트 문구와 인공지능 추천을 참고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의성을 부인하면서도 내부 검수 체계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한 셈이다.
이번 논란은 지난 5월 18일 스타벅스가 ‘탱크 텀블러’ 관련 행사를 진행하면서 시작됐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까지 사용하면서 5·18 당시 계엄군 탱크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공개 비판에 나서면서 논란은 일파만파 확산됐다. 스타벅스코리아는 논란 당일 손정현 전 대표와 담당 임원을 해임했고 정 회장 명의의 사과문도 냈지만 여론은 수습되지 않았다.
이후 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0주기에 출시된 ‘사이렌 클래식 머그’까지 거론하며 재차 비판했고 온라인에서는 스타벅스코리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 전후 자체 기획한 ‘뉴턴’ 관련 상품명 의혹까지 재소환됐다.
여론이 격해진 배경에는 정용진 회장의 과거 정치적 이미지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 회장은 과거 소셜미디어(SNS)에서 ‘멸공’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논란을 빚었고 이번 사태 이후 해당 이력이 다시 소환됐다. 이 때문에 스타벅스의 마케팅이 단순한 실무진 실수가 아니라 신세계그룹 오너의 정치성향과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불매는 일상 소비 영역을 넘어 정치권과 공직사회로 번졌다. 전국공무원노조는 전 지부에 공문을 보내 스타벅스 이용 중단 동참을 요청했고 공무원노조총연맹도 스타벅스 기프티콘 사용 자제령을 내렸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향후 행안부를 비롯한 정부 기관에서 스타벅스 상품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배달플랫폼노조도 스타벅스 배달 거부와 불매를 선언했다. 반면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스타벅스 불매가 선거용 공세라고 주장하며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투표장에 가자는 취지로 맞불을 놨다. 정치권까지 논란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비교적 빠른 사과문 발표와 대표 해임에도 논란이 잦아들지 않자 정용진 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논란 발생 8일 만에 그룹 총수가 전면에 나온 셈이다. 다만 정 회장의 사과 이후에도 진정성 논란과 재발방지책의 구체성 부족을 둘러싼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자회견에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도 문제다. 기업의 프로모션 활동이 주관적인 정치색이나 이념을 드러낼 이유는 없다”며 “명백히 잘못한 사안이라면 고의성이 없었다는 해명을 앞세우기보다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불카드 환불 기준을 한시적으로 완화한 것은 손실을 감수한 조치라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발표문 자체는 진정성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마케팅 실수가 시작점이었지만 이 문제가 정용진 회장 때문에 확장된 측면이 있다”며 “정 회장이 직접 사과한 만큼 정 회장 개인에 대한 논란은 일부 줄어들 수 있지만 광주에 직접 방문하는 등 더 본격적인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부 보안과 검수 프로세스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민주주의와 5·18 관련 사회적 책임 활동도 단계적으로 발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무신사 사례와 비교해도 스타벅스의 대응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신사는 2019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키는 광고 문구 논란 당시 대표와 경영진이 박종철기념사업회를 찾아 사과하고 관련자 징계와 전 직원 역사교육, 콘텐츠 검수 강화 방안을 내놨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이번 사과는 재발방지책이 분명하지 않았고 오너가 정치적 발언을 중단하고 SNS 활동을 끊겠다는 결단도 보이지 않았다”며 “기업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오너가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한 교과서적인 오너리스크 사례다. 여전히 대응이 안이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논란이 더 치명적인 이유는 스타벅스 브랜드가 정치적 상징처럼 소비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논란이 빚어진 이후 일부 강성 보수 성향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스타벅스 구매 인증샷을 올리며 불매 반대 운동을 벌였다. 전체 소비자를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기업과 브랜드 입장에서는 특정 진영의 지지를 얻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 자체가 부담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소비 지표에도 흔들림이 나타났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줄곧 최상위권을 지켜온 스타벅스 교환권은 논란 이후 교환권 카테고리 순위가 7위권 안팎으로 밀렸다. 스타벅스가 내준 자리는 메가MGC커피 등 타사 교환권이 채웠다.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스타벅스의 5월 18~24일 주간 결제금액은 236억 9000만 원으로 직전 주 321억 6000만 원보다 84억 7000만 원(26.3%) 줄었다. 같은 기간 스타벅스 앱 신규 설치 건수도 4만 8441건에서 3만 6994건으로 23.6% 감소했다.
이종우 교수는 “스타벅스 기프티콘은 공공기관과 기업에서 가장 무난하게 쓰던 선물이었는데 그 시장을 잃은 충격이 크다”며 “관가는 눈치를 보는 시장이라 한 번 빠지면 쉽게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선불충전금 환불도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해 말 기준 스타벅스 선불충전금 잔액은 4275억 원 규모로 집계됐다. 기존 약관상 충전 잔액의 60% 이상을 써야 환불이 가능했지만 논란 이후 이용 중단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추가 소비를 요구하는 구조라는 비판이 커졌다. 스타벅스는 결국 6월 1일부터 14일까지 2주간 사용 비율과 관계없이 선불카드 잔액을 환불해주기로 했다. 스타벅스는 그간 고객이 미리 충전한 자금을 예금·신탁 등으로 운용해 이자 수익을 얻어왔는데, 불매와 환불 요구가 겹치면 선불금이 감소하면서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스타벅스가 흔들리면 이마트도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스타벅스코리아의 2025년 매출은 3조 2380억 원, 영업이익은 1730억 원, 당기순이익은 1425억 원이다. 이마트가 보유한 SCK컴퍼니(스타벅스코리아 운영사) 지분율 67.5%를 당기순이익 기준으로 반영하면 이마트 몫은 약 962억 원으로 추산된다. SCK컴퍼니가 2025년 지급한 배당금 1062억 원 중 이마트 몫도 약 717억 원에 달한다. 기프티콘 시장 매출과 선불충전금 감소가 지속될 경우 단순 매장 매출 감소를 넘어 이마트 연결 실적과 배당 수입에도 타격이 번질 수 있다.
증권가도 이마트 실적과 기업가치에 미칠 영향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흥국증권은 5월 27일 스타벅스 마케팅 논란에 따른 불매운동 영향을 감안해 이마트의 2026~2027년 수익 추정치를 낮추고 목표주가를 기존 16만 7000원에서 12만 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박종렬 흥국증권 연구원은 이번 논란이 SCK컴퍼니뿐 아니라 베이커리류와 식음료를 공급하는 신세계푸드, 전산 인프라와 고객 응대 시스템을 담당하는 신세계I&C 등 연관 계열사 매출에도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스타벅스 가치 하락이 이마트 연결 실적과 계열사 실적 전망, 기업가치 하락 등 전방위적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미국 스타벅스 본사와의 관계도 이마트에는 압박으로 작용할 여지가 높다. 이마트는 2021년 미국 스타벅스 본사로부터 지분을 추가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는데, 당시 계약에는 스타벅스 브랜드 가치 훼손 시 본사가 이마트 보유 지분 전량을 공정가치보다 35% 낮은 가격에 인수할 수 있는 콜옵션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미국 본사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정용진 회장 입장에서는 스타벅스 불매가 이마트 기업가치와 브랜드 라이선스 리스크로까지 번진 셈이다.
광주 사업에도 파장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마트가 지분 100%를 보유한 신세계프라퍼티는 광주 어등산관광단지에 그랜드 스타필드 광주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광주신세계도 광천터미널 복합화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신세계그룹 전체로 보면 광주 지역에 4조 원 규모의 투자 사업이 걸려 있다. 사업이 좌초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지역 여론 악화로 인해 지자체 인허가 및 향후 흥행에는 제약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선거철이라는 시기적 변수도 있었지만 정치권에서도 그간 정용진 회장의 행보를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만큼 오너의 정치 행보 탓에 이슈가 전방위로 확대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회장은 경영진으로서도 그간 사업 성과 부진에 대한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이번에는 오너 개인의 이미지가 그룹 사업 전반에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5월 26일까지 확인된 경위는 설명드렸으나 아직 스타벅스 내부적으로 정확한 경위 확인이 진행 중”이라며 “보다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와야 재발방지책 등 구체적인 후속 대책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