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휴대전화 2대를 준비해 공기계 1대만 감독관에게 제출하고, AI 안경과 연동된 다른 휴대전화는 몸에 숨긴 채 시험을 치른 것으로 파악됐다. 안경에는 카메라와 AI 프로그램이 설치돼 시험 문제를 비추면 무선으로 연결된 스마트폰을 통해 검색된 정답을 안경알에 띄워주는 기능이 있었다. 경찰이 AI 안경과 연동된 휴대전화를 포렌식한 결과 이 씨가 적발되기 전까지 푼 문항은 2개였다.
앞서 광주지검도 지난 5월 한 고사장에서 열린 소방설비기사 자격시험 도중 AI 안경을 이용해 부정행위를 시도한 40대 수험생 A 씨를 국가기술자격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했다. 토익 시험에서도 AI 안경을 활용한 부정행위가 지난 5월 2건, 6월 1건 잇따라 적발됐다.
AI 안경은 초소형 디스플레이와 카메라, 마이크 등을 탑재한 안경형 웨어러블 기기다. 최근 제품은 생성형 AI와 결합해 눈앞의 문자나 사물을 촬영한 뒤 검색·번역 등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사용자에게 표시할 수 있다.
문제는 외형이 일반 뿔테안경이나 선글라스와 구별하기 어렵고 카메라와 각종 부품이 소형화되면서 시험 부정행위 등에 악용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제조사들은 촬영 중임을 알리는 LED 표시등을 장착했다고 설명하지만 불빛이 매우 작아 시험장에서는 감독관이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렵다. 일부 제품은 표시등을 가리면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도록 설계됐지만 해외 직구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가림 장치를 이용하면 표시등을 가리는 것도 가능하다.
이에 교육 당국은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반입 금지 물품에 스마트 안경을 추가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인사혁신처도 최근 실시된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 2차 시험에서 안경 착용자 전원을 대상으로 스마트 글라스 착용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처음 도입했다.
하지만 AI 안경 단속과 적발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국가시험과 달리 일선 학교나 사설학원 등에서 치러지는 시험은 여전히 단속의 사각지대로 꼽힌다. 교육계 관계자는 “민간 자격시험이나 사설학원 시험은 국가시험처럼 별도의 장비나 감독 매뉴얼을 갖추기 어렵다”며 “현장에서는 수험생의 소지품을 임의로 확인할 권한이 없어 AI 안경을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무단 촬영 등 사생활 침해 우려도 제기된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데이트 상대를 AI 안경으로 몰래 촬영한 혐의로 남성 B 씨를 체포했다. B 씨는 촬영 표시등을 가린 채 여성과의 데이트 장면을 촬영한 뒤 이를 자신의 SNS에 게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B 씨는 사진·영상 촬영 시 필수적으로 발광하는 표시등을 교묘히 가리면서 범행을 저질렀으며 피해 여성은 촬영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는 AI 안경 이용을 직접 규율하는 별도의 제도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촬영 사실을 외부에 알리는 방식이나 표시등을 가리거나 변조하는 행위 등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염흥렬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AI 안경은 불특정 다수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가능성이 큰 기기로 시험 부정행위나 불법 촬영뿐 아니라 스토킹, 산업기술 유출 등 다양한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개인정보 처리 기준과 촬영 표시 방식, 표시등 무력화 행위에 대한 규제 등 기술 발전에 맞는 제도적 기준을 종합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승구 기자 win9@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