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 씨와 C 씨는 5월 29일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의 한 공원에서 A 씨에게 10대 여성 2명과 잇달아 싸우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부검과 휴대전화 압수수색 및 포렌식 등을 통해 A 씨가 이들과 이른바 ‘야차룰’ 방식으로 싸운 사실을 확인했다. A 씨는 싸움 과정에서 의식을 잃어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야차룰’은 장소나 규칙, 보호장구 없이 맨몸으로 싸우는 방식을 뜻하는 은어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야차룰은 싸움에 앞서 ‘다치거나 죽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취지의 각서를 작성하는 등 당사자 간 합의에 따른 싸움이라는 형식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야차룰이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월 전남 광양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동급생끼리 ‘후계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계급을 나눈 뒤, 아래 순번 학생들끼리 강제로 주먹다짐을 시키는 방식의 야차룰을 강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에는 경기도 파주에서도 초등학교 2학년생이 동급생과 선배들로부터 이른바 ‘야차’ 싸움을 강요받은 뒤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야차룰을 일종의 ‘놀이’나 ‘격투 콘텐츠’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인 탓에 피해를 입은 학생이 문제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유튜브 등 SNS에는 중·고생의 야차룰 영상을 전문적으로 올리는 계정이 운영되고, 일부 영상은 조회수 수백만 회를 기록한다. 학생들이 직접 싸움 장면을 촬영해 게시하거나 라이브 방송으로 중계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김석민 BTF 푸른나무재단 학교폭력SOS센터 과장은 “서로 합의했다는 형식을 내세우는 데다 UFC 등 성인 격투 콘텐츠에 익숙하다 보니 학생들이 야차룰을 스포츠나 장난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며 “일방적으로 맞는 모습을 보면서도 ‘스파링이니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 학생도 합의했다는 이유로 신고하면 ‘왜 이제 와서 신고하느냐’, ‘패배자’라는 식의 비난을 받을 수 있어 피해를 입고도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야차룰은 싸움 장면을 촬영해 공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만들어진 영상은 SNS에서 불법적인 유통망을 타고 수익화되기도 한다. 학교폭력 예방재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 번 퍼진 영상은 여러 채널을 거쳐 재유통되고, 영상 매매나 싸움 결과를 놓고 베팅하거나, 팔로어를 모은 뒤 계정을 되파는 방식 등 돈벌이에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학생의 출생연도나 이름, 신상정보 등이 유출되는 경우도 있다.

교육 당국과 경찰은 야차룰을 신종 폭력으로 보고 대응에 나섰다. 학폭 영상의 신속한 차단과 예방교육 강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단순 처벌을 넘어 온라인 유통 차단 및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석민 과장은 “학생들이 야차룰을 스포츠나 장난처럼 받아들이지 않도록 합의된 싸움도 학교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교육해야 한다”며 “야차룰은 학교 밖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아 가정과 지역사회 차원의 예방·보호 체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폭력 영상의 반복 유포로 인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SNS 플랫폼의 모니터링과 신속한 차단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교사들이 소송 부담 없이 학교폭력에 적극 개입할 수 있도록 교권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승구 기자 win9@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