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흥구 대법관은 이달(9월) 7일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지난 3월 3일 노태악 전 대법관이 물러난 뒤 두 번째 빈자리가 생긴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8월 18일 노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이 전 대법관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각각 임명제청했다.
김성수 후보자는 9월 14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16일에는 경과보고서 채택을 위한 전체회의가 예정돼 있다. 이후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이 가결되고 대통령 임명까지 이뤄지면 이 전 대법관의 빈자리는 메워질 수 있다.
반면 노 전 대법관 후임 인선은 교착 상태다. 청와대는 지난 8월 28일 손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하고 조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청했다. 청와대는 제청 과정의 사전 협의와 절차적 완결성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8일 출근길에 “미리 알릴 일이 있으면 알려드리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기존 추천 후보 가운데 신속히 재제청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다른 후보를 제청할지 추천위원회를 새로 구성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 전 대법관의 퇴임으로 소부 구성에도 조정이 필요해졌다. 이 전 대법관이 소속됐던 대법원 3부는 지난 7월 노경필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으로 임명되면서 3명 체제로 운영돼 왔다. 이 전 대법관의 퇴임으로 오석준·이숙연 대법관 2명만 남았다. 법원조직법상 소부는 대법관 3명 이상으로 구성되며, 구성원의 의견이 일치해야 판결할 수 있다. 기존 구성으로는 법이 정한 소부 구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일요신문i’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 같은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8일부터 재판부 구성 변경을 시행했다. 이날 시행된 재판부 구성표에 따르면 엄상필 대법관이 3부에 배치돼 오석준·엄상필·이숙연 대법관 3명으로 구성됐다. 1부는 천대엽·서경환·신숙희·마용주 대법관 4명, 2부는 오경미·권영준·박영재 대법관 3명으로 구성됐다. 재판부 조정으로 3부의 판결 정족수는 확보됐지만, 노 전 대법관 후임 인선이 교착 상태인 만큼 대법관 1명 공석이 장기화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조정은 정족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법원에서는 대법관 인선 지연에 따른 재판 운영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공석 장기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앞서 6개월간 이어진 대법관 1명 공석 기간에는 형사상고심 미제가 크게 늘고 민사·행정사건 처리율도 낮아지는 등 상고심의 사건 처리 여력이 전반적으로 약화한 흐름이 확인됐다.
‘일요신문i’는 법원통계월보에서 확인 가능한 2025년 1월~2026년 7월 상고심 통계를 분석해 올해 3~7월 형사·민사 등 사건 처리 건수를 전년 동기와 비교했다. 처리율은 해당 기간 처리 건수를 접수 건수로 나눈 값으로, 100% 미만이면 새로 접수된 사건보다 처리한 사건이 적다는 의미다. 형사사건은 피고인 인원 기준이어서 다른 분야의 사건 건수와 합산하지 않았다.
확인 결과 형사사건은 처리량을 늘렸지만 신규 접수를 따라잡지 못했다. 올해 3~7월 접수 인원(피고인 기준)은 지난해 1만 3007명에서 올해 1만 3876명으로 869명(6.7%), 처리 인원은 1만 721명에서 1만 2100명으로 1379명(12.9%) 늘었다. 처리율도 82.4%에서 87.2%로 4.8%포인트 높아졌지만 여전히 100%에 못 미쳤다. 미제사건(인원)은 지난해 7월 말 8229명에서 올해 7월 말 1만 2612명으로 4383명(53.3%) 증가했다. 공석 직전인 올해 2월 말 1만 842명과 비교해도 1770명(16.3%) 늘었다. 후임 인선이 더 늦어질 경우 기존 적체를 줄일 여력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민사사건 처리 건수는 지난해 5728건에서 올해 4932건으로 796건(13.9%) 줄었다. 접수는 4704건에서 4830건으로 126건(2.7%) 늘면서 처리율이 121.8%에서 102.1%로 19.7%포인트 낮아졌다. 다만 아직 접수보다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어 미제사건은 지난해 7월 말 4805건에서 올해 7월 말 3830건으로 975건(20.3%) 감소했다. 행정사건도 처리 건수가 1620건에서 1333건으로 287건(17.7%) 줄고 처리율은 107.9%에서 100.9%로 7.0%포인트 낮아졌다. 미제사건은 지난해 7월 말 1456건에서 올해 7월 말 1400건으로 56건(3.8%) 감소했다. 민사·행정사건 모두 아직 접수보다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지만, 처리율이 100%에 가까워지면서 기존 적체를 줄이는 여력은 줄어든 셈이다.
가사사건은 처리량이 늘었지만 접수 증가를 따라잡지 못했다. 처리 건수는 248건에서 286건으로 38건(15.3%) 증가했으나 처리율은 98.0%에서 93.2%로 4.8%포인트 낮아졌다. 미제사건은 지난해 7월 말 196건에서 올해 7월 말 211건으로 15건(7.7%) 늘었다. 특허사건은 처리 건수가 86건에서 52건으로 34건(39.5%) 줄고 처리율은 124.6%에서 102.0%로 22.6%포인트 낮아졌다. 미제사건은 80건에서 66건으로 14건(17.5%) 감소했다.
형사사건을 제외한 민사·가사·행정·특허 4개 분야의 합산 처리율은 지난해 117.7%에서 올해 101.4%로 16.3%포인트 낮아졌다. 처리 건수는 7682건에서 6603건으로 1079건(14.0%) 감소했다. 아직 접수보다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지만, 기존 적체를 줄이는 속도는 둔화한 셈이다.
과거에도 대법관 공백과 함께 사건 처리율이 하락한 사례가 있었다. 대법원이 2012년 6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11월 21일부터 다음 해(2012년) 1월 1일까지 박시환·김지형 전 대법관의 후임인 김용덕·박보영 대법관의 임명이 지연됐다. 당시 월별 처리율은 11월 84.6%, 12월 85.9%로, 2011년 월평균 96.4%에 미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대법관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하급심 재판 연쇄 지연으로 국민과 사회 전반에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후임 인선이 임기 만료 한 달 전에 확정되던 관행과 달리 상당 기간 지연되고 있다”며 “대법관 1명이 연간 5000건 안팎을 처리하는 만큼 상고심 판결이 늦어지면 그 결과를 기다리는 하급심 재판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을 지낸 김승대 변호사는 대법관 2명 공백이 몇 달간 이어질 경우 재판 지연이 심화될 수 있다며 “국민들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철준 기자 cj5121@ilyo.co.kr










